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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Km 폐교로드

"지방 소멸은 가까이 와 있고, 학교는 힘이 없다"...폐교 패배감 지울 해법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4. 11. 17:01

"지방 소멸은 가까이 와 있고, 학교는 힘이 없다"...폐교 패배감 지울 해법은

[4500km 폐교로드⑩‧끝]

중앙일보

입력 2023.01.24 15:00

업데이트 2023.01.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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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통폐합으로 2018년 문을 닫은 경남 합천군 가산초등학교. 김태윤 기자

 

“서울이나 대도시에선 폐교에 대한 지방의 무력감과 좌절감, 패배감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과밀 학급을 걱정하는 판에 폐교는 딴 세상 얘기겠죠. 현재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폐교 관련 대책도 한 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20여년간 지켜본 솔직한 심정은 ‘답이 없다’입니다.”(A 지방 교육지원청 교육장)

 

“교사나 교직원 자녀를 위장 편입시키고, 마을 할머니를 신입생으로 모셔 와서라도 학교를 유지해야 할 만큼 절박한 소규모 학교가 너무 많습니다. 교사들과 지역민의 열정과 헌신으로 버티는 학교도 있지만 한계가 있죠. 취학 구역을 자유롭게 해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 다닐 수 있게 하는 정책도 결국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합니다.” (B 초등학교 교장)

2022년 폐교한 강원도 홍천군 속초초 월운분교. 김태윤 기자

“폐교, 20년 지켜본 솔직한 심정은 ‘답이 없다’”

 

“농어촌에서 학교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지역민들이 장학회를 만들고 교육청에 빌다시피 해 폐교를 막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죠. 지난 수십 년 동안 폐교나 통폐합만은 막으려고, 아니 늦춰보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지방 소멸은 너무 가까이 와 있고, 학교는 힘이 없기 때문이죠.” (C 초등학교 교장)

 

“지방 대학에 대한 권한을 중앙에서 지방 정부로 이양한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초‧중‧고입니다. 지방 대학은 경쟁력이 없어 학생이 없는 것인데, 초‧중‧고는 사람(학령인구) 자체가 없어 문을 닫는 것이잖아요. 정부가 정말로 교육 개혁을 하려면, 초‧중등 폐교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혁명적인 정책을 내놔야 합니다.” (D 지방 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25년 전 폐교한 전북 진안 구봉초등학교. 김태윤 기자

폐교는 숙명…무력·패배감에 빠진 지방   

 

인구 감소로 소멸 위험에 직면한 지방에서 폐교는 그저 일상이다. 이미 4000곳에 가까운 학교가 사라졌고, 현재도 매년 수십 개 학교가 문을 닫는다. 1990년대 들어 본격화한 ‘폐교 도미노’는 대책도, 대안도 없이 30년째 이어졌다. A 교육장의 말대로, 지방 소멸에 처한 지역에선 폐교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기자가 폐교 실태를 직접 보고 듣기 위해 약 두 달간 24개 지역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역시 “아이들이 없는데 어쩌겠느냐”였다.

학교 통폐합으로 2018년 문을 닫은 경남 합천군 해인초 내에 있는 이승복 동상. 김태윤 기자

 

자유학구제, 농촌 유학, 특성화 교육...작은 학교 살리려는 몸부림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상북도교육청은 2019년부터 자유학구제를 시행 중이다. 주소 이전 없이 학구를 자율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단, 학생 수가 많은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만 전학‧전입이 가능하다. 충북교육청 역시 ‘공동학구제’라는 비슷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전남‧전북 교육청은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농촌 학교로 전학을 오면 학부모에 주택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준다. 강원도는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특성화된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를 지원한다.

 

일부 성과는 있었다. 강원도 영월군 신천초, 경남 남해군 고현초‧도마초, 전남 해남군 북일초 등은 최근 2~3년 새 학생 수가 두세 배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강원도 강릉시 옥천초 운산분교처럼 차별화된 특성화 교육으로 2013년 5명이던 전교생이 지난해 56명으로 늘며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된 학교도 있다.

교명이 네 번이나 바뀐 끝에 2020년 폐교한 강원도 영월군 마차초 공기분교장. 김태윤 기자

“공모에 탈락한 학교는 소멸 가속화” 

 

하지만 그야말로 ‘일부의 성과’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작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된 일부 학교에서 학생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공모에 탈락한 곳은 소멸이 되려 더 가속된다”고 털어놨다. 자유학구제 역시 먼 거리 통학 등의 문제로 학부모들의 반발이 작지 않다. 농촌 유학 프로그램은 전학 온 학생들이 짧게는 6개월, 길어야 1~2년 시골 학교에서 머물다 도시로 돌아갈 것이라는 회의론이 많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