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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과 편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6. 2. 20. 14:14

[에디터 프리즘]

 선입견과 편견
중앙선데이
입력 2026.02.14 00:30

업데이트 2026.02.14 01:06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클래식한 곡만 썼을 거라고 흔히들 오해하곤 한다. 영화 ‘미션’의 구슬픈 오보에 독주나 가슴속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네마천국’의 감미로운 선율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가 20세기 영화음악계에서 가장 파격적인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찍이 30대 중반이던 1960년대 ‘황야의 무법자’를 서부영화의 레전드로 등극시킨 휘파람 메인 테마나 ‘석양의 무법자’ 전편에 흐르는 코요테 울음소리와 “아이아이야~” 추임새는 당시에도 충격 그 자체였다.

눈에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님에도
허상을 좇는 자는 늘어만 가는 현실

당연한 듯한 세간의 상식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핑크 플로이드가 남긴 불후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도 등장하듯 달의 뒷면은 사시사철 캄캄할 것이란 게 오랜 통념이었지만 실제론 한 달에 한 번꼴로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수십억 년을 달려왔다. 매달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다. 다만 달의 공전·자전주기가 같아 지구에선 늘 달의 앞면만 보게 되면서 과학이 발달하기까지 인간은 달의 뒷면이 늘 영하 수백 도의 음지일 거라고 지레짐작해 왔다.

눈에 보이는 것도 다 진실은 아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은 밑에 또 다른 초상화 등이 숨겨져 있는 게 여럿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캔버스마저 재사용한 것이란 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아래 그려진 인물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그림을 그리곤 했다는 점에서 입체감을 살리려는 의도적 덧칠이란 추측도 나온다. 재밌는 사실은 가시광선으론 전혀 보이지 않던 밑의 그림이 최신 적외선 촬영 기법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풍자의 대가답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바로 그 모습만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후세에 전하려 한 것이란 해석이 곁들여지는 이유다.



이런 인간의 선입견과 편견을 교묘하게 비틀며 그 허상의 민낯을 꼬집은 대표적인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특히 그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맥거핀’이란 요소를 마치 결정적 단서인 것처럼 즐겨 사용했다. 대표작 ‘사이코’에서 도주하던 여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따라오자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 하지만 경찰은 단지 주변을 순찰하는 중이었고 얼마 후 화면에서 사라진다. 주인공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진짜 위험은 따로 있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경찰이란 그럴싸한 맥거핀에 주인공도, 관객도 모두 깜빡 속았던 거였다.

히치콕이 이런 트릭을 영화 곳곳에 배치한 건 어쩌면 삶 자체가 일견 대단해 보이지만 실은 별 의미 없는 맥거핀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그럼에도 우리네 인간은 자신만의 그릇된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일쑤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비극이라면 실제 역사도 이런 허무함으로 점철돼 왔다는 점이다. 중세 유럽도 마녀의 영물이란 미신 때문에 고양이를 잡아죽이자 쥐가 급격히 늘었고, 운반책인 쥐의 급증이 페스트 창궐로 이어지면서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가량이 참사를 당한 게 시대의 종말을 재촉한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지 않는가.

더 비극적인 건 21세기 문명화된 지금도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진실도 아니고 실체도 없는 허상을 금과옥조로 삼는 자들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게 현실 아닌가. 특히 선입견과 편견이 아집을 넘어 ‘신념’이 돼버린 자가 리더가 됐을 때 그 폐해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우리 모두 직접 목도하지 않았나. 정치권은 또 어떤가. 여야 할 것 없이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며 서로를 비난하지만 정작 달을 보지 않는 건 본인임을 당사자만 모르고 있지 않은가. 이젠 우리 사회도 시대에 뒤떨어진 선입견과 편견의 미몽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시민들 의식 수준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 현실은 여전히 비극이라면 너무 불행한 일 아니겠는가.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