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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닉 혼비

 

“혼자 사는 것도 좋은데, 꼭 결혼을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써먹는 상용구가 있다. “그래도 남들처럼 살아 봐야지.” “남들 다 해보는 거 한 번은 하고 죽어야 하지 않아?”

우리가 진정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방해되는 요소는 이렇게 ‘남들처럼’을 행동의 준거로 삼기 때문 아닐까?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다가는, 남도 될 수 없고 나도 될 수 없는 개성의 침몰 상태를 겪게 된다.

모방은 집단의 운영 원리로는 효율적이지만,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실현의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한 행동양식이다. 제도와 규칙은 물론 사소한 습관까지 서로를 모방하는 인간은 ‘남들처럼’, 혹은 ‘선진국처럼’이라는 타율적인 행동기준 때문에 고유의 특이성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인격과 전이』에서 ‘모방’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사람들은 덮어놓고 탁월한 인격을 모방하거나, 혹은 희귀한 성질이나 활동을 모방하기도 한다. 우리 안의 무엇이 본래의 개성적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숙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개성의 발견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불현듯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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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어 보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도 아니에요’

닉 혼비의 소설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는 어떤 심리적 고통도 겪지 않기 위해 모든 사회적 관계 맺기를 적당히 차단한 주인공이 점점 자신의 개성을 잃어 가던 중, 한 괴짜 소년을 통해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윌 프리먼은 노동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불멸의 히트곡을 남긴 작곡가 아버지 덕분에 막대한 인세를 상속받은 윌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 본 적도 없다. 낮에는 쇼핑, TV시청, 미용실에서 머리 다듬기 등으로 시간을 때우고, 밤에는 여성들과 부담 없는 데이트를 즐긴다.

윌은 자신이 ‘윌 쇼’의 하나뿐인 주인공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잠깐씩 등장했다 사라지는 단역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무엇에도 ‘진심’을 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는다. 겉으로는 ‘쿨’해 보이지만, 아무와도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윌은 그저 ‘가벼운 만남’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여인을 찾다가 급기야 편부모 모임에 가입하게 되는데, 물론 그것도 ‘사기’다. 자신이 ‘싱글파파’인 척함으로써 싱글맘들의 연민을 자극한 뒤 부담 없이 그녀들과 데이트하기 위해 꾸민 수작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결혼이나 아이는 물론 사랑까지도 지능적으로 기피하는 윌에게, 어느 날 천하의 괴짜소년 마커스가 등장한다. 이혼 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 피오나를 따라 이 모임에 나간 마커스가 ‘미래의 아버지 후보’로 윌을 점찍은 것이다. 마커스는 그때부터 그야말로 ‘껌 딱지’처럼 이 무위도식 한량 아저씨의 집에 드나들게 된다. 히피적 감성을 지닌 데다 채식주의자, 우울증 환자이기도 한 엄마 피오나를 보살피느라 마커스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디디는 듯하다.

윌이 너무 몰개성적이라 문제라면, 피오나는 너무 자신의 개성에만 몰입함으로써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남들처럼’ 유명한 브랜드 신발이나 멋진 책가방을 들지 못하고, 엄마의 독특한 취향에 따라 철 지난 옷을 입는 마커스. 그 때문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엄마에게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하는 마커스에게, 윌은 자신도 모르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마커스는 결코 불쌍한 소년이 아니다. 마커스는 주변의 어른들보다 오히려 훨씬 훌륭하게 ‘개성화’를 향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똑같은 브랜드의 운동화, 똑같은 브랜드의 점퍼가 유행할 때마다 ‘그것이 없으면’ 무리 속에 끼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마커스는 그런 유행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SNS 소통에 참여하지 않으면 담임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대화에 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채팅을 한다는 요즘 아이들의 강박관념에도, 마커스는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뿐인 나를 찾고 지켜간다는 것은 …

마커스는 적극적으로 엄마의 결혼상대를 찾아 나서고, 그러다가 세상 누구와도 깊은 인연을 맺지 않으려는 ‘쿨한 아저씨’ 윌을 친구로 사귀게 된다. 오히려 윌은 마커스 덕분에 자신에게 진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누구와도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쿨한 남자’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호감 가는 여자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할 수도 없을 만큼 피폐해져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페르소나는 ‘나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무한히 자유로워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면의 그림자는 ‘나는 아무것도 안 해요, 그래서 난 아무도 아니예요’라고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기도한 엄마를 위해 마커스가 학교 장기자랑대회에서 ‘킬링 미 소프틀리’를 부르는 장면이다. 수십 년 전의 팝송을, 그것도 음치에 가까운 마커스가 목이 터져라 부르는 장면을 보고 윌은 처음엔 어떻게든 말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윌이 보기에 그런 행동은 ‘사회적 자살(social suicide)’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수준’에 맞추지 못한 행동이기에.

하지만 ‘엄마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미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마커스를 외롭게 하지 않을 방법은 ‘함께 그 노래를 부르는 것’밖에 없음을, 윌은 깨닫는다. 기타까지 들고 나가 ‘킬링 미 소프틀리’의 반주를 멋지게 해낸 윌은 그제야 ‘아무도 아닌 사람(nobody)’에서 ‘이 세상 하나뿐인 사람(the one)’이 된다. 마커스는 홀로 전교생의 비웃음거리가 될 뻔했지만, ‘함께 창피함을 견뎌 주는 든든한 친구’ 윌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으려 했던 윌이 따돌림으로 고통 받는 소년을 위해 체면은 물론 자존심도 구기고 철 지난 히트곡 ‘킬링 미 소프틀리’를 부르는 장면은 언제 다시 봐도 뭉클하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자기만의 고유성, 자기만의 개성을 갖는 일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피부나 재산보다 우리의 명예와 친구, 인간성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정신적 자아는 아주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정신적 자아를 잃느니 차라리 친구와 명성과 재산, 그리고 목숨까지 버릴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브랜드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나, 어떤 사회적 관계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 그것이 바로 ‘정신적 자아’일 것이다. 바로 그 하나뿐인 나를 찾고, 만들고, 다듬고, 깎아내는 과정이 ‘개성화’다. 이제 우리의 윌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에게 진정 필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

 

 

정여울  작가, 문학평론가. 문학과 삶, 여행과 감성에 관한 글을 쓴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헤세로 가는 길』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