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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제 2회 무안 문학상 수필 당선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6. 1. 25. 09:36

도꼬마리

 

김희철

 

 

시골집 헛간에는 낡은 호미 한 자루가 걸려있다. 나무 자루는 손때로 매끈하게 닳았고 쇠날은 땅 내음을 머금은 채 검붉게 빛난다. 그 호미는 할머니의 또 다른 손이었고 땅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래된 언어였다.

할머니는 하루의 빛을 호미 끝으로 떠다 옮기듯 탁탁 찍어내며 저물게 했다. 밭고랑에 골이 생길 때마다 얼굴에도 골이 깊게 패였다. 밭고랑과 주름의 고랑은 서로 닮아가며 그렇게 맞물려 돌아갔다.

할머니에게 먹을 수 있는 건 풋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건 잡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도꼬마리는 유난히 성가신 존재였다. 뿌리가 질기고 씨앗은 가시에 싸여 옷자락과 바짓가랑이에 달라붙었다.

“요 잡것들 좀 봐라. 아무리 떼어내도 소용이 읎다니까.”

할머니는 도꼬마리 씨앗을 떼어내며 혀를 찼다. 그러나 떼어내도 소용없었다. 바람에 실려 오고 짐승의 털에 달려오고 사람의 옷에 붙어왔다. 도꼬마리는 마치 흙 속의 기억처럼 어디서든 되살아나며 생명의 끈질김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악착같기는 뿌리도 마찬가지로 돌과 물길을 피해 깊이 파고들었다. 풋것이 자랄 자리를 침범하는 것이 곧 잡초였다. 당신에게 잡초란 생존의 적이자 끈질긴 불청객이었다.

호미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할머니의 손과 함께 움직였다. 쇠끝이 흙을 찍을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고 그 속에서 풋것들이 숨을 쉬었다.

“이파리를 조끔 따줘야, 지들도 살아볼라고 기를 쓰지.”

그 말에는 흙의 질서가 스며 있었다. 자르며 살리고 뽑으며 길렀다. 하지만 소나기가 쏟아지면 잡초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도꼬마리의 잎은 빗방울을 받아낸 뒤 한껏 펼쳐졌다. 빗물이 잎 사이로 스며드는 소리는 마치 흙이 숨 쉬는 소리 같았다. 그 생명력은 놀랍도록 집요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호미는 늘 새벽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흙을 두드렸다. 햇살이 이랑을 따라 미끄러지고 바람이 고랑을 따라 흐르면 할머니의 그림자가 천천히 밭을 덮었다. 그 그림자는 농부의 기도이자 흙을 위한 헌사였다.

잡초를 뽑아낼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 그것은 성실의 빛이자 생명과 마주한 이의 표정이었다. 할머니의 손끝은 늘 푸르렀다. 새순을 다루던 그 손엔 풋것의 물이 들었고 손등의 주름에는 흙먼지가 낀 채로 반짝였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도 텃밭으로 나갔다. 밭고랑에 침입한 잡것들을 호미로 탁탁 찍어내면 어느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풋것처럼 파릇해졌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잡것들이 아니어서 아무리 솎아내도 다시 풋것들의 앞을 가로막고는 했다. 할머니는 전리품처럼 밭둑마다 두둑하게 잡것들을 쌓아두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밭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할머니의 폐 속에서도 무언가가 자라나는 듯했다. 잡것들은 할머니의 무차별한 공격에 작전을 새로 짰는지 땅뙈기 대신 할머니 몸에 게릴라를 침투시켰다. 게릴라가 폐에서 세력을 넓혀나가 할머니를 꼼짝 못 하게 만든 사이 본대가 텃밭에 기습적으로 주둔하였다. 본대는 아예 텃밭을 숙영지로 삼고 옥수수나 호박, 고구마 같은 풋것들을 압박하였다. 구름 편대에서 가해지는 소나기의 폭격 지원으로 잡것들은 주둔지를 넓혀나갔다. 이제 밭은 스스로의 질서로 돌아갔다. 풋것과 잡것이 함께 자라고 도꼬마리는 다시 바람에 흔들렸다.

“밭에 잡것이 늘었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할머니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그 밭이 당신의 몸이라도 되는 듯이. 할머니는 침상에서 헛간에 걸어둔 호미를 바라보곤 하였다.

의사는 폐가 굳어간다고 했다. 흙 속에 뿌리를 깊이 박듯 병은 숨통을 조여왔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밭을 걱정했다. 호미는 더 이상 주인의 손을 잡지 못한 채 헛간 벽에 걸려 녹슬어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세찬 비가 내렸다. 가족은 할머니를 텃밭 한쪽의 감자꽃 피던 자리에 묻었다. 비는 밭을 두드렸고 그 흙냄새는 이상하게 익숙했다. 마치 오래된 숨결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며칠 후 밭을 찾았을 때 할머니의 염려대로 잡초들이 풋것들의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신이 떠난 자리엔 도꼬마리가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가시는 여전히 집요했지만 어쩐지 슬픔을 감싸는 손처럼 느껴졌다.

잡초가 밭고랑 가득 서러운 안부를 전해왔다. 그 사이 수십 마리 멧돼지 떼가 조문을 다녀갔는지 여기저기 고구마와 호박들이 부의금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잡초들을 헤치고 밭으로 들어갔다. 넘쳐나는 슬픔을 뽑아내려 했지만 어찌나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던지 꼼짝하지 않았다.

손을 대면 가시가 파고들었고 피가 스며들었다. 그때 알았다. 땅속 어딘가에 도꼬마리의 뿌리가 할머니의 숨과 얽혀 있다는 걸. 그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흙이 할머니를 붙잡고 있었다.

무성한 슬픔을 헤쳐 나오는데 풀밭에 가려진 조화들이 보였다. 잡초 사이사이로 할머니의 얼굴 같은 호박꽃들이 고개를 내밀며 목 놓아 슬픔을 위로하고 있었다. 밭둑은 푹 꺼졌고 풀잎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썩은 흙냄새와 젖은 풀냄새 그것들은 어쩐지 할머니의 냄새 같기만 하였다.

할머니가 누운 흙 주위에도 도꼬마리 몇 포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 씨앗은 바람에 실려 와 그곳에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세찬 소나기에 여기저기 밭둑이 허물어졌지만 도꼬마리가 자리한 곳만은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꼬마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그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것은 어쩐지 할머니가 보내온 인사 같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잡초는 할머니를 괴롭히던 적이 아니었다. 잡초는 할머니와 텃밭을 지켜온 또 다른 파수꾼이었다. 풋것이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잡초가 흙을 부드럽게 갈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잡초가 먼저 싸워 땅을 열어주었기에 풋것은 그 속에서 자랄 수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진 도꼬마리 씨앗의 가시를 만졌다. 그 갈고리는 무어든 붙잡으면 놓지 않았다. 그것은 생존의 기술이자 삶의 집요함이었다. 그 미세한 구조를 본떠 사람이 찍찍이라는 벨크로를 만들었다. 자연의 생명력이 인간의 기술로 이어진 셈이다.

도꼬마리의 씨앗에는 두 개의 생명이 들어있다. 하나가 먼저 싹을 틔우다 실패하면 다른 하나가 뒤이어 피어난다. 그것은 이중의 생존 전략이었고 두 배의 집요함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밭을 떠나지 못한 그 무엇이었다. 흙을 헤치면 금방이라도 할머니의 투박한 손마디 같은 뿌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발목에 도꼬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게 떼어냈는데도 바짓단에 매달려 방까지 따라왔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잡초 없는 밭은 없당게. 살아 있는 땅엔 늘상 머신가 자란다.”

그 씨앗은 마치 할머니의 거친 손 같다. 잡초의 가시 끝에서 나는 여전히 억센 손길이 느껴진다.

 

<제2회 무안문학상 수필 부문 심사평>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작품들

 

수필 부분에 있어서는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의 신선함과 그 이야기 속에 얼만큼 작가 자신의 숙고를 담아내었는가 하는 점과 문체文體의 적절함을 심사의 기준으로 삼았다. 점차 짧아지고 있는 수필의 추세를 염려하지 않아도 될만큼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읽음의 맛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수필이 이야기의 진술(감상)에 끝나서는 안되고, 삶의 심층을 탐구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김희철의 <도꼬마리>와 <젓새우> 두 편은 모두 자신의 체험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우리 삶의 건강성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잡았다. 두 편 모두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장력이 돋보였으나 <도꼬마리>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두 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더욱 정진하시기 바란다.

그밖에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그 작품들이 또 어디에서인가 빛을 발할 것을 믿기에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도봉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