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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문학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2. 17. 11:01

 

조정래·박범신·공지영 등 역작 풍년 ‘소설의 귀환’

등록 : 2013.12.15 19:44수정 : 2013.12.15 19:44

 
2013년 문학을 수놓은 얼굴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정래, 박범신, 정유정, 고은, 이성복, 무라카미 하루키, 공지영, 안도현, 베르나르 베르베르, 최인호. <한겨레> 자료사진 (※ 클릭하면 이미지가 크게 보입니다.)

2013년 문학계

‘정글만리’ 밀리언셀러 등극
김주영 ‘객주’ 10권으로 완간
장편 깊이 더하고 소설집 풍년

고은 시인 생산력 갈수록 왕성
대선 후폭풍 정치적 사건 논란
신동엽과 김수영 문학관 건립

2013년 문학의 키워드는 ‘소설의 귀환’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중견 및 인기 작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장편소설을 쏟아내면서 한동안 마음 치유용 책들과 자기계발서 등에 밀려 찬밥 대접을 받던 소설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는 비록 세권짜리이긴 해도 국내 소설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 이후 5년 만에 판매 100만부를 넘어서는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놓고 벌이는 각국 상사원들의 각축 그리고 한-중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어 특히 남성 직장인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향 논산에 내려간 박범신이 등단 40년 만에 40번째 장편으로 내놓은 <소금>은 가족간의 사랑조차도 자본주의적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잊혀지는 아버지의 자리 그리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돌이켜 본 소설이다. 그런가 하면 김원우의 장편 <부부의 초상>은 화가와 약사 겸 시인 부부의 몇십년 세월을 지켜본 기자 출신 화자를 내세워 일상과 제도의 속물화를 꼬집는다.

 

 

원로 작가 김주영은 1984년 전 9권으로 마무리했던 대하소설 <객주>를, 경북 울진 보부상길을 무대로 한 마지막 10권을 추가해 30년 만에 전 10권으로 완간했다. 김원일은 <아들의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화두와도 같은 ‘남로당 아버지’의 성장기에서부터 월북까지를 되살려냈다. 이밖에도 한승원의 <겨울잠, 봄꿈>, 이경자의 <세 번째 집>, 최인석의 <투기꾼들을 위한 멤버십 트레이닝>과 이시백의 두 소설 <나는 꽃도둑이다>와 <사자클럽 잔혹사>, 이현수의 <나흘>,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 등 중진 및 원로 작가들의 장편이 잇따랐다.

 

 

1960~70년대생 중견 작가들의 활약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공지영은 <도가니> 이후 4년 만에 새 장편 <높고 푸른 사다리>를 내놓아 그의 소설을 기다려 온 독자들의 기대에 부합했다. 전작 <7년의 밤>으로 일약 인기 작가 대열에 올라선 정유정도 그로부터 2년 반 만에 신작 <28>을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은 자신의 첫 ‘성인물’인 <너를 봤어>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과시했다.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 김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최제훈의 <나비잠>,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 김사과의 <천국에서> 등이 한국 장편소설의 폭과 깊이를 더한 한해였다.

 

 

소설집도 풍성했다. 김연수가 <사월의 미, 칠월의 솔>로 삶에 대한 한층 성숙한 통찰과 무르익은 필치를 과시했으며, 신경숙은 짧은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에 깃든 세계의 진실을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이밖에도 송기원의 <별밭공원>과 정찬의 <정결한 집>, 구효서의 <별명의 달인>과 성석제의 <이 인간이 정말>, 윤대녕의 <도자기 박물관>과 한창훈의 <그 남자의 연애사>를 비롯해 권여선, 정지아, 하성란, 조경란, 천운영, 이기호, 편혜영, 최진영 등이 신작 소설집을 묶어 냈다.

 

 

시 쪽에서는 원로 시인 고은의 왕성한 생산력이 돋보인 한해였다. 70년대 일기를 묶은 <바람의 사상>과 자전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을 연초에 내놓은 고은은 11월에는 미발표작 500여편을 포함해 무려 1천쪽이 넘는 두툼한 시집 <무제시편>을 선보였다. 한편 시인은 그사이 30년 동안 거주하던 경기도 안성을 떠나 수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성복은 10년 만에 펴낸 시집 <래여애반다라>에서 삶이라는 수수께끼를 향한 시적 도전을 이어갔다. 허만하의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와 민영의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황동규의 <사는 기쁨>이 원로들의 건재를 확인시켰다면 함민복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과 이영광의 <나무는 간다>, 이병률의 <눈사람 여관>, 권혁웅의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김소연의 <수학자의 아침>, 황병승의 <육체쇼와 전집> 등 시단의 허리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꾸준한 소출 역시 듬직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작가적 양심에 입각한 목소리를 냈던 문인들은 그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동료 문인들과 함께 정권 교체를 바란다는 취지의 광고를 냈던 젊은 작가 손홍규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결국 벌금형을 받았다. 문재인 야당 후보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안도현 시인은 선거 기간 중 안중근 의사 유묵의 소재에 관해 박근혜 후보에게 공개 질의를 한 것 때문에 기소되어 1심에서 부분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했다. 안도현 시인은 기소 직후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이런 와중에 전통의 문학 월간지 <현대문학>은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극도의 찬사와 함께 싣는가 하면 작가 이제하와 정찬의 소설을 정치색이 있다며 연재 거부해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국시인협회(회장 신달자)는 근현대 인물 시집 <사람>을 기획했다가 이승만과 박정희 등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시들이 포함된 사실이 문제되어 시집을 전량 회수하고 사과하는 등 소동을 빚었다. 우수문학도서를 구입해 문화 소외 계층에 나눠주는 문학나눔사업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관으로 옮기기로 한 정부 방침에 반발해 현기영, 천양희, 윤후명 등 원로 문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황석영의 <여울 물소리>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펴낸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사재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작가들이 작품을 절판시키기에 이르렀다. 10여년 전통의 시 전문지 <시안>과 <시인세계>, <시평>이 가을호와 겨울호로 종간 및 무기 휴간에 들어갔다. 인천에 한국근대문학관이 들어섰으며 1960년대 참여시를 대표하는 신동엽과 김수영의 문학관 역시 올해 나란히 세워졌다. 2003년부터 문단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던 ‘앙팡 테리블’ 백민석은 10년 만에 소설집 <혀끝의 남자>로 문단 복귀를 신고했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소설가 최인호가 타계했으며 원로 시인 이기형도 별세했다. 노벨문학상은 캐나다의 단편소설 작가 앨리스 먼로에게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등 해외 인기 작가들의 소설이 국내 소설들과 독자 쟁탈전을 벌인 한해이기도 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