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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예술, 디지털 영토를 탐하다: 현상, 양태, 세 가지 원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1. 17. 23:15

예술, 디지털 영토를 탐하다: 현상, 양태, 세 가지 원인

정종은_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1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가 트로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 퇴각하며 남겨 놓은 거대한 목마를 일컫는다. 트로이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자 그 안에 매복했던 군인들이 성 문을 열어 그리스는 전쟁에서 승리한다. 오늘날 ‘트로이 목마’는 마치 유용한 프로그램인 것처럼 위장하여 사용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설치를 유도하는 컴퓨터 악성 코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2스위스 정신의학자 H. 로르샤흐가 발표한 인격진단검사에 사용되는 잉크 얼룩(ink blot). 피검사자에 따라 달라지는 얼룩에 대한 다양한 상상과 답변을 분석에 활용한다.

What: 예술계와 디지털 세계의 컨버전스

1960년대 이후 가시화된 정보화 물결은 20세기 후반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상용화를 통해 대중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로써 우리의 피부에 와 닿게 된 디지털 혁명은 21세기 초반 스마트폰을 매개로 모바일 혁명으로 전화(轉化)하면서 편재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 세계에 기반을 두고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예술 창작 및 향유 활동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물리적인 제약을 초월한 가상공간,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무한복제 가능성, 전 지구적 유통 플랫폼 부상에 따른 즉각적 확산성, 매체의 작동방식이 은폐되지 않는 하이퍼 매개성,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다가갈 수 있는 접속 가능성, 창작자와 수용자 및 수용자와 수용자 간의 상호작용성 등 디지털 영토가 개시한 새로운 존재방식과 소통 문법에 대한 고민이 예술계 내외부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질이 아닌 정보로서 존재/유통/소비되는 예술! 지식인 중 일부는 이러한 현상에서 ‘트로이 목마’1를 읽는다. 디지털이 제공하는 새로움과 편리성이란 어차피 근대적 기획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술의 아우라는 슬그머니 탈각되고 기술의 번쩍거리는 독재가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로부터 ‘로르샤흐 블롯’2을 보기도 한다. 장르에 따라, 지역에 따라 예술 활동과 새로운 창작, 유통, 향유의 기법이 결합하며 눈부신 다양성을 꽃피울 거라는 전망이다. 아직은 혼종적인 디지털 세계가 인류 문화의 정수인 예술을 인수·합병하기 위해 교묘히 침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인지 섣불리 결론짓기 어렵다. 다만 두 세계의 컨버전스가 이미 상당 부분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확산일로를 걷게 될 것이란 전망은 가능하다. 이러한 수렴, 융합 또는 접합이 일어나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고, 이를 추동하는 주요한 원인을 간략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심리학 테스트를 위한 ‘로르샤흐 블롯’ 주요 예시 ⓒ Wikipedia 심리학 테스트를 위한 ‘로르샤흐 블롯’ 주요 예시 ⓒ Wikipedia

▲ 심리학 테스트를 위한 ‘로르샤흐 블롯’ 주요 예시 ⓒ Wikipedia

How: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먼저 컨버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양태에 주목해보자. 우선 1960년대 이후 미디어 아트를 필두로 이루어져 온 미술계의 실험이 가장 오래되기도 했고 널리 알려진 사례라 할 수 있다. 넷 아트, 웹 아트, 인터넷 아트, 온라인 아트, 그리고 최근에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의 성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실험되어온 미디어 아트는 21세기 이후 서구는 물론 우리의 주요 미술관에서도 결코 빠질 수 없는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 공공미술과 디지털 기술의 만남도 주목되는바, 미생의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스퀘어 건물의 LED 스크린은 공공미술과 미디어 아트가 결합한 거대한 캔버스로 기능하면서 유사한 프로젝트들의 전국적 확산을 추동해왔다.



PEOPLE WALKING, Julian Opie ⓒ 서울스퀘어 ▲ PEOPLE WALKING, Julian Opie ⓒ 서울스퀘어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에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구글과 네이버 같은 첨단기술 기반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미술작품의 디지털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2015년 5월 1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글은 60개국 700개 이상의 기관이 참여하여 세계적인 미술작품과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 한 온라인 전시관이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 발을 내딛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디테일을 보게 해주는 기가픽셀 작품이 특히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뮤지엄뷰>를 통해 온라인 갤러리의 새 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이미 15만 점에 달하는 국내외 주요 콘텐츠가 파노라마 영상으로 촬영되어 고화질로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네이버는 2015년 11월 4일, 프랑스 정부와 협약을 맺고 미술작품과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작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공공 프로젝트와 스타트업 육성 등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약속했다.



네이버 뮤지엄뷰로 관람하는 국립중앙박물관 ⓒ NAVER 네이버 뮤지엄뷰로 관람하는 국립중앙박물관 ⓒ NAVER

▲ 네이버 뮤지엄뷰로 관람하는 국립중앙박물관 ⓒ NAVER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한 이러한 꿈틀거림은 공연계에서도 비슷하게 느껴볼 수 있다. 미디어 아트가 하나의 확고한 분야로 자리를 잡았듯이, 무대 예술에 영상을 입히는 것, 특히 프로젝션 맵핑, 미디어 파사드, 증강현실 등이 결합한 융복합공연의 전성기가 다가오고 있다. 비단 공연 현장에서 디지털 영상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연실황 전체를 영상콘텐츠로 제작하여 상영하는 방식도 널리 채택되고 있다. 2006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가 <메트: 라이브 인HD>를 제작하여 첫 시즌 북미에서 약 136억 원, 북미를 제외한 해외에서 약 5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것이 그 기점이 된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영국 국립극장 역시 2009년부터 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2015년 3월 회계기준으로 NT Live는 8천5십만 파운드(한화 1320억 원) 가량의 순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유튜브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로 실황 중계되는 공연의 숫자는 매우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이며, 세계 최초의 온라인 협업 오케스트라로 주목을 받은 ‘유튜브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등장 이후 클래식 음악공연 역시 디지털 플랫폼에서 활발히 자신의 영토를 개척하는 중이다.



2014년 3월 우리나라 국립극장에서 상영하여 호평을 받은 NT LIVE ‘워 호스’ 공연 장면 ⓒ 국립극장 ▲ 2014년 3월 우리나라 국립극장에서 상영하여 호평을 받은 NT LIVE ‘워 호스’ 공연 장면
ⓒ 국립극장


디지털 영토의 개척은 비단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문피아>나 <조아라>와 같이 장르문학에 기반을 둔 웹소설 사이트의 성공담이야 이미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없겠지만, 소설가협회가 2016년 오픈한 <한국디지털문학관>이나 지자체의 열렬한 지원 속에 조성된 <박범신디지털문학관>의 사례와 같이 이른바 ‘순수문학’ 분야에서도 컨버전스가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Why: 탐할 수 있었던, 탐하고 싶었던, 탐해야만 하는 이유들

그렇다면, 예술과 디지털기술 사이의 컨버전스를 추동한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내부적 관점, 곧 예술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의 모방론에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표현론, 그리고 20세기 추상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형식론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본질주의적 접근을 취하면서 예술의 지향점을 배타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늘날 설 자리를 잃었다. 20세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가족유사성 개념에 뿌리를 둔 미학자 와이츠(Morris Weitz)의 ‘예술정의불가론’ 이후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은 과거와 같을 수 없었으며, 따라서 예술계가 수여하는 감상의 후보자격이라는 비가시적 본성에서 예술의 필요충분조건을 탐색하는 ‘제도론’과 같은 시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 앞에 열린 것은 예술철학자 단토(Arthur Danto)가 선언했듯이 예술의 종언 시대이다. 이는 예술의 죽음이 아니라 서구에서 존재해온 예술에 대한 마스터 내러티브 또는 고유한 믿음체계의 붕괴를 지시하는 것이다. 재현의 완성도에 집착하는 ‘바사리 내러티브’나 매체의 물질적 고유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내러티브’ 등의 종언으로 ‘예술’은 이제 해방되었다.

이렇게 해방된 예술이 한편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매체/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영토의 강한 흡입력에 이끌려 다채로운 실험을 즐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간편한 튜브물감의 발명이 빛의 화가들로 지칭되는 인상주의의 탄생에 공헌했던 것처럼, 무한 복제와 쌍방향적 소통이 전제되는 가상적인 하이퍼텍스트 공간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역사적 창조성(Historical Creativity)을 점화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 시대에 맞는 재현과 표현, 창조와 소통을 위해 기존의 매체, 기존의 관습, 기존의 관점, 기존의 수용자를 넘어서려는 몸부림이야말로 예술이 인류에게 제공한 모든 선한 것들의 근원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야심작, <제2의 기계시대> ⓒ 청림출판 ▲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야심작, <제2의 기계시대> ⓒ 청림출판

마지막으로, 증기기관을 통해 인간 육체의 기계화가 이루어졌던 ‘제1의 기계시대’를 거쳐 이제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 정신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제2의 기계시대’에는 디지털 공간이 더 이상 낯선 곳이나 특별한 곳이 아닌 일상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세계를 온몸으로 호흡해온 디지털 네이티브는 과거의 디지털 이주민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후자와 달리 매우 짧은 시간에 매우 많은 선택지 속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선택을 내리고 이를 공유하는 것을 중요한 존재방식이자 소통 문법으로 삼는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평범한 서비스’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새롭고도 유용한 콘텐츠를 확인하면 엄청난 열정으로 이에 관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제2의 기계시대를 주조해나갈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예술은 결코 특권을 가진 대상이 아니다. 이 새롭고도 까다로운 수용자를 둘러싸고 예술은 IPTV나 아프리카(afreeca), 대도서관이나 엑소와의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예술이 디지털 영토를 보다 적극적으로 탐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종은필자소개
정종은은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미디어경영으로 석사학위를, 창조산업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메타기획컨설팅에서 Knowldge본부 부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 문화예술연구실 부연구위원이자 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NO.347_201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