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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영역 침범 않고 공생, 곤충은 젠틀맨이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4. 27. 10:17

 

 

'한국의 파브르' 곤충박사 정부희

[중앙일보] 입력 2014.04.26 00:26 / 수정 2014.04.26 00:28

 

남의 영역 침범 않고 공생, 곤충은 젠틀맨이다

 

동물 150만 종 중 100만 종이 곤충, '지구의 주인' 소리 들을 만해

 

20년 넘게 전국 훑은 '필드의 여왕'

우리 곤충 생태 관찰기 5권 펴내

 

 

 

 

곤충박사 정부희씨가 경기도 가평군 화야산에서 만난 쌍줄푸른밤나방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높이 755m의 화야산은 얼레지 등 아름다운 야생화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순례의 길을 가는/라마의 선승처럼/어느 성지를 향해/그리 바삐 가시는지/가사도 걸치지 않은/저 푸른 맨몸/일보궁배(一步弓拜)/일보궁배(一步弓拜).’

 

 시인 임보의 ‘자벌레’ 전문이다. 자벌레는 자나방과·가지나방과의 애벌레를 말한다. 자로 잰 듯 걸음새가 또박또박하다. 일보궁배는 활처럼 온몸을 굽혀 하는 절이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경기도 가평군 화야산 자락. 곤충박사 정부희(52)씨가 손바닥에 잠자리가지나방 애벌레를 올려놓았다. 색깔이 곱고 화려하다. 날씨가 덜 풀려서인지 자벌레가 꼼짝하지 않고 있다. 정 박사가 인사를 했다.

 

 “미안해, 미안해, 무척 긴장했구나. 내가 못할 짓을 했네.”

 

 정씨가 말을 이어갔다. “얘는 노박덩굴을 먹어요. 5월 말이 되면 번데기가 돼 네모 모양의 잎사귀 집을 지을 겁니다. 왜 활처럼 휜 채 가느냐고요. 가운데 배쪽 다리가 퇴화돼서 그래요. 반면 더 빨리 갈 수 있답니다.”

 

 그를 따라 곤충을 만나러 나선 길, 겨우내 잠들었던 각양각색 벌레가 깨어나고, 곤충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는 새들의 날갯짓이 날렵하다. 대자연의 순리다.

 

 “나방 식구들은 다 실을 만듭니다. 가장 품질이 좋은 게 누에 명주실이고요. 동요 ‘거미’ 첫 대사가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라고 하잖아요. 그건 틀린 말입니다. 거미는 줄을 먹으며 올라가고, 줄을 타고 올라가는 건 자벌레죠.”

 

 

 

 

 

 

 30m쯤 더 올라가자 작은 바위에 내려앉은 분홍빛 나방 한 마리가 보였다. 정씨가 “대박”을 외쳤다. “얘는 실제로 처음 봐요. 쌍줄푸른밤나방이죠. 와, 정말 예쁘다. 방금 전에 우화(羽化)한 모양입니다. 오늘 운이 좋군요. 사람이나 곤충이나 세파에 시달리면 얼굴에 그늘이 지지만 얘처럼 바로 나온 뒤에는 해맑기 그지없어요.”

 

 정 박사는 자칭 타칭 ‘한국의 파브르’를 꿈꾼다. 4년 전부터 매년 곤충기 한 권씩을 발표해 왔다. 『곤충의 밥상』(2010), 『곤충의 유토피아』(2011), 『곤충 마음 야생화 마음』(2012), 『나무와 곤충의 오랜 동행』(2013)에 이어 이번 주 『곤충의 빨간 옷』(이상 상상의숲)을 냈다.

 

 그의 책은 딱딱하지 않아 좋다. 일반 도감처럼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곤충과 꽃, 곤충과 나무, 곤충과 곤충이 빚어내는 자연의 세계를 풍성한 입말로 풀어놓는다. “패자부활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거친 세상!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만 풀숲, 숲 속, 흙 속의 자그마한 곤충들에게 옷은 멋내기용이 아닌 생존용, 살기 위한 절박한 선택입니다”처럼. 정 박사와 만난 날, 서울 하늘은 찌푸렸다. 미세먼지로 시계(視界)가 좁았다.

 

 - 곤충도 미세먼지의 영향을 받을까.

 

 “곤충은 늘 자연재해와 함께해 왔고, 또 살아남았다. 미세먼지는 최근 현상이라 아직 연구된 게 없다. 곤충이나 사람이나 같다. 사랑하고, 다투고, 아이 키우고….”

 

 - 곤충을 흔히 미물(微物)이라 부른다.

 

 “곤충은 덩치가 작다 보니 카리스마가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 반달곰 복원한다면 모두 귀를 쫑긋 세우는데….”

 

 - 그럼에도 ‘지구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지구에 사는 동물이 150만 종이다. 그중 100만 종이 곤충이다. 주인 소리를 들을 만하다. 현재 알려진 식물은 26만 종이다.”

 

 - 그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곤충은 젠틀맨이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람보다 낫다. 먹이가 대표적이다. 곤충에 따라 먹는 게 다르다. 대부분 한 가지만 먹는다. 풀, 나무, 버섯, 똥과 시체, 다른 곤충 등. 남의 것을 앗을 일이 없다. 그러면서 공생한다. 위대한 지혜다.”

 

 - 예를 들자면.

 

 “제 전공이 버섯살이 곤충이다. 국내 처음으로 연구했다. 그 애들은 평생 어두운 버섯 속에서 산다.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도깨비거저리는 말굽버섯을, 산호버섯벌레는 구름버섯(운지)만 먹는다. ”

 

 정씨는 늦깎이 과학자다. 대학에서 영문학(이화여대 영어교육)을 공부한 그는 자녀교육 차원에서 유적지 답사를 다니다가 야생화에 매료됐고, 이후 나무와 새를 거쳐 곤충에 빠지게 됐다. 마흔 넘어 성신여대 생물학과 대학원에 들어갔고, 2008년 곤충학 박사를 받았다. 만학(晩學)의 성공 사례다. 현재 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곤충신이 내렸어요. 한마디로 미친 거죠. 집에 도깨비거저리 50여 마리를 키워보세요. 냄새가 보통이 아닙니다. 식초 냄새가 진동해요. 멀미가 나서 토할 정도죠. 남편에게 쫓겨날 뻔도 했어요.”

 

 - 시리즈 제목이 ‘정부희 곤충기’다.

 

 “파브르 곤충기는 프랑스 곤충 관찰기다. 우리 곤충에 대한 얘기책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 별명이 ‘필드의 여왕’이다. 남들은 ‘파(골프)가 얼마나 되느냐’고 농담하는데, 지난 20년 넘게 산이고, 들이고, 바다고, 땅끝마을 해남부터 민통선까지 안 다닌 곳이 없다.”

 

 - 곤충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우리 땅에 사는 곤충은 북미나 아프리카의 곤충과 종이 다르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가 한때 유행했는데 곤충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물이 곧 글로벌한 생물이다.”

 

 - 강단 교수는 될 수 없었나.

 

 “동물이든, 식물이든 국내에 나온 도감은 거의 다 아마추어 애호가들이 만든 것이다. 그만큼 우리 학문의 층이 얇다. 곤충학자를 다 합해도 200명 안팎이다. 이론과 현장을 겸비한 통섭형 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맨땅에 헤딩하듯 공부는 늦었지만 곤충의 통역사가 되기로 작심했다.”

 

 -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필요한 데이터를 얻으려면 10~20번 반복 실험해야 한다. 200~400배 고배율 현미경을 줄곧 들여다보느라 백내장 수술도 받았다. 이곳 하야산에만 100번은 온 것 같다. 밤에 혼자 산길을 걸을 때는 얼마나 무섭던지…. 더도 덜도 아닌, 고난의 길이다.”

 

 - 지금까지 몇 종이나 만났을까.

 

 “책마다 30~40종씩 소개했다. 다 센 적은 없지만 300~400종쯤 된다. 그중 100여 종에 예쁜 우리말 이름도 붙여줬다. 볼록진주거저리·눈큰잎벌레붙이·여수둥글거저리·방귀무당벌레붙이 등등.”

 

 네 시간 남짓 ‘탐충(探蟲)’을 마치고 서울 광장동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13평 오피스텔 전체가 곤충의 왕국이다. 사방이 표본상자다. 싱크대 서랍도, 신발장도 그가 키우고 있는 곤충들 차지다. 야외용 발전기도 눈에 띄었다.

 

 - 1년 내내 바쁘겠다.

 

 “4월에 한 시즌이 시작된다. 지난주 나만의 시산제(始山祭)를 다녀왔다. 9월까지 채집에 집중한다. 더운 7~8월에는 야간활동이 많다. 10월부터는 정리 모드다. 각종 자료를 찾고, 분류를 하고, 논문을 쓴다. 알→애벌레→번데기→어른벌레가 되는 곤충의 한살이를 닮았다.”

 

 - 곤충에게 배운 게 있다면.

 

 “겸손함이다. 곤충은 생태계의 지킴이다. 먹이사슬의 밑바닥이다. 금파리·송장벌레 등 똥과 시체를 좋아하는 곤충이 없었다면 지구는 온통 똥밭이 됐을 것이다. 세상에는 해충(害蟲)이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뿐이다. 모두 다 자기의 역할이 있다. 함부로 약을 칠 일이 아니다.”

 

 - 인간과 곤충이 싸운다면.

 

 “자주 받는 질문이다. 당연, 곤충이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살았다. 지금처럼 마구잡이 개발이 계속되면 큰코다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생태공원·자연휴양림을 만든다며 되레 자연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조금 불편하게 살면 된다.”

 

모기향·바퀴벌레약·냉장고 없는 ‘3무 생활’

 

 

 

 

 

 

정부희 박사의 24시간은 ‘곤충의, 곤충에 의한, 곤충을 위한’이다. 집에서나, 연구실에서나 곤충은 그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다. 하여 함부로 그들을 대할 수 없는 일. 그의 곤충 사랑은 ‘3무(無) 생활’로 요약된다.

 

 첫째, 그는 모기향 없이 산다. 집에서는 물론 야외에서도 절대 모기약을 쓰지 않는다. 모기향의 강한 냄새가 곤충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 남편이 가끔씩 향을 피우려 하지만 극구 말립니다. 매일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또 같이 데리고 자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죠.” 아들 둘도 이제는 모기에 물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됐다.

 

 둘째, 바퀴벌레약을 멀리한다. 이유는 모기약과 마찬가지다. 그의 재산목록 1호인 곤충에 득이 될 게 없는 까닭이다. “가끔 연구실에 바퀴벌레 몇 마리가 들어오곤 하지만 치우지 않고 그냥 놓아둡니다.”

 

 바로 반문을 했다. “바퀴벌레가 곤충을 잡아먹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대답이 명료하다. “그러니까 아이(곤충)들이 안전하도록 지퍼백에 넣어두잖아요.”

 

 셋째, 그의 연구실에는 냉장고가 없다. 대신 냉동고를 들여놓았다. 채집해온 곤충을 순도 99%의 알코올이 담긴 바이알(Vial·유리병)에 넣고, 그 바이알을 냉동고에 보관한다. 곤충들의 DNA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요 표본은 영하 20도 이하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제가 죽으면 국가에 기증할 계획입니다.”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