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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도깨비' 만나러 외씨버선길을 간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3. 5. 23:17

 

대낮에 '도깨비' 만나러 외씨버선길을 간다

소설가 김주영이 '봄 여행지'로 추천한 외씨버선길 중 경북 영양을 지나는 조지훈문학길 구간의 소나무길. 

소설가 김주영이 '봄 여행지'로 추천한 외씨버선길 중 경북 영양을 지나는 조지훈문학길 구간의 소나무길.

경북 청송 주왕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김주영 작가는 2년 전 서울에 있던 서재를 청송으로 옮겼다. 수구초심으로 돌아와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며 고향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작가 김주영은 『객주』를 쓰기위한 사전취재를 위해 2013년 네 번이나 외씨버선 길을 걸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우리에게 봄 여행지로 외씨버선길을 추천했다. 다음은 김 작가의 추천사. 정리=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joongang.co.kr
 
외씨버선길 이름은 조지훈의 시 '승무' 에서 따왔다.

외씨버선길 이름은 조지훈의 시 '승무' 에서 따왔다.

조지훈 선생의 '승무'라는 시에서 따온 외씨버선 길은 경북 청송 주왕산이 출발점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길은 청송, 영양, 봉화, 강원도 영월을 관통하면서 장계장 디미방 길, 오일도 시인의 길, 조지훈 문학길, 보부상길, 김 삿갓 문학길, 관풍헌 가는 길까지 모두 합치면 모두 240㎞가 넘는 길고 긴 여정의 옛 산길로 이루어 졌다. 동해안에 나열되어 있는 호사스런 관광지들을 바로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들과는 매몰스럽게 등 돌리고 앉아 있음이 이 길이 가진 으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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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 출발점에서부터 영월의 최종점까지는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타날 것 같은 정적이 감돈다. 산코숭이를 돌 때마다 앞을 가로 막는 적막함에 자신의 발짝 소리에도 놀랄 정도다. 울창한 노송 길 사이로 화살처럼 내려 꽂이는 아침의 햇살, 해질녘이면 계곡 길 갈대숲에서 들리는 길고 긴 휘파람 소리, 산기슭 속에 숨어 있는 그림 같은 뜸마을, 민박집 문풍지 소리 같이 잃어버린 옛 소리들에 어딘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길이다. 보약 같은 수면을 불러들이는 녹작지근한 피로를 단숨에 풀 수 있는 길, 정치적인 전란을 호되게 겪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기름지게 가꾸겠다고 떠들어 대는 불상놈들의 고함소리와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어 좋은 길이다. 

김주영이 『객주』쓰려고 걸은 그 길

 
외씨버선길 경북 봉화 금강소나무숲길.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하다. 

외씨버선길 경북 봉화 금강소나무숲길.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하다.

옛 이야기 속에서나 나타날 것 같은 산적이 불쑥 나타날까 해서 심약한 사람은 3~4명의 동반자가 있어야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특히 울진과 봉화를 잇는 열 두 고개의 보부상길이 그렇다. 너와 지붕으로 올라간 낮닭이 길게 목청을 뽑아내는 초현실적 적막감에 넋을 빼고 서 있는 내 자신을 문득 발견하는 기회를 외씨버선 길은 심심찮게 제공한다. 그처럼 이 길은 우리들이 갖는 통상적인 시간 계념 속에 배속되어 있는 길이 아니다. 이 길을 걷는 동안은 우리는 벼랑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수도사가 된다. 외씨버선 길 사이에는 아래로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깊은 낭떠러지 길이거나, 절벽을 부등 켜 안고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벼룻길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 울진에는 토염이라는 좋은 소금이 났다. 보부상들은 이 소금을 지고 십이령길을 넘어 봉화의 장에 내다팔았다. 보통 경상도의 소금은 낙동강을 따라 배로 수송하지만, 갈수기와 홍수 때는 배가 드나들지 못했다. 보부상들은 이 때를 노려 내륙으로 소금을 수송해 비싸게 팔았다. 4년 전이다. 『객주』10권을 완성하기 위해 울진에서 봉화를 잇는 십이령길을 세번 걸었다. 가는 데 2박3일, 오는 데 2박3일 걸리는 길이다. 이 곳은 궁궐을 지을 때마 밸 수 있는 금강소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걸은 멀고 힘들었지만 걷는 내내 소나무숲에 경도됐다. 이 길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객주』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김주영)

“예전 울진에는 토염이라는 좋은 소금이 났다. 보부상들은 이 소금을 지고 십이령길을 넘어 봉화의 장에 내다팔았다. 보통 경상도의 소금은 낙동강을 따라 배로 수송하지만, 갈수기와 홍수 때는 배가 드나들지 못했다. 보부상들은 이 때를 노려 내륙으로 소금을 수송해 비싸게 팔았다. 4년 전이다. 『객주』10권을 완성하기 위해 울진에서 봉화를 잇는 십이령길을 세번 걸었다. 가는 데 2박3일, 오는 데 2박3일 걸리는 길이다. 이 곳은 궁궐을 지을 때마 밸 수 있는 금강소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걸은 멀고 힘들었지만 걷는 내내 소나무숲에 경도됐다. 이 길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객주』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김주영)

이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여행자는 우선 행구를 챙긴다. 그러나 과 부하된 여행 장비는 이 겨울 산길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치받이 길을 오를 뗀 후회막급이다. 호의호식하고 싶다는 욕심만 버린다면 이만한 관광코스가 이 나라에 따로 없다. 제주도 해변을 일주하는 올레길이나, 영덕 강구에서 시작해서 강원도 낙산에서 끝나는 동해의 해안 도로를 걸어 본 여행자라면 이 말에 선뜻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 중에서 청송과 봉화에서 곧잘 만나게 되는 솟을 대문(지붕이 담 위로 우뚝 솟아 있다고 솟을 대문이다)이 있는 종택이나 고택에서 지낸 하룻밤은 기억에서 진작 사라지지 않는다. 청송의 송소 고택과 봉화의 만산 고택, 기헌 고택, 권진사댁 같은 고택에서의 민박 체험을 비롯해서 외씨버선 길 주변에 흩어진 여러 고택에서의 깊은 수면으로 하루의 여정에서 얻은 피로를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다. 송소고택 코앞에 있는 <심 부자 밥상>은 예약만 해두면 놋그릇에 정성스레 담아 맛깔스런 아침 밥상을 즐길 수 있고, 여름날의 만산 고택에서는 탁 트인 대청마루에 누워 밤벌레 소리 들어가며 잠들 수 있다. 
 
외씨버선길 중 조지훈문학길. 한 여행자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외씨버선길 중 조지훈문학길. 한 여행자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니면, 골짜기 마다 아담하게 들어앉은 산촌 마을로 찾아들면, 벗어둔 신발을 밤새 똥개가 물어 개울가에 내버린다며 방안에 넣어주는 민박집 아낙네의 섬김을 받을 수 있다. 그 민박집에서 먹는 뜨겁고 걸쭉한 시래기 국과 오래 묵어 칼칼한 된장 맛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와락 떠올리게 만든다. 
 
지친 삶을 위로 받고 싶다면, 선조들의 가쁜 숨결이 켜켜이 배어 있는 외씨버선 길을 걷기다. 두고 온 것과의 끓임 없는 연락은 아예 단념하는 온전한 휴식을 작정하지 않으면 발 들여 놓을 곳이 못된다.

김주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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