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같은 詩에 빠진 2030
직장인 오다록(32)씨는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을 회사 책상 한 편에 꽂아뒀다. 최근엔 김은지 시인의 시집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에 수록된 시를 필사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오씨는 “사랑·이별 등 근래 처한 상황과 비슷한 구절,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시구(詩句)를 필사한다”며 “‘기억의 삼투압’ ‘그리움은 곡선’ 같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을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시어(詩語)가 와닿는다”고 했다.
최근 시집(詩集)을 찾는 10~30대가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시를 필사해서 올리고, 시 한 줄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는 식이다. 지난달 26일까지 집계된 교보문고의 10~30대 올해 시 분야 도서 판매율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8.2% 늘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다른 분야 도서 판매율은 40대·30대 순으로 늘어난 반면, 시집은 20대·30대순으로 증가율이 높다”며 “시가 80~90년대의 산물이라며 각광받지 못한다고 했던 것도 다 옛말이 될 만큼 젊은 세대의 선호 장르로 떠오른다”고 했다.
출판업계에서 “시는 MZ세대에게 활자로 된 ‘숏폼’”이라며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관적인 이해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호응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는 10대 독자에게 팔린 시집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122.4% 증가했다고 밝혔다. 예스24에서 소설·시 분야를 담당하는 김유리 PD는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다”며 “시 구절이 짧은 토막으로 소셜미디어에 공유될 수 있는 것도 젊은 층에서는 매력”이라고 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유튜브 등 동영상 형태와는 다르게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의 미’ 덕에 시의 매력에 빠진다는 반응도 있다. 취업 준비생 류하윤(29)씨는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좋아한다. 류씨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라는 시를 특히 좋아하는데, 글자를 읽기만 해도 시골 마을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게 경이롭다”며 “독자가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할 수 있는 시라는 형태의 비움이 더해지니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10~30대들은 시를 전통적인 순수문학 장르의 한 갈래로서 소비하기보다는 일종의 ‘텍스트 쇼츠’처럼 소비한다”며 “촌철살인의 표현, 인상적인 임팩트를 주는 ‘문장 콘텐츠’로 시어들을 소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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