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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간송 전형필 소장본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날 앞두고 복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0. 13. 19:42
 

570년 세월 그대로… 世宗의 숨결 느낀다

간송 전형필 소장본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날 앞두고 복간
  • 이한수

    발행일 : 2015.10.07

    1940년 7월 30일 조선일보에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1446년(세종 28년) 간행 이래 자취가 드러나지 않았던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이 494년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는 특종 기사였다. '원본 훈민정음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원본 발견 소식과 함께 해례본의 내용을 번역해 8월 4일까지 5회에 걸쳐 연재했다. 기사는 조선일보 출신의 국어학자 방종현이 썼다. 그는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낸 홍기문과 함께 해례본을 한글로 번역했음을 밝히고 "누구의 이름으로 되든지 공동 노작'이라고 적었다. 조선일보는 해례본 번역 연재를 마친 직후인 8월 10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그대로 복원한 복간본이 한글날(9일)을 앞두고 나왔다. 해례본을 소장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기획하고 교보문고가 제작을 맡았다. 간송본과 동일하게 한지에 인쇄하고 4침안정법(4개의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 책을 만드는 방법)으로 제본해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복간했다. 훈민정음 연구자인 김슬옹 워싱턴 글로벌대학 교수가 해제한 해설서 '한글의 탄생과 역사-훈민정음 해례본'도 함께 출간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음력 9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사실을 알린 뒤 정인지·신숙주·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 목적과 글자의 원리 등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다. 해례본은 책 표지에 '훈민정음'이라고만 되어 있으나 '훈민정음 해례'라는 목차 아래 글자의 제작 원리와 사용 방법 등을 적고 있어 '언해본'과 구분해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잘 알려진 언해본은 해례본의 앞부분인 '어제(御製) 서문'과 '예의편(例義篇)'만을 한글로 번역해 세조 이후 만든 책으로 여러 판본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실록 등 역사서에 기록돼 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해 구입하면서 처음 실체가 알려졌다. 전형필은 소유주에게 책값 1만원과 별도 사례금 1000원을 주고 해례본을 구입했다.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는 소장자를 '시내 모씨'라고만 썼다. 김슬옹 교수는 "소장자를 익명으로 처리하고 사진도 없이 보도한 것은 우리말과 글의 교육을 금지한 일제 치하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송본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유일본이다. 지난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또 다른 판본(상주본)이 발견됐으나 간송본에 비해 훼손된 부분이 많고 이후 도난에 이어 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모씨의 집에 화재가 나면서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해례본의 발견으로 세종대왕이 창틀과 문고리를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일부 일본 어용학자들의 억측을 반박할 수 있게 됐다. '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등으로 글자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세계 언어학자들은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극찬하고 있다.

    간송 소장본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이후 몇 차례 영인본이 발간됐지만 원형 그대로 복간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전형필 선생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연구자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고자:이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