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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友' 최인호와 함명춘의 인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28. 21:46

'文友' 최인호와 함명춘의 인연

입력 : 2015.11.28 03:38

어수웅 Books팀장 사진
어수웅 Books팀장
4년 전 봄, 서울 한남동에서 작가 최인호(1945~2013)를 몇 차례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침샘암 투병으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칩거한 지 3년이 지난 때였지요. 오랜만에 만난 작가는 몸이 반쪽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위가 그러니만큼 음식 삼키기도 힘들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으니 사람 만나기도 편할 리 없었겠지요.

그때 작가의 곁을 지킨 이가 시인 함명춘(49)이었습니다.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펴냈지만, 이후 '시인 함명춘'은 생소한 이름. 하지만 투병 중인 작가에게 그는 편집자였을 뿐만 아니라 간병인이자 친구였고, 여행의 동반자이자 문학의 동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유작이 된 장편 '낯선 타인들의 도시'는 최인호의 작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신문이나 잡지 연재 없이 혼자 골방에서 완성한 전작(全作) 소설. 작가는 제게 "명춘이의 독려가 없었으면 못 썼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지난주 함명춘의 두 번째 시집 '무명 시인'(문학동네 출간)이 나왔습니다. 책 날개의 '시인의 말'부터 저릿하더군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함명춘의 표제작은 '무명 시인'입니다. 33행으로 완성한 이 시는 어쩌면 자신 인생의 압축으로 보였습니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넣었다./ 그러면 나비와 새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읽고 돌아가곤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요즘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은 명춘이밖에 없어"라던 최인호의 웃음이 선 명합니다. 강원도였나 경상도였나, 땅 몇 평 사서 시 쓰는 작업실로 하겠다던 이 무명 시인의 다짐도 떠오르네요. 17년 동안 새 시집을 내지 못했던, 무명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응원합니다.

'먹고사는 일에 저만큼 떠밀린 시(詩)한 번 써보고/ 기척이라곤 소달구지처럼 삐걱거리는 바람 소리뿐인/ 저 먼짓길 끝까지 갔다가 돌아와 보는 거'('분천역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