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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만나다

(30) 붓다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30. 14:5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203

마음 챙기기 백성호의 붓다뎐
식중독 걸려 죽게한 사내에, 붓다는 말했다 “당신의 행운”


 (30) 붓다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

# 풍경1

붓다의 고향은
인도 북부의
카필라 왕국입니다.

붓다는
29세에 출가,
35세에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이후 45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의 이치를
펼쳤습니다.

35세 때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는 45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우주의 이치를 전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어느덧 붓다는
80세가 됐습니다.
고향이
그리웠을까요.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 왕국이
있던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인도는 한낮에
푹푹 찌는
찜통더위입니다.
붓다 일행은
종종
숲에 머물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그날도
붓다 일행은
망고나무 숲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망고나무 숲의
주인은
쭌다였습니다.
대장장이 집 아들이지요.

인도에서도 망고나무 숲은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좋은 숲이다. 붓다 일행은 길을 가다가 종종 망고나무 숲에서 쉬곤 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붓다 일행이
자신의 망고나무 숲에서
쉰다는 소식을 들은
쭌다는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식사 메뉴는
돼지고기 요리이거나
버섯 요리였습니다.
경전에 기록된
두 요리의
발음이 비슷합니다.

어쨌든
붓다 일행은
그 음식을 먹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탓일까요.
붓다에게 공양을 올린
그 음식이 그만,
상한 음식이었습니다.

#풍경2

80세의 붓다는
그걸 먹고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2500년 전이니
요즘처럼 마땅한 약도
없었겠지요.

대장장이집 아들 쭌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붓다에게 공양을 올렸다. 그런데 그만 그 음식이 상한 음식이었다. 붓다는 결국 식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챗GPT, 백성호 기자

고단한 여행길에서
붓다는
심하게 피를 흘리며
설사를 했습니다.
그러니
진이 다 빠졌겠지요.

기진맥진한 붓다는
결국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붓다는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다들
쭌다를 비난할 것이다.

쭌다 역시,
자신이 올린 음식 때문에
여래가 돌아가셨으니
심한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 것이다.

붓다는
그 문제를
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시자(수행비서)인 아난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로
   쭌다를 슬프게 할지 모른다.
   당신이 올린 공양(음식)으로
   여래께서 열반에 드셨다.
   당신은 큰 실수를 했소.
   그건 당신의 불행이오.”

쭌다에게 닥쳐올 불행을 붓다는 미리 내다보았다. 그리고 제자를 통해 불행을 없앨 처방전도 전하게 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이대로
붓다가 열반하면
십중팔구
쭌다에게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풍경3

붓다는
아난에게
쭌다의 집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쭌다의 슬픔은
   이렇게 없애면 된다.
   쭌다여,
   여래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공양을 드신 것은
   당신의 공덕이며
   당신의 행운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소이다.”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붓다의 열반 후에도
사람들은
쭌다를 비난하지 않았고,
쭌다 역시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붓다가 열반한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라에 있는 열반당. 이곳에서 붓다는 입적햇다. 백성호 기자

생각할수록
참 놀랍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심한 식중독으로
육신의 고통을 감당하는
와중에도
붓다는
쭌다를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한 조치를
미리 취했습니다.

#풍경4

불교에서는
번뇌와 보리(깨달음의 지혜)가
둘이 아니라고 봅니다.

처음에는
붓다의 죽음이
쭌다에게는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걸 안
붓다는
쭌다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붓다에게 올린
마지막 공양이
오히려
쭌다의 행운이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세요?

행복은 행복이고
불행은 불행인데,
어떻게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
말입니다.

번뇌와 깨달음의 지헤는 둘이 아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챗GPT, 백성호 기자

번뇌는 번뇌이고
깨달음은 깨달음이죠.
그런데
번뇌와 깨달음의 지혜가
어떻게
서로 통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불교의 큰 매력이
있습니다.

붓다는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했습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봤더니
둘의 무게가
똑같았습니다.

행복도
비어 있는 행복이고,
불행도
비어 있는 불행임을
깨친 겁니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치환이 가능합니다.
마음먹기 나름이지요.

사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행복한
상황인데도,
자신은
기대에 못 미친다며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하잖아요.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모든 걸
만든다는 뜻입니다.

왜 그게
가능할까요.

마음이
행복도 만들고,
마음이
불행도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카필라 왕국이 있던 인도 북부로 향하던 붓다는 결국 고향에 닿지 못했다. 중간 지점인 쿠시나가르에서 열반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행복의 속성도
불행의 속성도
실은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그 비어 있음을 깨칠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쭌다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붓다의 한 마디

  “쭌다의 슬픔은
   이렇게 없애면 된다.”
만약
붓다가 열반 전에
쭌다에게
다가올 슬픔을 없앨
솔루션을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쭌다는
남은 생 내내
고통과 자책감에
허덕이며
살았겠지요.

쿠시나가라의 열반당에 있는 붓다의 열반상. 식중독에 걸려 힘든 몸으로 누워서 열반한 붓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저는
우리의 삶도
쭌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없애지 못하는 슬픔,
내가
없앨 수 없는 고통,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

여기에 대한
솔루션이 없다면
어찌 될까요.

우리의 삶도
솔루션 없는 쭌다의 삶과
다를 바 없겠지요.

붓다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솔루션’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근원적 솔루션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슬픔은
   이렇게 없애면 된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