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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만나다

사찰음식 대장, 성우스님의 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1. 25. 13:28


마음 챙기기 백성호의 궁궁통통2
“음식은 이 한가지가 전부다” 사찰음식 대장, 성우스님의 말

카드 발행 일시2025.11.21
에디터백성호
백성호의 궁궁통통2
관심

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치를 담습니다.

#궁궁통1

절집에서
‘사찰음식의 대장’으로
불리던 스님이
계셨습니다.

조계종에서
비구니 스님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하나같이
이분을 꼽았습니다.

'사찰음식의 대장'으로 불리던 성우 스님.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 지리산 대원사에 주석했다. 중앙포토

10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그분은
지리산 자락의
사찰에 계셨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차를 타고
지리산을 찾아갔습니다.

왜냐고요?
궁금했거든요.

요즘은
사찰음식이
꽤 인기잖아요.

넷플릭스를 통해서
해외에도 소개되고
외국의 유명 셰프들이
한국의
사찰음식을 찾아서
절집을
찾아오기도 하잖아요.

서울의
사찰음식 전문점에 가면
메뉴 구성이
아주
화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옛날에는
어땠을까.
‘사찰음식의 대모’께서 보시는
사찰음식이란
과연
어떤 걸까.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이랄까,
아니면
철학이랄까.

그건
대체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을 풀고자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궁궁통2

지리산 자락의 사찰은
경남 산청의
대원사였습니다.

석남사(울산)·수덕사 견성암(예산)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입니다.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그곳에
‘사찰음식의 대장’으로
불리는
성우 스님이 있었습니다.

성우 스님이 출가할 당시에는 사찰에도 음식 재료가 무척 귀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였으니 더했지 싶다. 그록3, 백성호 기자

산을 넘고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서
대원사로 갔습니다.

절로 들어가는
대문 격인
일주문에는
‘방장산 대원사’라고
적혀 있더군요.

산청 일대에서는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고
불렀습니다.

불교에서는
총림의 최고 어른을
‘방장’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
‘산중의 대장’이란
뜻입니다.

당시
성우 스님은
93세였습니다.
말씀도 잘하시고
아주 정정했습니다.

식사 시간을 빼면
거의
참선과 독경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성우 스님은
1943년 일제 강점기 때
출가했습니다.

그때
절집 형편은
어땠을까.

사찰음식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다른 곳에서
쉬이 듣기 힘든
이야기를
성우 스님께 물었습니다.

#궁궁통3

성우 스님은
어른이 되기 전에
수덕사 견성암을
찾아갔습니다.

일엽 스님의
상좌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여류 문인이었던
일엽 스님은
화가 나혜석과 함께
신여성의 대명사로
꼽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습니다.
출가하려면
부모님 허락을 받아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2년 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성우 스님은
수덕사 견성암으로
다시
출가했습니다.

성우 스님이 출가할 당시 수덕사 조실이었던 만공 스님 영정. 중앙포토

 “말도 마라.
  그때 절에는
  먹을 것도 없었다.
  양식이 없어서
  절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방부(안거 때 수행자를 받는 일)도
  못 받았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
수행하는 사람들이
다들 울면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만공 스님(당시 수덕사 조실)이
가슴에 맺혀서
논을 조금 샀다고
하더군요.

수덕사 스님들이
그 논에서
직접 모를 심고
농사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토록
식량이 모자랄 정도면
그때 절집에서는
스님들이
무엇을 먹었을까요.

 “조그만 밥그릇에
  보리쌀을 갈아서
  죽을 쑤어서 먹었다.”

김치도
포기로 된 김치는
1년 내내 가도
구경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한 장씩,
한 장씩 떨어져 있는
낱장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고
하더군요.

귀한 배추를
통째로
구할 수가 없으니
떨어진 배춧잎을
모아서
김치를 담근 겁니다.

 “절집 밥상에는
  딱 세 가지만
  올라갔어.
  낱장 김치와 상추장,
  그리고
  막된장찌개였어.
  간혹
  대중 공양을 해도
  과일이나 떡은
  아예 없었지.
  그때 가장 화려한 공양이
  뭔지 아나.
  미역국과 찰밥이었다.”

성우 스님이 출가했을 때 절집 밥상에는 밥과 낱장 김치, 상추장이 전부였다. 그록3, 백성호 기자

그렇게 가난하면
절에 손님이 찾아올 때는
어떻게
대접했을까요.

 “어쩌다 손님이 오면
  스님들이
  자기 밥그릇에서
  각자 한 숟가락씩 덜어냈어.
  그럼 밥이
  두 그릇은 나왔다.
  그걸로 대접을 했지.”

만공 스님은
당시
수덕사의 최고 어른인
조실이었습니다.

그럼
만공 스님의 밥상은
어땠을까요.

 “만공 스님을 찾아오는
  서울 신도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궁궐 나인을 하다가
  중이 된 사람도
  꽤 있었다.
  그들이
  특별공양을 올려도
  두부찌개와 미역국이
  최고였다.
  그건 정말
  어쩌다 나오는
  귀한 음식이었다.
  간식거리도 없었다.
  만공 스님께서
  간식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후
한국 전쟁과
근대화 과정에서도
절집 살림이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한국 사회 전체가
가난하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궁궁통4

성우 스님이
대원사 공양간에서
일할 때는
산청 일대에
‘대원사 밥맛’의 소문이
자자했다.
그만큼
음식에 일가견이 있었다.

성우 스님께 물었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면
  무엇입니까?”

스님의 답은
간결했습니다.

 “간이다.
  음식은 간을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하다.”

사찰음식의
정신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무엇이
사찰음식인지
말입니다.

 “음식은 소박해야 한다.
  요즘은
  사찰음식이라고 하는 게
  너무 화려하다.
  내가 먹는 음식이
  도(道)를 위한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마음일 때,
  비로소 사찰음식이 된다.
  음식은
  소박해야 하고,
  또
  적당히 먹어야 한다.”

적당히
먹으라고 하는데,
어디가
적당한 걸까요.
또 그게
왜 중요한 걸까요.

그걸 스님께
물었습니다.

 “배가
  고프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은 게
  적당히다.
  그게 중도(中道)다.”
  똑같은 음식도
  적당하면 약이 되고,
  과하면 독이 된다.
  풍선에 바람을
  잔뜩 넣어봐라.
  빵빵해지면
  주물럭거리기가 어렵다.
  사람의 위장도
  마찬가지다.
  약간 바람이 빠져야
  위장이 운동을 한다.
  뭐든지
  중도를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우 스님은
사찰음식의
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사할 때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이 음식이
  내 분수에 맞는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음식을 먹는가.
  그걸
  스스로 물어보라.
  음식에는
  햇볕과 비,
  농부의 땀이 녹아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하나가 된다.
  자연과 하나 되고,
  우주와 하나 된다.”

성우 스님은
그 하나됨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사찰음식의 정신이다.
  그걸 놓치고
  맛과 모양의 화려함만
  쫓아선 곤란하다.”

성우 스님이 말한 사찰음식의 정신에는 불교의 중도 정신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그록3, 백성호 기자

지리산 자락을
내려오는 길에
스님께서 얘기한
‘적당히’란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모자라지 않고,
과하지도 않게.
그게 중도다.

저는
거기서
사찰음식의 정신을
보았습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3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