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정년에서 *시벗까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8. 19. 23:21

이 글은 도봉문화원 시창작교실에서 시공부를 하고 계신 어느 분의 글이다.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시 한 편씩을 써 오기로 했는데 이 분은 산문으로 작성을 해 오셨다.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마당에 이제 “늙음”은 젊거나 늙어가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를 막론하고 깊이 궁구해 보아야할 화두가 되었다.

이 분의 진솔한 고백 속에서 나는 나의 미래를 보았고, 우리의 미래를 보았다.

 

 

정년에서 *시벗까지

1.

 

정년에서 시벗까지 생각해보면 많은 세월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십 년하고도 얼마가 더 지나갔는지 계산해 볼 일도 아니다. 정년 후에 있었던 잡다한 얘기들, 황당한 얘기들을 적어보기로 하자.

 

가출을 두 번 했고, 알바를 한 번 해봤고, 부부싸움을 한 번 했고, 죽마고우 불알친구와 대판 싸움 한 번. 생산적인 일이라고 없다.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일들 뿐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갈 곳이 없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그렇게 할 일이 많고 그렇게 볼 사람이 많고 머리가 터지게 고민해야할 일이 많았었는데 어느 날 아침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머리 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이 없다. 정년 후의 삶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각오도 다져보았지마는 막상 닥쳐보니 그 박탈감, 상실감을 무어라 글로 다할 수 없다.

한 반 년은 그 무력감을 술로 달랬을 것이다. 형제처럼 지내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의 친구와 아무 일도 없어졌을 때의 친구가 그렇게 멀리 가 있을 줄은 몰랐다.

 

자연히 사람이 위축되고 집에서까지(사람이) 변화가 오기 시작.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고 별 일 아닌데도 많이 서운해 하고 그렇게 쌓이고 쌓이면서 어느 날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서 가출을 하게 되는데 처음 한 번은 차도 있겠다 냅다 안면도로 뛰었다. 백사장 포구 조개구이 집. 나를 알아보는 주인은 왜 오늘은 혼자 오셨냐고 묻는다. 적당히 둘러댈 말이 없다. 내 사정을 알고 하는 말 같아 얼른 소주 한 잔을 들이킨다. 금방 술이 오르고 눈물이 핑돈다. 집에다 바로 전화를 한다

 

“여보, 미안해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 용서해 이제 다시는 집 나가는 일은 없을꺼야”

 

참 싱겁고도 못난 놈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가출을 하게 된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무어라도 해보겠다고 알바를 하는데 젊은 감독놈이 동작이 뜨다고 막말을 해서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도 싶었고 술자리에서 친구놈이 너는 출세도 못하고 인생을 뭐 그렇게 살았냐고 해서 코뼈를 작살(?)낸 적이 있다. 정년이 나에게 가져다 준 아픈 기억들이다.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정돈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시작한 것이 합창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소리로 하나가 되고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스스로 즐겁고 화합할 수 있다는 것. 정년 후의 반을 합창에 빠져 살았다. 아주 즐거웠다.

 

2.

 

그런데 더 즐거운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도봉시벗’ 한 번 해보겠다. 해보겠다. 생각만 했었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도봉시벗’ 문을 두드렸습니다. 병아리 초년생이 벌써 카페에 못 쓰는 글이나마 올렸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 지 몰라요. 카페 중독에 걸렸어요. 창 밖의 남자라나, xx 교수님도 뵙고, 일 잘하는 똑순네 XX님, 카페지기님, 회장님을 비롯한 인정 넘치는 우리 시벗님들 너무 행복 합니다.

 

우리 집에도 경사가 났어요. 늙어 죽을래 늙어 죽을래하고 다그쳤던 노총각 큰 놈이 올 봄 노처녀를 하나 데리고 들어 왔어요. 그것도 애까지 만들어 가지고요? 기특하지 않습니까> 내 년 봄 저도 그렇게도 바라던 손주 새끼를 안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큰 기쁨인 것이지요. 서시천! 너 힘 내.. 정년의 아픔에서 ‘도봉시벗’까지 왔잖아.

 

 

* 도봉시벗: 도봉문화원 시창작교실 카페 이름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잡스   (0) 2011.10.08
성모와 관음  (0) 2011.09.01
자작나무 미술관   (0) 2011.08.06
침묵의 의미  (0) 2011.07.30
빠르기만 한 'KTX 인생'엔 행복이 없다  (0) 201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