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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정보화 時代 예견한 '무당' 백남준을 추억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4. 11:52

입력 : 2016.02.02 03:00

[백남준 10주기, 추모 열기 뜨거워]

- 갤러리현대 '백남준, 서울에서'展
화가 김창열, 50년 前 바이올린 퍼포먼스 재연
- 백남준문화재단 심포지엄
테크니션 3인 "그는 따뜻한 마음 가진 경영가"

7월 20일, 생가에 '백남준 기념관' 개관 예정

#1. "1960년대 중반 은사였던 김환기 선생이 뉴욕 집으로 불러 백남준(1932 ~2006)씨를 처음 소개해줬지요. 처음엔 뭔가 모자라 보여 바보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천재였어요. 봉이 김선달 같은 혁신적인 사람이었죠."

'물방울 화가' 김창열(87)이 붓 대신 바이올린을 들고 백남준을 추모했다. 지난 2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 서울에서' 개막식에서였다. 연로한 몸을 이끌고 끈에 매단 바이올린을 끌고 거리를 걷다가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바이올린을 내리쳐 부쉈다. 50여 년 전 백남준이 독일에서 했던 퍼포먼스 '걸음을 위한 선(Zen for Walking, 1963년)''바이올린 독주(One for Violin Solo, 1962년)'를 재연한 것이었다. 서양의 상징인 바이올린을 정면으로 공격한 이 퍼포먼스로 백남준은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란 별명을 얻게 됐다.

①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김창열 화백. ②1990년 서울에서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백남준. ③백남준의 테크니션들. 왼쪽부터 폴 게린, 이정성, 마크 파스텔. 

 

①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김창열 화백. ②1990년 서울에서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백남준. ③백남준의 테크니션들. 왼쪽부터 폴 게린, 이정성, 마크 파스텔. /갤러리현대 제공·오종찬 기자

 

#2. "백남준은 뛰어난 리더십을 지닌 경영가였어요. 일일이 간섭하는 대신 자유자재로 작업할 수 있도록 이끌었어요. 유일한 주문은 '재미있게만 해(Make it interesting!)'였어요. 대학 졸업 후 일거리가 없던 제게 일부러 일감을 주기도 했어요. 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어요."

1982~1997년 백남준의 조수 겸 공동 작업자로 일했던 폴 게린(58)이 회상에 잠겼다. 27일 백남준문화재단이 백남준 10주기를 맞아 연 심포지엄 '백남준 테크니스트 3인에게 듣는다' 참석차 방한한 그는 "백남준은 테크니션을 수평적 관계에서 '협업자(collaborator)'로 보고 살뜰히 챙겼다"고 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의 10주기(1월 29일)를 맞아 그를 향한 추모 열기가 뜨겁다.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인 동시에 박애주의 휴머니스트였던 그를 기리는 전시와 행사가 풍성하다.

첫 포문을 연 갤러리현대의 '백남준, 서울에서'전에선 백남준이 1990년 여름, 예술 동지였던 요제프 보이스(1921~1986)를 추모하며 갤러리현대 뒷마당에서 했던 진혼굿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가 재연됐다. '로봇 가족' 시리즈 등 TV 로봇과 비디오 조각 40여 점도 전시됐다.

백남준이 스승으로 삼았던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TV 조각 ‘존 케이지’(1990년). 

 

백남준이 스승으로 삼았던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TV 조각 ‘존 케이지’(1990년). /갤러리현대 제공

 

개막식엔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홍라영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 박만우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과 박서보·정상화·이우환·윤명로 화백 등 백남준이 생전 교유했던 문화계 인사가 총출동했다. 대의(大義)를 위할 줄 알았던 '문화계 어른'에 대한 경의였다. 백남준은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한국관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1993년 한국이 미국 휘트니 미술관의 '휘트니비엔날레'를 유치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했다.

기일인 29일 유해 일부가 안치된 서울 봉은사에서는 추모재가 열렸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날 10주기 추모행사 '유토피안 레이저 TV 스테이션'을 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6~7월 서소문 본관 3층에서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을 연다. 백남준 관련 자료, 문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등을 전시하고 지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예술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백남준 탄생일인 7월 20일엔 창신동 백남준이 살던 집을 '백남준 기념관'으로 만들어 개관할 계획이다.

미술계에선 백남준의 업적을 이구동성 으로 얘기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 부족을 아쉬워하고 있다.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장은 "백남준은 '정보화'를 미리 내다보고 해석했던 '정보 무당'이었다"며"매체 확장 등 백남준이 세계 예술사에 기여한 측면을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작품 보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백남준의 손'으로 불리는 테 크니션 중 유일한 한국인인 이정성(72·아트마스터 대표)씨는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는 7년 전 선생님 작품이 고장 날 걸 염두에 두고 작품에 사용되는 장비를 미리 구비해 뒀는데 우리는 고장 나면 속수무책"이라며 "내부 부품만 교체해 아날로그 상태를 유지하는 법, 브라운관을 LCD로 교체해 디지털화하는 법 등 최선의 보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