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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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밤나무 이야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0. 10. 17:32

평생 처음 밤을 쳤다. 단단한 껍질을 벗기고 한 톨 한 톨 칼로 다듬으려니 얼마 안가 손가락 손목이 아프다. 밤을  치다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짧은 한 편의 영화 같다

밤나무 이야기

               나 호 열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가부좌를 틀거나
반가사유의 모습으로
때로는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잘나가는 봄철 그렇게 보내고
진득하게 온몸을 뒤트는 욕정의 냄새
코막고 얼굴을 찡그리며 지나가는
우리의 젊음도 저러했으리라
죄 짓고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처럼
가시 돋쳐 떨어지는 눈물을 가슴으로 받으니
앞산도 쿵쿵 뒷산도 쿵쿵
밤송이 하나가 적막을 울리는구나
가시 돋친 채 늙어가는 세월
스스로 몸을 열어 보여주는 침묵의 돌멩이
풀섶에 제멋대로 해탈하고 있구나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 2004

밤읓 치고 만든 한 상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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