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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89] 견양저육 (汧陽猪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8. 2. 15:34

[정민의 세설신어]

[189] 견양저육 (汧陽猪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2.18. 23:30
 
 

견양(汧陽) 땅의 돼지고기는 각별히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다른 데서 나는 돼지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이었다. 소동파가 하인을 시켜 견양에서 돼지 두 마리를 사오게 했다. 하인이 돼지를 사러 떠난 동안 그는 초대장을 돌려 잔치를 예고했다. 한편 견양의 돼지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하인은 도중에 그만 술이 취하는 바람에 끌고 오던 돼지가 달아나 버렸다. 난감해진 그는 다른 곳에서 돼지 두 마리를 구해 견양에서 사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잔치는 예정대로 열렸다. 손님들은 이 특별한 맛의 통돼지 요리를 극찬했다. 이렇게 맛있는 돼지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며 역시 견양의 돼지고기는 수준이 다르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자리를 파하면서 소동파가 말했다. "여러분! 맛있게 드셔주니 참 고맙소.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드신 돼지고기는 견양의 것이 아니오. 저 녀석이 이웃 고깃간에서 사온 것인 모양이오. 쩝쩝!" 사람들이 모두 머쓱해졌다.

대구 사람 하징(河澄)이 키는 작은데 뚱뚱하고 다리까지 저는 나귀를 샀다. 몇 해를 잘 먹이자 서울까지 700리를 나흘 만에 달리는 영물이 되었다. 묵는 곳마다 사람들이 이 희한하게 생긴 땅딸보 나귀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하징이 장난으로 말했다. "이건 왜당나귀오. 왜관에서 산 놈이오." 값을 물으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불렀다. 모두 수긍할 뿐 도대체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 돈을 그보다 더 줄 테니 팔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뒤에 하징이 사실을 말하자 모두 속았다며 떠났다. 그 뒤로는 아무도 그 나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징이 말했다. "세상 사람이 이름을 좋아해서 쉬 속기가 이와 같구나. 말이라 하면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나귀라 해야 귀하게 치고, 우리나라 것이라 하면 그러려니 하다가 왜산이라 하면 난리를 치니."

조귀명(趙龜命·1692~1737)의 '왜려설(倭驢說)'에 나온다. 하징은 왜소한 당나귀[矮驢]란 말을 일본 당나귀란 뜻의 왜려(倭驢)라고 장난을 쳤다. 사람들은 이름에 속아 부르는 값을 묻지 않았다.

견양이란 이름에 속고 왜려란 말에 현혹되어 실상을 제대로 못 보면 나중에 실상이 드러났을 때 민망한 노릇을 겪게 된다. 허망한 이름만 좇지 말고 실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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