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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없었으면 서울은 싹수없는 도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5. 19. 14:25

[주본세]

(34) "북한산 없었으면 서울은 싹수없는 도시?"

중앙일보

입력 2022.05.19 07:01

 

'서울에 북한산, 관악산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폭동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 서울 시민들이 주말 산에 올라 푸는 스트레스를 다 합치면 정권 하나는 충분히 날리고도 남을 터다. 그만큼 산은 우리에게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준다.

산은 다양한 인생을 끌어들인다.

회사에서 밀려난 중년 직장인은 산에 올라 섭섭함과 울분을 삭인다. 은퇴한 퇴직자는 산과 대화하며 삶의 무상함을 달랜다. 말단 사원은 산에서 부장님과 화해하고, 저 아래 계곡에서 동창회 친구들은 학창시절을 떠들썩하게 소환한다. 갱년기 아내가 살며시 남편 손을 잡는 곳도 산이다. 산이 아니었다면 나라도, 기업도, 가정도 스트레스 만땅이었을 거다.

필자는 산이 좋아 아예 산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 눈 뜨면 산이 먼저 보이고, 먼 산 소쩍새 울음에 잠을 청한다. 요즘은 5월 산이 주는 싱그러운 변화에 감탄하고, 힘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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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그 웅대한 몸으로 태양의 기운을 받아 나무를 키우고, 숲을 만든다. 비를 받아 계곡을 적시고, 온갖 곤충과 동물을 키운다. 지리산 제석봉에서 본 일출.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오늘, 그 산 얘기다.

주역 26번째 '산천대축(山天大畜)'괘를 뽑았다. 산을 상징하는 간(艮, ☶)이 위에, 하늘을 의미하는 건(乾, ☰)이 아래에 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일 뿐이다. 그런데 '산천대축'의 형상은 거꾸로다. 산이 위에, 하늘이 아래에 있다. /바이두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일 뿐이다. 그런데 '산천대축'의 형상은 거꾸로다. 산이 위에, 하늘이 아래에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주역의 '궁즉통(窮則通)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天在山中

괘 전체 형상과 의미를 설명하는 대상(大象)은 '하늘이 산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산이 하늘을 품고 있다는 얘기다.

하늘의 기상은 강건(剛健)하다. 쉼 없이 햇볕과 비(雨)를 뿌려 만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산은 하늘의 그 원초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 축적하고 있다. 그래서 괘 이름이 '크게 쌓는다'라는 뜻의 '大畜(대축)'이다.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산은 그 웅대한 몸으로 태양의 기운을 받아 나무를 키우고, 숲을 만든다. 비를 받아 계곡을 적시고, 온갖 곤충과 동물을 키운다.

그렇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육중한 몸으로 묵묵히 두텁고 실하게(篤實)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뿐이다. 구름 모자 쓴 '산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 산이 좋아 우리는 산에 오른다. 산의 충만한 에너지를 받고, 겸손과 너그러움을 배운다. 명퇴 직장인, 은퇴 퇴직자, 고등학교 동창, 부장과 사원, 중년 주부…. 모두가 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생활의 에너지를 얻는다.

공자(孔子)에게도 산은 인자한 '산 할아버지'였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공자님 말씀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자한 사람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도 산을 찾는다.

똑똑한 사람이 어질기(仁)는 쉽지 않다. 자칫 처신을 잘 못 하면 '싹수없다'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더욱 지자(知者)는 산에 가야 한다. 웅대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겸허함과 너그러움을 배우기 위해서다. 북한산, 관악산이 없었다면 서울은 훨씬 '싹수없는 세상'이 되었을 거다.

산은 하늘의 에너지를 쌓는다. 그렇다면 '산천대축' 형 인간은 무엇을 축적할까. 상사(象辭)는 이렇게 설명한다.

剛健篤實輝光, 日新其德
하늘의 강건함과 산의 독실함이 만나 빛을 발하니, 매일매일 덕을 새롭게 한다.

'덕(德)'이다. 산이 하늘의 원기를 축적해 만물을 기른다면, 인간은 덕을 쌓아 품성(品性)을 완성한다. 산이 가진 너그러움과 포용심, 겸손 등이 인간에 나타난 게 바로 '덕(德)'이다.

君子以厚德載物

'군자는 이로써 두꺼운 덕으로 사물을 포용한다'라는 뜻. 주역이 지향하는 인간형이다. 주역 두 번째 괘 '곤위지(坤爲地)'에서 확인했다.

실력이 출중할수록 겸손해야 한다. 실력만 믿고 오만해지면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똑똑할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덕성(德性)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북한산, 관악산에 오른다. 산과 사람은 그렇게 만난다.

주역은 '불 깐 돼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괘의 6개 효(爻)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여겨지는 5번째 효사(爻辭)는 이렇다.

獖豕之牙, 吉
불 깐 돼지의 이빨이니 길하다.

3000년 전에도 돼지는 중요한 가축이었다. 야성이 강했던 돼지는 성질이 워낙 사나워 날카로운 이빨에 사람이 다치곤 했다. 요즘의 멧돼지 급이다. 야성(野性)을 꺾기 위해 했던 작업이 바로 거세(去勢)였다. 지금도 이어지는 돼지 순치(馴致)방식이다.

돼지에게 순치가 필요하듯, 인간도 절제와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역은 강조하고 있다. 그래야 자신이 가진 능력을 더욱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산은 그 겸허함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산에 오를 때 얼굴과 내려올 때 얼굴이 다르다'고 한다. 돼지 순친 후의 행동이 같을 리 없다.

어진 사람은 산을 닮아 산에 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산을 배우려 산에 가고…. 그래서 주말 북한산, 관악산은 붐빈다.

국가 발전의 핵심은 인재(人材)다. 주역 '천산대축' 괘는 뛰어난 인재를 많이 양성하고, 축적하는 국가라야만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바이두

주역 '산천대축' 괘의 논리는 개인을 넘어 국가로 발전한다. 국가는 발전을 위해 무엇을 축적해야 할까. 인재(人材)다. 뛰어난 인재를 많이 양성하고, 축적하는 국가라야만 미래가 있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표현한다.

不家食, 吉
집에서 밥을 먹지 않게 되면 길하다.

'집밥'을 먹지 않아야 길하다고? 그럼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국가가 주는 녹봉으로 밥을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도 공무원은 세금으로 밥을 먹는다. 유능한 인재가 나라 발전에 많이 참여하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 바로 '불가식(不家食)'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가식 인재'를 많이 축적하는 건 국가가 할 일이다.

직장인은 '회사 밥'을 먹는다. '불가식'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곧 실업률이 낮다는 얘기가 된다. 잘 나가는 회사는 최고급 수준으로 구내 식단을 짠다. 더 훌륭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축적하기 위해서다.

가정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자식이 대학 졸업 후에도 집밥을 축내고 있으면 불편하다. 독립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자식 간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집안이 편안하다. 자식 교육에 온 힘을 바치는 이유다.

산은 하늘의 에너지를 받아 숲을 키운다. 개인은 덕(德)을 쌓아 품성을 완성한다. 나라는 인재를 길러 힘을 키운다. 그 지혜를 온몸으로 배우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북한산, 관악산에 오른다.

한우덕

* 후기: 똑똑한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이유

知者樂水, 仁者樂山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라는 뜻이다.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한다는 건 알겠다. 인자(仁者)는 차분하니 정적이고(仁者靜), 무리하지 않으니 장수한다(仁者壽). 산의 속성과 닮았다. 그러니 산을 좋아한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왜 물을 좋아할까.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임이 활발하고(知者動), 삶을 즐길 줄 알아 쾌활하다(知者樂)'고 했다. 물에 그런 속성이 있었던가? 알듯 모를 듯, 알쏭달쏭 이다.

물은 동시대 사상가 노자(老子)가 더 많이 연구(?)했다. 그가 간파한 물의 속성은 이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다.

上善若水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말을 읽어야 한다. '도덕경' 제8장의 내용은 이렇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争, 處衆人之所惡, 故几于道.
가장 선한 사람은 물을 닮았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꺼리는 곳에 머무니 도(道)에 가깝다.

노자는 물을 닮은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居善地, 心善渊,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처세(居)는 낮게, 생각은 깊게 한다. 대인관계는 어질고, 말에는 신뢰가 있다. 다스림은 물 흐르듯 부드럽고, 일할 때는 능력이 있다. 새로 시작할 때에는 시기를 잘 맞춘다.

노자는 말미에 이 말을 덧붙인다.

夫唯不争, 故无憂.
무릇 다투지 않으니 걱정할 게 없다.

물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지 않는다. 그렇듯 현명한 사람은 타인을 이기려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그게 바로 노자가 말한 물의 속성이자, 현명한 사람(賢者)의 속성이다.

공자의 '지혜로운 사람', 노자의 '현명한 사람'은 물에서 만난다.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한우덕중앙일보 차이나랩 대표이사

베이징/상하이 특파원을 지낸 중국통 기자. '우리가 아는 중국은 없다'' 중국의 13억 경제학' 저자. 머리가 나빠 몸이 좀 바쁘다.

han.wood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