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모든 유물, 최초로 한자리에 나왔다
무령왕릉 50주년 특별전 개막… 국립공주박물관 현장을 가다
입력 2021.09.14 03:00
50년 전 무령왕릉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지건길(왼쪽)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복원 작업을 마친 왕의 목관(오른쪽)과 왕비의 목관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현종 기자
“하이고, 저 나무판, 저….”
13일 충남 공주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고고학계 원로인 조유전(79)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탄식을 내뱉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돼 보존처리를 마친 왕과 왕비의 목관(木棺)을 보고 50년 전 발굴이 엊그제 일처럼 되살아나서였다. “나무가 썩어 관 윗부분이 바닥으로 주저앉은 상태였어요. 밟으면 그만 폭삭 가루가 될 것 같아 건너가지 못하고 있는데 밖에선 (빨리 발굴을 끝내고 나오라고) 난리를 치지….” 관 맨 윗부분 부재가 의외로 단단해 살짝 밟고 간신히 건너갈 수 있었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무령왕릉 발굴 50년(1971-2021):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의 개막식에는 당시 문화재관리국의 젊은 학예연구사로 역사적인 발굴에 참여했던 조유전 전 소장과 지건길(78)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참석했다. 지 전 관장은 무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동물상인 진묘수(鎭墓獸)를 가리켰다. “마치 저게 날 꼭 껴안으며 달래줄 것처럼 보이더라고!” 귀여운 인형처럼 생긴 동물상이지만, 당시엔 처음 세상에 나오는 무덤의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무척 신비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금으로 만든 무령왕릉 왕비의 관꾸미개. /신현종 기자
내년 3월 6일까지 계속되는 이 특별전은 역대 최대 규모의 무령왕릉 관련 전시다.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공주박물관 내 전시실 두 곳을 털어 마련한 이 특별전은 1971년 발굴 이후 처음으로 무령왕릉 출토 유물 5232점 모두를 한자리에서 전시하는 자리다. 국보로 지정된 유물만 17점이다. 한수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최소한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기 전까지는 이런 전시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작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반세기 전인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 왕릉원(옛 송산리고분군)의 배수로 공사 도중 ‘벽돌무덤’ 하나가 발견됐다. 그것이 묘지석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백제 25대 임금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한 한국 유일의 고대 왕릉이 고스란히 실체를 드러냈다. ‘고대사를 고쳐 쓰게 했다’는 한국 고고학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백제 무령왕릉 특별전 입구에서 전시 중인 무령왕릉 출토 은잔. 정교한 문양에 백제인의 내세관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신현종 기자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첫 유물은 그동안 다른 유물에 비해 덜 주목을 받았던 은잔(銀盞)이었다. 공주박물관 윤지연 학예연구사는 “6세기 백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연꽃과 신선의 세계 등 정교한 문양을 통해 가장 잘 담아낸 유물”이라고 했다. 이어 무령왕릉의 대표 유물이자 백제 문화의 정수라 할 만한 왕과 왕비의 관꾸미개·금귀걸이가 화려한 자태를 자랑했다. 우리나라 고대의 금 유물 중에서도 금 함유량 98% 이상으로 가장 순도가 높은 관꾸미개는 불꽃이 타오르거나(왕) 연꽃이 피어나는(왕비) 듯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옆엔 달걀 한 개 무게에 육박하는 약 54g의 금귀걸이도 보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13일 충남 국립공주박물관에서 특별전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국보 왕의 금귀걸이가 전시돼 있다./연합뉴스
봉황과 금으로 장식된 베개와 발받침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드문 고대의 목제 예술품인데, 쉽게 훼손되는 목제품의 특징 때문에 오래 전시할 수 없어 그동안 복제품을 전시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4일부터 26일까지 베개와 발받침을 모두 진품 전시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최적의 전시 환경’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 만하다. 박물관 측은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진묘수 등 주요 유물은 진열장 유리를 저반사유리로 교체하고 조명과 받침대를 개선했다. 유물이 UHD(초고화질) 화면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의 목제 베개(앞)와 발받침./신현종 기자
한수 관장은 “무령왕릉은 백제 고유의 예술과 기술이 드러나는 한편, 백제의 활발한 대외 교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해외 명품관’이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첨단 금속공예 기술과 도교 사상이 보이고, 목관은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으로 만들었으며, 유리구슬은 원료에 포함된 납의 산지가 태국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왕과 왕비의 장례 과정, 여러 유물의 용도 등 여전히 무령왕릉 유물은 풀리지 않는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고, 이는 다음 반세기 동안 해결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했다.
공주=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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