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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 대신 지불한 것이라 “팔았다”고 간주한다는데, 가셰와 그토록 친했던 사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걸 엄밀한 의미에서 팔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치면 ‘아를의 붉은 포도밭’ 또한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반 고흐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겸 화가 외젠 보슈의 여동생에게 판 것이었다. 아아, 그러니 반 고흐가 생전에 그림을 거의 못 파는 화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로니컬하게 이제는 그의 그림이 몇 백억원에 팔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불행했던 삶이 실제보다 더욱 불행하게 치장되어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팔리고 있다. 반 고흐만큼 전기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지금도 마침 한 영화가 상영 중이다) 그에 대한 팝 음악이 나오기까지 한 화가가 또 있을까. 이것은 반 고흐만큼 ‘예술가의 신화’에 딱 들어맞는 삶을 산 미술가도 없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운데 꼿꼿이 외길을 걸은 삶, 젊은 나이의 죽음, 그리고 사후의 찬란한 영광까지.
사실 오늘날까지 이름을 남긴 미술가들 중에는 일찍 성공해서 풍요롭게 산 사람도 꽤 많다. 바로크 미술의 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반면에 생전에 가난하게 살았고 사후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예술가들 또한 함께 존재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예술가의 전형’은 언제나 반 고흐다. - 가난하고 불행하게 외길을 걷다가 사후에 명성을 누리게 된.
이것은 사실 위험할 수도 있다. 예술가들에게 반 고흐처럼 되기를 자타가 은근히 강요하게 되고, 그래서 대부분의 예술가가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이 계속 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술가들에게 돈 문제에 초연하고 순결하기를 강요하며 재능 기부라는 이름으로 노동 착취를 하는 현실로도 연결될 수 있다.
경제학자이자 미술가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한스 애빙은 그의 저서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그는 예술, 즉 예술이 아닌 것과 구분되고 또 대중예술과 구분되는 순수예술이, 근본적으로 소수의 엘리트 계층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소수의 예술가만이 인정받고 그들이 엘리트 계층의 후원을 독점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술의 신성함, 상업성의 배제 같은 ‘예술에 대한 신화’가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따라서 예술세계의 구조적인 빈곤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침 애빙이 오는 27일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여는 국제 심포지엄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에서 이와 관련한 기조 발제를 한다고 한다. 그 외에 여러 경제학자, 예술가, 정책 전문가 등이 예술가의 빈곤과 이 문제를 해결할 정부 제도의 문제를 논의한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