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오래 가려면 ‘배터리 스와핑’처럼 교류 활발해야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인문학자
2019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서 로빈슨 가족은 자원의 고갈과 오존층 파괴로 이주할 만한 장소를 찾아 우주로 떠난다. 어떤 미지의 장소에 불시착하여 우주선을 바다에 빠뜨려버리고 추운 밤을 맞이한다. 바다마저 꽁꽁 얼어붙는 절대 위기의 순간 목숨 걸고 한 행동은 우주선에서 리튬이온전지 팩을 꺼내오는 것이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기기를 동일한 전지로 사용한다는 배터리 스와핑(Battery Swaping)이 전기차에서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사물이 배터리로 움직이는 사물 배터리(BoT·Battery of Things) 시대다. 휴대용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소형전지뿐만 아니라 전기차, 에너지저장시스템용 중대형전지까지 수많은 사물의 동력원이 되고 있는 전지의 원리를 살펴보자.
#멈추지 마, 계속 왕래하는 이온
마이클 패러데이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사진)는 고대 그리스어 ‘가다(eimi)’라는 동사의 현재분사 이온(ion)을 자신이 발견한 입자에 이름으로 붙였다. 현재분사는 동작의 진행상(aspect), 그러니까 ‘가는 중’이나 ‘계속 가고 있는’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이온은 패러데이의 물 전기분해 실험에서 두 개의 전극을 향해 ‘계속 가고 있는’ 입자였다. 이후 이온이 두 물질 사이를 이동하면 전류도 흐른다는 사실이 이탈리아 과학자 알렉산드로 볼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온의 이동을 돕는 전해질도 준비되었다. 전해질 속에 아연과 구리를 담그면 이온화가 높은 아연은 산화 반응이 일어나 전자를 내놓는 반면, 이온화가 낮은 구리는 환원 반응이 일어나 전자를 얻었다. 전자가 음극 아연에서 양극인 구리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생성됐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지는 전해질을 통해 이온화 과정을 유도하고 거기서 생기는 전자를 이용해 전류를 발생시킨다. 이 전지를 ‘볼타 전지’라 불렀고 전류의 전압을 측정하는 단위인 볼트(V)도 볼타의 이름에서 따왔다. 하지만 볼타 전지는 전압이 약해서 한 쌍으로 된 아연·구리 전해질을 몇 개씩 겹겹이 쌓아올려야 했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휴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날 휴대에 편한 1.5볼트 건전지는 음극에 아연통, 양극에 탄소막대·망간 그리고 그 사이에 전해질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아연이 모두 산화되면 더 이상 전류가 발생되지 않는데 구리로 간 이온이 더 이상 아연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회용 전지는 이온이 그 행위를 멈추면 충전되지 않아 버려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사고 갈아 끼우는 사람을 귀찮게 했다.
재충전용 전지가 곧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했다. 이온이 두 물질 사이를 계속 움직이게 할 수는 없을까? 이온의 계속적인 진행은 전지가 산화와 환원을 반복함을 의미한다. 산화란 어떤 물질이 산소를 흡수하여 전자를 잃고 이온화된 것이다. 그래서 산화된 물질이 환원되려면 잃었던 전자를 흡수하고 이온이 그 물질로 다시 이동하면 된다. 이렇게 양극에 있던 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면 전지가 충전되고 반대로 음극의 이온이 양극으로 돌아가면 전지는 방전된다. 이온이 음극으로 한 번만 가는 전지가 1차 전지라면, 음극과 양극을 계속 오고가면 2차 전지다. 현재 진행이 가능한 이온 교환은 곧 재충전용 납축전지(1859년), 니켈-카드뮴 전지(1899년)로 실현됐지만 이온의 진행 횟수가 많아지면 전지의 성능도 크게 감소되다가 그 수명을 다한다.
위에서 말한 2차 전지는 일정한 횟수 이상 충전되면 못 쓰게 된다. 전지의 충전이 많을수록, 그러니까 이온이 두 개의 전극을 오가는 횟수가 계속될수록 충전 용량이 줄어들다가 아예 못쓰게 되는 것이다. 전지의 충전 횟수는 충전 사이클로 말하는데, 1회 충전되고 방전된 후 다시 충전되는 게 한 사이클이다. 충전 사이클이 많으면 많을수록 충전되는 전류의 양은 감소한다.
#무엇을 기억하니-메모리 효과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메모리 효과’라는 재미있는 생각이 도입되었다. 그러니까 전지가 어느 특정 수준까지 충전되고 방전을 시작하면 전지는 바로 이전 충전 용량만 ‘기억’하여 다음부터는 그 수준 이상을 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로 이전에 전지가 60%까지만 충전되었다가 방전됐다면 마치 전지가 이것만 기억하는 듯 그 수준 이상을 넘지 않고 또 그것보다 적은 용량이 충전되면 그것만 기억해서 용량은 계속 줄 수밖에 없다.
2차 전지는 기억 효과 때문에 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이온이 두 전극 사이에서 더 많이 오고간 추억도 있었을 텐데 전지는 하필이면 왜 줄어든 용량만 기억하는 것일까? 전지가 다시 일정 충전 용량을 회복하려면 일단 완전히 방전되도록 한 후 다시 충전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전지는 또다시 새로운 기억을 하면서 이전의 기억을 잊고 새 출발 한다.
드디어 1976년 빈번한 이온 교환에도 성능이 크게 감소되지 않는 전지가 영국 태생의 미국 화학자 스탠리 휘팅엄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전지는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가볍고 이온화 경향이 가장 강한 리튬을 사용했다. 하지만 휘팅엄의 리튬이온전지는 물에만 넣어도 바로 반응이 일어나 너무 불안정했을 뿐만 아니라 화재까지 자주 일어났다.
그런데 1980년 금속 산화물과 함께 있을 때 고전압을 발생시키면서도 안정적인 리튬이온전지가 독일 태생의 미국 과학자 존 굿이너프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전지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으로 구성돼 있으며 양극에는 리튬코발트산화물이, 음극에는 리튬이 사용되었다. 분리막을 통해 양극에 있는 리튬코발트산화물과 음극에 있는 리튬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고 액체 전해질을 통해서는 리튬이온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했다.
양극의 리튬이온은 외부에서 전압을 받으면 분리막을 통과해 음극의 리튬으로 들어가고 양극에서 분리된 전자는 도선을 통해 음극의 리튬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충전된 전지는 전류를 기계장치에 내어놓으면서 방전이 시작된다. 음극에 있던 이온이 다시 분리막을 통과해 양극으로 이동하고 음극의 전자도 도선을 통해 양극으로 가서 다시 결합한다.
하지만 리튬이온전지가 상용화되기에는 아직까지도 부피가 크고 불안정했다. 1985년 작고 가벼운 리튬이온전지가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번에는 음극의 리튬금속이 석유코크스로 대체되어 이전보다 안정화되었다. 결국 리튬이온전지가 소니의 ‘워크맨’에 장착되면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후 충전용 전지가 소형전자기기의 1차 전지를 대체하면서 2차 전지의 본격적인 시대가 열렸다.
2019년 노벨화학상은 충전용 전지가 상용화되는 데 공로를 세운 세 명의 과학자 스탠리 휘팅엄, 존 굿이너프, 요시노 아키라에게 돌아갔다. “그들이 재충전이 가능한 세상을 창조했다”라는 노벨위원회의 멋진 찬사가 말해주듯, 충전용 전지는 세상을 새롭게 창조했다. 충전용 전지가 인간의 이동성을 증대시켰고 어디를 가든 전지를 재충전하는 사물 배터리 시대를 실제적으로 연 것이다.
리튬이온전지는 다른 2차 전지에 비해 메모리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고에너지밀도를 갖고 있다. 전지가 저장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양은 전지의 용량에 전압을 곱한 것인데 이것을 결정하는 핵심 소재가 양극 소재다.
리튬이온전지는 양극에 니켈·코발트·망간 산화물 소재들과 리튬이온을 주로 사용하고 음극에 흑연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리콘이 음극 소재로 거론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리콘 음극재의 단위 에너지 용량이 흑연보다 약 10배가량 높다. 하지만 부피 변화가 흑연보다 크기 때문에 부피 변화를 줄이려는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상용화된다면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혁신적으로 늘리는 차세대 소재가 될 것이다.
#누가 힘세고 오래갈까-리튬이온전지
아무리 좋은 리튬이온전지라 해도 에너지밀도가 높은 만큼 위험성도 크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지의 양극과 음극 사이에는 이온을 잘 이동시키기 위한 전해질이 있는데 가연성인 데다가 액체라 예상치 못한 이온의 흐름이 만들어지면 열 생성량이 순간적으로 높아지면서 매우 불안정하게 되어 화재나 폭발이 발생한다. 우리로 치자면 사람은 좋은데 격이 없이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니 가끔 버럭 하는 성질을 지닌 듯하다.
액체 전해질의 대안으로 고체로 된 전고체전지가 거론되고 있다. 전고체전지는 폭발의 위험성이 낮고 0℃ 이하의 저온이나 60~100℃ 고온에서 액체전해질보다 전도 성능이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리튬이온전지에 비해 대용량을 구현하여 전기차 배터리로도 알맞다.
또한 배터리는 폭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충전 시 리튬이온은 전지에 골고루 퍼져 이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음극 표면의 특정한 곳에 ‘덴드라이트’가 증식하면서 사람의 종양처럼 쌓이게 된다. 덩이가 커진 덴드라이트는 분리막을 뚫고 양극을 강타해 전기 쇼트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의 악성 암세포처럼 리튬이온전지의 덴드라이트는 결국 전지가 폭발하게 만든다.
전지는 두 전극 사이의 이온이 계속 오고가는 원리를 활용한 장치다. 이것을 발견하고 고대어의 ‘계속 진행하는’이란 이름을 붙인 패러데이의 통찰이 섬뜩하다. 두 전극 사이에서 이온의 계속된 진행이 없을 때 전지는 일회용이다. 물론 이온의 계속된 왕래가 있어도 좀 못한 수준을 기억하면 전지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리튬이온전지처럼 최고의 전지가 되어도 이온이 너무 들끓는다거나 한쪽에만 증식되면 폭발의 위험성을 지닌다.
사람 관계가 그렇듯 일회용 전지가 되지 않으려면 왕래가 있어야 하고, 그 수명이 오래가려면 항상 새롭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기억하며, 갑자기 폭발하지 않으려면 버럭 들끓거나 한쪽에만 치우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올 한해는 이온 교환이 안정적인 전지를 서로서로 주고받는 ‘배터리 스와핑’이 있었으면 한다. 그것을 위해서 계속 왕래할 것. 좋은 추억을 만들어 기억할 것. 건강을 최대한 유지할 것. 버럭 화내거나 혼자 골몰하지 말 것.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계속 만나는 좋은 관계가 되려면 전지처럼 해보자.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키워드 필로소피』 『별별명언』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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