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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만나다

붓다의 유언… 네 마음의 등불을 켜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26. 14:17

 붓다의 유언… 네 마음의 등불을 켜라

#풍경1

쭌다가 공양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붓다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그걸 본
시자(수행비서)인 아난은
너무 슬퍼서
울었습니다.

붓다가 입적을 앞두고 있을 때 시자인 아난은 절망했다. 스승이 떠나고 난 뒤에 누구에게 의지해 수행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제자의 마음을 붓다는 꿰뚫고 있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스승인
붓다의 입적도
슬펐고,
스승이 입적한 후에
누구에게 의지해
수행을 계속할지도
막막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나름대로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이가
꽤 있었습니다.

붓다가
지금껏 했던 설법을
달달 외울 정도로
명석한 아난이었지만
아직 깨달음을
얻진 못했습니다.

스승이 살았을 때도
깨닫지 못했는데,
스승이 입적한다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아난은
세상이 무너진 듯이
크게 절망했습니다.

#풍경2

그런
아난의 마음을
붓다는
알아차렸습니다.
일부러
그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아,
   울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 하고,
   떨어지게 마련이다.
   왜 그러한가.
   형성된 모든 것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붓다는 아난을 불러서 자신이 떠난 뒤에 무엇에 의지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일일이 일러주었다. 비단 아난뿐 아니라 불교의 모든 수행자를 향해 건네는 붓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챗GPT, 백성호 기자

아난은
붓다가 입적한 후에
의지할 바 없을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붓다는
말했습니다.

  “내가 입멸한 후에
   너희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 이제
   스승의 가르침은 없구나.
   우리에게
   스승은 더 이상
   계시지 않는구나.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껏 설한
   가르침과 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대 안의 등불을 켜고,
   법의 등불을 켜라.”

이게 그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입니다.

 #풍경3

붓다가
숨을 거둘 때
주위에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은
팔을 휘젓고
이리저리 몸을 뒹굴며
슬픔을 토했습니다.

많은 제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붓다가 열반한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상. 순례객들이 붓다의 열반상에 금란가사를 덮으며 기도하고 있다. 열반상 머리맡에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연꽃이 놓여 있다. 백성호 기자

그런데
이미 욕망에서 벗어난
제자들은
붓다의 죽음을
고요하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스승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고요할 수가
있느냐고요?

그들은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형성된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하게 마련임을
말입니다.
설령 그게
붓다의 육신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유한한 시간,
유한한 공간에서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삽니다.

돌아보면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왜 그랬을까요.

유한한 시공간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본질적 자유를
찾으라고 한
말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말한 겁니다.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당의 외부 모습. 그 앞에는 사원과 부도탑 등이 있었던 유적이 보인다. 백성호 기자

붓다의 육신이
무너질 때처럼,
우리의 육신이
무너질 때도
고요하고 평화롭게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게끔
말입니다.

#풍경4

붓다의 유언을
간추리면
간결합니다.

  “형성된 모든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그대 안의 등불을 켜고
   법의 등불을 켜라.”

붓다 입멸 후에
아난은
붓다의 유언을
따랐습니다.

붓다가 남긴
이치의 말씀을 등불 삼아
자기 내면의
등불도 함께 켰습니다.

두 등불이
서로 호응하며
깜ㆍ빡ㆍ깜ㆍ빡, 하도록
부지런히 정진했습니다.

결국
아난도
아라한의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쿠시나가르에 있는 붓다의 사리탑. 붓다의 다비식이 있던 곳에 세워져 있다. 백성호 기자

그러니
붓다는 2500년 전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경전을 통해,
가르침을 통해
지금도 우리 앞에서
등불을 켜고 있는
살아 있는 스승입니다.

불교 경전을
읽는 것은
붓다의 직설을
직접 듣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경전 속에
붓다의 ‘눈과 입’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이치를
관통한
깨달음의 눈,
그걸
세상을 향해서 풀어내는
설법의 입.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서 처음 다섯 비구를 향해 설법한 사르나트의 초전법륜탑. 백성호 기자

바이샬리에 있는 불교 8대 성지에는 아소카 석주가 세워져 있다. 붓다는 수행자들을 향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가라고 했다. 백성호 기자

 

이 둘이
붓다의 경전 속에
모두
담겨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명쾌하고
간결합니다.

법의 등불을 켜고,
그 빛을 따라서
내 마음의 등불도
켜는 일입니다.

붓다의 한 마디

  “그대 안의 등불을 켜고
   법의 등불을 켜라.”
종교의 경전은
모두
등불입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나침반이고,
요즘 말로 하면
내비게이션이지요.

살아 있는 스승이
내 눈앞에 있으면
직접 묻고,
그렇지 않다면
경전의 나침반을
스승 삼아
길을 가면 됩니다.


살아 있는 스승이든,
경전 속 스승이든
길을 안내할 뿐,
바퀴를
대신
굴려 주진 않습니다.

내 마음의 바퀴를
굴리는 일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니까요.

내 안으로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궁리하며
답을 찾아가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승은
길을
안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백성호의 붓다뎐’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껏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9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