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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바다의 심장을 노래하다 이생진 시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3. 22. 18:42

한국의 대표시인을 찾아서 1

 

시에 살다, 섬에 살다

고독한 바다의 심장을 노래하다 이생진 시인

 

대담 김남권 시인 (본지 주간)

정리 서지숙 시인

 

“또 태어나면 시를 쓰자, 운명이야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손을 내밀든 시 때문에 나는 가난하지 않았으니까, 시는 정말 고마웠다. 그 모두들 날 외면할 적에도 시만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이생진 시인은 올해로 92세를 맞이하고 있다. 첫 시집을 1955년 출간하고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으니까 문단생활 만해도 올해로 65년째가 된다. 그는 그동안 38권의 시집을 출간하고, 시선집 3권, 시화집 4권, 산문집 2권을 펴냈다. 1978년에 발표한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바다와 섬과 사랑을 노래한 시로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 시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 시인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주특별자치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2009년 성산포 오정개 해안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 공원이 만들어 졌고, 2012년에는 신안군 명예군민이 되었다. 2018년 구순 기념으로 그동안 출간한 작품집의 서문을 모아 ‘시와 살다’를 출간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한풀 꺾인 5월 1일 오전 10시 30분경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이생진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늘 이생진 선생님 곁에서 시인의 행로를 동행하고 있는 음유시인 가수 현승엽 형님과 시를 쓰며 소설의 영역까지 열정을 보이고 있는 서지숙 작가와 함께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거실 가득 시인의 향기가 쏟아져 나왔다.

섬을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고독한 슬픔을 사랑한 시인답게 아침밥을 손수 지어 드시고 사람이 그리워서 문 앞을 서성이셨을 선생님의 눈빛에서 성산포 냄새가 났다.

외로움이 가득 차서 우리나라 섬 3천 6백 개 가운데 2천 개를 돌아다녔다는 이생진 선생님의 시속에는 늘 “바다가 있다. 노을이 있다. 별보다 가깝다.”는 시인의 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본지는 이생진 선생님이 그동안 출간한 작품집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시와 삶의 철학을 조명하고자 한다.

 

김남권: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코로나 때문에 온 나라가 의기소침해 있는데 다행히 선생님 건강이 좋아보이셔서 참 다행입니다. 2018년에는 그동안 출간하신 시집과 시화집 시선집 산문집의 서문만을 모아서 ‘시와 살다’를 출간하셨는데 저는 이 책이 선생님의 시인의 생애와 철학이 담겨 있어서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생진: 시를 써 놓으면 그게 바로 나이지요. 시에 내가 없으면 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시를 살아 온 것이지요. 시가 있어서 행복했고, 시가 내 인생의 전부였지요.

다시 태어나도 나는 시인이 될 것입니다.

 

김남권: 1955년에 첫 시집 ‘산토끼’를 출간하셨는데 그 시집 서문에는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죽어도 아니다. 한 번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다. 사람 때문에 시의 희생을 수 없이 하더라도’라고 쓰셨습니다. 그 때 이런 서문을 쓰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생진: (서재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게 그 때 시집이에요. 그 때는 가리방을 긁어서 등사로 책을 만들었지. (첫 시집 ‘산토끼’를 비롯해서 두 번째 시집 ‘녹벽’ 세 번째 시집 ‘동굴화’ 네 번째 시집 ‘이발사’ 산문집 ‘아름다운 천재들’을 살펴보다가) 너무 오래 도니 책이라 이제는 보존이 어려워서 곧 성산포에 문학관이 생기면 기증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때 쓴 서문은 그게 시를 살아가는 이치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김남권: 네 번째 시집 ‘이발사’의 서문에는 ‘위대한 인간의 정치와 위대한 정치의 인간을 생각해 본다./온순한 바람이 불어/벚꽃이 지게 하라/ 빨간 마음이 익어/보들한 인간이 살게 하라’라고 밝히셨는데 이 때 서문을 쓰던 때가 1958년 4월이었는데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현실에 대한 회의와 허무적 상황이 녹아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는지요?

 

이생진: 요즘 시를 쓰는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쓰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쉽게 써서 읽히고 누군가의 가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 진짜 시는 사람의 가슴에서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언어유희에 빠져서 감동이 없는 시는 이미지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만들지 말고 90이 넘도록 써야 비로소 시에도 철이 드는 법입니다. 90까지는 써야 시가 제대로 보입니다.

 

김남권: 1962년 첫 번째 편저인 산문집 ‘아름다운 천재들’에는 은사인 조재억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백철, 조병화 이상 시인들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분들과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지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 주세요.

 

이생진: 아, 네 그분들과 친하게 지낸 편이지요. 특히 조병화 선생님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품이라서 싫어하는 사람이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서 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특히 럭비 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럭비를 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무척 반가워하고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면서 예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2천 여쪽이 넘는 작품집을 꼼꼼히 살펴 보고 직접 내가 겪은 이야기와 함께 소중한 기억을 더듬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서지숙: 두 번째 편저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에서는 자살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꾸준하게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이 시기에 자살에 대한 화두가 등장하게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생진: 미술가들의 생애와 작품들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습니다. 피카소에 대한 시를 쓰다 보니 그가 92세에 사망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 치열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이 출발점이 되어서 30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를 쓰게 되었는데 사실 여기서 ‘너도 미쳐라’는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당시 80이 넘은 나이에도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고 그 누군가의 삶에 흠뻑 젖어 아주 진한 사람을 살고 싶은 갈증 때문에 택한 사람이 반 고흐다.

 

김남권: 7번째 시집 ‘자기’의 서문에는 ‘시야, 너는 참 고맙다. 너는 맑은 하늘이 만들어준 내 평생의 날개다’라고 쓰시면서 김현승 시인과 조병화 시인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셨는데, 만약 선생님께서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을 어떻게 살아 오셨을까요?

 

이생진: 그거야 너무 뻔하지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판검사나 의사 변호사가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김남권: 그러면 돈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고 권력도 생기고 하셨을텐데, 지금의 선생님 모습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이 되지는 못하셨을테니 어쩌면 선생님께 시인이라는 이름은 운명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리고 드디어 1978년 진짜 운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30여 년간 섬으로 떠돌아 다니시면서 수천 개의 섬에서 수천 개의 이야기를 발굴하신 그 흔적들을 수록하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나오게 되는데요. 그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처음에는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았고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시집에 있는 여러 편의 시를 한 라디오 피디가 연작시 형태로 구성하여 방송 전파를 타면서 입 소문이 나게 되었지요, 1987년과 2008년에 개정판을 출간하게 되면서 전국의 시낭송 애호가들이 낭송시로 애송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반 독자들에게도 소문이 나게 되어 나로서는 참 고마운 시집입니다.

 

김남권: 이 시집에는 성산포 외에도 안면도 황도 덕적도 용유도 울릉도 독도 완도 진도 신지도 고금도 흑산도 거제도 제주도 내나로도 외나로도 쑥섬 거문도 등 수많은 섬들이 등장하는데 굳이 섬을 고집스럽게 찾아다니시면서 시를 쓰시고, 섬 사람들을 만나고 명예 군민이 되기도 하셨는데 섬을 자주 찾으시는 사연이 있으신지요?

 

이생진: 건강이 허락한다면 우리나라 섬 모두를 다 돌아보고 싶어요.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시만 쓰고 싶어요. 섬에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더 깊게 떠오르거든요. 얼마 전에도 한계령에서 양양바다를 보고 왔는데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더군요.

 

서지숙: 그래서 선생님은 14집 ‘섬마다 그리움이’에서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그리움을 쉽게 잊어버리는 요즈음 사람들에게 그런 섬 하나 권하고 싶다’고 하셨군요.(웃음)

 

이생진: 네, 하하.

 

김남권: 14집에는 아주 특별하게 섬 이름과 시의 주제가 되는 제목이 연관되게 붙어 있어서 선생님의 섬 사랑과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저도 읽으면서 시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녀도-섬 나그네, 만재도-가고 싶은 곳, 대장도-팔순 할머니, 독도-고독한 침묵, 하태도-파도 소리와 어머니, 우이도-패랭이 꽃, 장자도-닭의 장풀, 말도-나리꽃하고 자연, 국흘도-원추리, 비안도-굴 따는 할머니, 평일도-나 혼자’ 등 다양한 시들이 섬으로 저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5집에서는 ‘불행한 데가 닮았다’라는 제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이생진: 아, 이 때는 바다와 섬에서 벗어나 실제로 불행한 시절을 보내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느라 내 생애가 가장 슬펐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강도가 들이닥쳐 돈을 빼앗고 스토킹을 하듯이 계속 따라 다니면 괴롭혔습니다. 심지어는 감옥에 들어가서도 편지로 나를 괴롭히더니 출소해서도 따라다니고 전화로 욕설과 협박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시련을 주었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시인을 괴롭히는 이런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황폐해져서 참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김남권: 17집, ‘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와 18집 ‘먼 섬에 가고 싶다’ 20집 ‘숲 속의 사랑’ 21집 ‘하늘에 있는 섬’ ‘거문도’‘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등도 모두 섬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18집은 가파도 마라도 모슬포에서 3년 동안 쓴 시를 수록한 것 같은데요. 제주도와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예전부터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 섬들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이생진: 아, 그게 내가 모슬포에서 51년부터 54년까지 군대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인연이 되기 시작했고 그곳이 또 이중섭이 원산에서 월남해 계시던 곳이어서 훗날 더 정겹게 느껴졌고 사진작가 김영갑 씨와의 직접 적인 인연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20집 ‘하늘에 잇는 섬’은 유서처럼 쓴 시로 만재도에서 3일 만에 쓴 시입니다. 파도 때문에 수차례 접안을 못하고 돌아 온 만재도에 처음 들어간 날, 박희진 선생님과 함께 섬에 도착해 시만 섰습니다. 그리고 거문도는 역사적 인물이 많은 곳이어서 이야깃 거리가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당구가 도입된 게 거문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서지숙: 22집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를 발간하셨는데 시집 서문에는 ‘등대는 외로운 사람의 우체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제가 외로워서 그런가요?(일동 웃음)

 

이생진: 낮은 자세로 시를 쓰면 다 등대가 되는 것이겠지요. 오랫동안 섬사람들을 살펴 보면서 그들의 고독을 함께 나누고 싶었나 봅니다. 두 번째 산문집 ‘걸어 다니는 물고기’는 섬에 들어가 빈집에 신문지 한 장 깔고 자면서 일부러 고독을 찾아다니면서 쓴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게 시심을 찾아다니는 길이고 운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홍도’ 등대가 인상에 많이 남습니다.

 

김남권: 첫 번째 시선집 ‘시인과 갈매기’ 서문에는 ‘나는 나를 줄였습니다. 백을 열로 줄이고 열을 다시 하나로 줄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도 줄이고 산도 줄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나의 시집에서 나를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이런 서문을 쓰시게 된 구체적인 변화가 생기게 된 원인이 있으셨는지요?

 

이생진: 낮은 자세로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팔순이 넘어서 세상의 욕심에 너무 기대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인지로 모릅니다.

 

김남권: 2001년에는 ‘혼자 사는 어머니’를 출간하게 되시는데 서문에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네 시는 왜 그렇게 슬프냐?”“세상이 슬퍼서 그래요”라고 어머니와 주고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이생진: 시를 쓰면 꼭 어머니에게 먼저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겠다고, 너무 시를 어렵게 쓰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시를 쓰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보여드리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가 읽고 공감하고 감동하는 시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남권: 2003년에는 또 하나의 히트작이 나오는데 바로 시낭송가들 사이에서 낭송 순위 1위로 꼽히는 ‘그 사람 내게로 오네’입니다. 이 시는 고독한 여인을 상징으로 세우고 선생님의 내면의 고독을 표현하고 싶은 처절한 심상을 담은 것으로 읽혀졌습니다.

가슴에 눈물이 맺히는 시로 저도 무대에서 낭송하며 눈물을 흘렸던 시입니다.

 

이생진: 이 시에는 황진이가 등장하는데 사실 황진이의 삶을 이야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고독하고 한 많은 여인의 인생을 통해 내 안에 갇혀 있는 고독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독이 얼마나 많은 시를 불러오는지 외딴 섬을 혼자 걸어 본 사람은 알거다’라는 서문처럼 그 고독이라는 상징에 여인이 등장하여 나를 대신해서 시 속에서 울고 있는 것이지요.

 

김남권: 김삿갓의 흔적을 따라 전국을 순례자처럼 다니시면서 쓴 시집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2004년에 발표하신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는 그런 선생님의 땀냄새가 배어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생진: 네, 이 시집을 쓰기 위해 작정하고 몇 년을 김삿갓의 흔적만 따라 다녔습니다.

강원도 영월의 와석리를 비롯해서 정선 동강, 금강산, 무등산, 지리산 자락, 하동, 광양, 순천, 보성 화순 등 그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그 발자국을 느끼면서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김삿갓이 되어 있었지요.

 

김남권: 29집 ‘독도로 가는 길’ 31집 ‘서귀포 칠십 리길’ 32집 ‘우이도로 가야지’ 세 번째 시화집 ‘시와 그림으로 만나는 제주’ 33집 ‘실미도, 꿩 우는 소리’ 등 섬이 다시 등장하여 아직 가보지 않은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상상력을 불러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섬은 선생님에게 끊기 어려운 마약 같은 중독성을 불러 오나 봅니다.

 

이생진; 지독한 중독이죠(웃음). 특히 실미도는 지금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들르는 곳인데, 실미도 만큼 나를 아프게 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아픔을 모르고 지냈어야 했는데 혼자 냉가슴을 앓을 때가 많아요. 가끔 대방동 유한양행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많이 힘듭니다.

 

김남권: 34집에는 요즘 사람들의 SNS를 풍자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생님의 스마트폰이 최신형인 걸 보니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는 감각 역시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이 시집에는 골뱅이 이야기, 스마트 폰, 메모, 카카오 톡 등 재미있는 소재가 등장합니다.

 

이생진: 네, 스마트 폰이 있어서 참 좋아요. 궁금한 것도 바로 물어볼 수 있고, 길을 걷다가 꽃 이름을 모르면 사진만 찍어서 올리면 바로 알려 주기도 하고, 전화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연락해도 바로 답장이 오고 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소통 감각을 이해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김남권: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 인 것 같습니다. 35집 ‘어머니의 숨비소리’를 비롯해 36집 ‘섬 사람들’ 37집 ‘맹골도’까지 여전히 섬 이야기가 등장하고 특히 ‘맹골도’는 아픈 사연이 담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무연고’는 선생님의 구순 인생을 회고하는 대표적인 서문이 담긴 것 같아 가슴이 찡했습니다.

 

이생진: 네, 맹골도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역이지요. 그 아픔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못난 어른들의 죄를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문도 ‘울고 싶다. 울고 있으면 어머니가 오실 거다. 어머니는 내가 우는 이유를 아시니까’로 썼지요.

그리고 ‘무연고’ 서문에는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 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 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하고 마무리 지었지요.

이게 매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인의 인생과 인간의 나이를 더한 생애 동안 마지막으로 하고 말입니다.

 

김남권 서지숙: 선생님 고맙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소중한 자료와 선생님의 시와 인생을 담은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집 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생진 시인의 자선시

 

 

生子

-살아서 시를 쓴다는 거

 

이 생 진

 

공자孔子

노자老子

맹자孟子

손자孫子

순자荀子

장자莊子

주자朱子

한비자韓非子

(가나다순)

 

나도 내 이름에 <子>를 달아본다

<生子>

멋있다

생기가 돈다

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유일한 생존자

이것이 특혜다

 

산 자에겐 고독이 있다

그 고독을 갈고 닦아 시를 쓴다

얼마나 행복한가

生子!

나는 지금 시를 쓴다

 

*시집 '무연고無緣故' 작가정신/2018

 

시인의 눈물

 

여섯 번이나 촛불을 들고 나왔다는데

시가 죽었다고 우는 사람

100만 시민이 촛불 들고 모인 광장에

시가 죽었다고 땅을 치며 우는 사람

어째서 자유 민주주의가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느냐

그는 피켓도 구호도 없이

새파란 눈물만 청운동까지 밀고 와

통곡의 벽을 어루만지듯 북악산 성벽을 쳐다보다가

요단 강을 지나 사해死海로 간다

가면서 죽은 바다에 엉기는 소금기

그게 그 사람의 시다

(2016.12.3.)

 

산책길에서

-똥과 담배연기와 시와

 

 

아침 이 시각은

가장 깊이 있는 속을 꺼내고 싶은 시각이다

개는 똥을 꺼내고

골초는 속타는 연기를 꺼내고

나는 시를 꺼내고

 

앞서가던 개가 똥을 누고

따라가던 골초가 담배를 입에 물 때

나는 골초 뒤를 따라가며 코를 막았다

이 시각은 그렇게 민감한 시각이다

 

개는 똥을 누고 꼬리를 흔들고

골초는 꽁초를 던지고 침을 뱉는다

그 순간 나는 시를 쓰다가 개똥을 밟았다

똥 묻은 발로 꽁초에 남아 있는 불씨를 끄다가

나는 시를 놓치고 말았다

(2015.11.5.)

 

우이도 돈목

-모래밭

 

『우이도로 가야지』라는

시집을 펴내고도 또 우이도로 간다

가보니 시가 남아 있다

이 마을 어느 사람은 나보다 먼저 죽고

이 마을 어느 여자는 나를 두고 시집갔다

이렇게 써도 시가 되는 모래밭

나는 모래밭에 앉아 게구멍을 쑤신다

게구멍을 쑤신다는 말은 야하다

아무도 없는 자리이기에 해본 말이다

여기는 나를 감시하는 SECOM도 없고 CCTV도 없다

나를 물어뜯고 싶어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수가 된 게뿐이다

(2011. 9.7)

 

나의 실종

-꿈

 

그건 실종이 분명하다

가거도 항리마을 절벽에 있는 빈집

그 집에서 혼자 시를 쓰며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것이 꿈으로 이어졌으니

나는 행복하다

 

항리 폐촌마을

문간은 잡풀이 길을 막고

잡풀엔 달팽이와 무당벌레가 진을 치고

습기 찬 돌담엔 지네가 지나가고

기다란 뱀이 바위 밑으로 들어간다

방바닥엔 천장에서 내려앉은 흙먼지와 찢어진 벽지가 널브러져

앉을 곳이라곤 손바닥만큼의 여유도 없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뒷간에서 걸어 나오는 검은 고양이

뭘 먹고 사나

쥐 잡아 먹고 살지

그럼 쥐는 뭘 먹고 사나

개구리? 두꺼비?

그러자 두꺼비가 채마밭에서 굼틀거린다

그렇게 축축하고 지저분한 빈집이

꿈에서 단조롭게 리모델링 되니

나는 살아서 행복하다

낮에는 담 너머로 바다를 보고

밤에는 반딧불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별과 함께 날아다니니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으로 시를 보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비바람치고 파도가 거세게 일어

바위란 바위를 못살게 굴던 돌풍이

하얀 옷차림의 여인을 빈집 마당에 내려 놓고 간다

그녀는 방문을 드르륵 열며 살려달라고

내가 할 소리를 그녀가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가짐이

어찌나 능란한지 척척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가마득한 절벽으로 끌고 나가

나를 끌어안고 뛰어내린다

한참 내려오다가 ‘앗’ 하는 순간 나는 물속에서 눈을 떴고

그녀는 온데간데 없다

나는 바닷속에서 길을 잃었다

 

우도분교

 

내가 겨울에 앓는 병은

섬에 가고 싶어 안달인 안달병인데

지난 겨울엔 고흥에 있는 우도에 갈 수 있어 병이 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엔 우도가 많다

제주도 우도

연화도 우도

금일도 우도

고흥에 우도

 

잘 알려진 우도는 성산포에서 철선으로 가는 우도

그런데 고흥의 우도는 바닷물이 빠져야 갈 수 있는 섬이다

진짜 외로움이 갯벌에 깔려 있어

해 떨어지기 전에 가야 하고

그 애가 하교하기 전에 가야 하고

학교가 없어지기 전에 가야 한다며

급한 마음에 질퍽대는 노둣길이 위태롭다

 

남양초등학교 우도분교

한때 68명이 뛰어 놀던 운동장에

지금은 학생 하나

둘이 타고 노는 시소는 없고

혼자 와서

혼자 놀다

혼자 가는

그러니 얼마나 외로울까

그래서 더욱 보고 싶은 학생인데

오늘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40점은 부족해

평생 자화상만 그리고 싶어

얼굴만 자화상인가

해바라기도 자화상이고

사이프러스나무도 자화상이고

책상도 의자도 고통도 의지도 자화상이고

당신을 그려도 그건 내 자화상이야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내가 나를 보고 싶어서

남들이 나를 비웃는 웃음을

남들이 내 얼굴에 뱉는 침을

닦아주고 싶어서

그리다가 구겨버리고 또 구겨버리고

그러다가 얼굴이 종이처럼 얇아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알이 빠질 것 같고

입이 마르고 혓바닥이 닳고

그럴 때 마다 거울은 얼마나 이맛살을 찌푸렸을까

거울은 한번도 나를 동정한 적이 없어

거울은 정직해서 탈이야

그걸 동정하려고 애쓴 것은 붓

붓은 나보다 고달프지

나는 지루하면 술을 마시는데

붓은 술도 못 마시고

독한 테레빈유나

딱딱한 팔레트 바닥을 핥고

 

남들이 나를 따뜻이 대해줬던들

나는 나만으로도 만족했을 텐데

사람들은 나를 짐승처럼 여기니

내가 나를 동정하지 않으면

나를 돌려받을 수 없어

나는 왜 내가 불쌍한가

 

*시집『반 고흐, ‘너도 미쳐라’』(우리글/2008)에서

 

 

그 사람 내게로 오네, 저걸 어쩌나

 

소녀에겐 불을 꺼도 생기는

세 그림자가 있습니다.

한 그림자는 처음부터 보지 못한 아버지이고

또 한 그림자는 상여에서 내려오지 못한 총각이고

또 한 그림자는 존경하는 스승인데

그 세 그림자가 스승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이

소녀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그 사람 내게로 오네

상여를 부수고 내게로 오네

깊은 밤 소리 없이 방문 열고 들어오네

이불을 덮어쓰면 이불 속으로 들어오고

오금을 틀면 오금 속으로 들어오네

 

 

숨겨두고 순결하단 말 들을까

들어내어 화살을 맞을까

태어나 아비 정 모르다가

서러운 어미 정 옮아올 제

그 사람 내게로 오네

 

어~어 어~어 어~어

 

짝사랑에 골병들어 앓다 가는 저 총각

사랑한단 말 한마디 그게 뭐 어려워서

가슴에 묻어둔 채 속 태우다 가는구나

 

‘진아아~‘

이름 한번 시원히 불러보지 못하고 북망 가는 저 총각

애처로운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내 집 앞에 서 있는데 저걸 어쩌나

 

마을 사람들 숨죽이고 지켜본다만

당돌하게 내 방으로 뛰어들어

넋이 부서지느라 억장 무너지는 소리 귀담으며

 

벽에 걸린 치마저고리 움켜쥐고 뛰쳐나와

‘맺힌 한 풀어주라’ 지붕에 던졌더니

그제야 상여 발걸음을 떼는구나

 

어~어 어~어 어~어 어~어

 

내가 너에게 치마저고리를 던져줬다는 거

그건 너에게 내 가슴을 줬다는 말

잘 가라, 돌아보지 말고 잘 가라

내 영혼도 너를 따라 가고 있으니

돌아보지 말라 돌아보지 말라

 

그리운 바다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이를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이를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 나무에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 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