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신춘문예 - 소설
불이 꺼진 속옷 가게와 우동 가게 사이에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내부.
너는 뽑기 할 때 제일 예뻐. 플러팅에 넘어가기라도 한 듯 현은 가챠숍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건너편 전봇대에 몸을 숨기고 가게 통유리창 너머로 현을 보았다.
가챠가 뭔데?
한 달 치 생활비 대출 이자 낼 돈으로 혹시 모를 확률에 도전하는 거?
엇비슷한 플라스틱 조각인데 원하는 게 나오지 않는다고 자꾸만 돈을 태우는 거?

현이 들고 오는 알은 매끄러웠다. 겉은 불투명할 때도 반투명할 때도 있었다. 반투명한 알은 열릴 때도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현이 원하지 않는 것이 그 안에 있으면 알은 열리지 않았다. 현은 열기 전까지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알이 좋다고 했다.
불투명한 알은 현이 미래를 알 수 없을 때 열렸다. 내가 다음 달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을 때, 폐업 매장이 생기기는 하냐고 물을 때. 그럴 때면 현은 밖으로 나가 빌라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흡연자가 담배와 라이터를 찾듯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불투명한 알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열릴 기미가 안 보이면 신발 뒤축으로 밟아 으깼다. 원하던 것이 나오면 원룸 발코니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나에게 물건을 흔들어 보였다. 현은 알 안에 든 것을 확인하고 뚜껑을 도로 닫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 나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척 발코니 문을 열어 방으로 돌아왔다.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은 모른 척해도 되는 것보다 많았다. 오늘 통장에서 빠져나간 오천 원은 원래 없었던 돈 치자니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없는 돈이니 존재감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부재감이라고 해야 할까. 생활비 대출 이자로 낸 그 돈을 홈플러스에 내면 봉지 라면 네 봉지를 살 수 있었다. 다이소에서는 한 달 치 영양제를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카카오뱅크가 가져갔다. 나에게 백만 원을 빌려준 대가로. 내가 느끼는 고마움은 오천 원보다 더 컸다. 다만 돈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니다.
현에게 오천 원은 가챠 한 번 돌릴 돈이었다. 나는 마트에 가도 다이소에 가도 오천 원이 아까워 좀 더 버티자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게 되던데. 현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디서 돈이 생기는 걸까. 나는 현을 미행하기로 했다. 살면서 미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미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글에 검색했다. 엉뚱하게 비행에 필요한 준비물만 나왔다. 어느 블로거가 장거리 비행에는 비강이 마르지 않도록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미행에도 필요한 준비물 같아 나는 마스크를 챙겼다. 여권이나 이북 리더기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있지도 않았다.
나는 현이 매트리스에서 뒤척이다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나는 자는 척하며 실눈으로 현을 보았다. 현은 잠옷 위에 후드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덧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와 빌라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그런 건물이었다. 맞은편 집이 현관문을 닫으면 우리 집 문도 흔들리는 곳. 나도 옷을 입고 마스크를 썼다. 빌라를 나가니 멀리 있는 현이 시야에 들어왔다. 현의 보폭은 내 보폭보다 좁았다. 현의 뒷모습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 사실을 상기하며 걸음을 늦추었다.
현의 목적지는 새벽에도 환했다. 불이 꺼진 속옷 가게와 우동 가게 사이에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내부. 너는 뽑기 할 때 제일 예뻐. 플러팅에 넘어가기라도 한 듯 현은 가챠숍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건너편 전봇대에 몸을 숨기고 가게 통유리창 너머로 현을 보았다. 통로가 겨우 확보될 만큼 가게 안에는 가챠 기계가 많았다. 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찾았다. 그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현은 망설임 없이 기계에 카드를 꽂았다. 나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움직임이었다. 무엇을 가지려는 걸까. 음식보다, 월세보다, 공과금보다 대단해? 현은 쇠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플라스틱 알 하나가 기계에서 나왔다. 그것이 불투명한지 반투명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현이 곧장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고 속을 들여다볼 수 없나 보다 짐작만 했다. 정말이지 나는 현의 속을 알 수 없었다. 미행은 원래 그런 걸까? 정신적 미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보고 들은 적 없으니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현은 핸드폰을 꺼냈다. 나에게 전화할 일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괜히 핸드폰이 무음인지 확인했다. 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터치하고 스크롤 했다. 어떤 화면인지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불공평했다. 나는 먼 거리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현의 세계에 집착하느라 전봇대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데, 현은 내 인기척도 못 느낀 채 자기 세계에 골몰해 있다는 사실이.
단서는 뜻밖에 찾아왔다. 현이 잠든 사이에 핸드폰이 울렸다. 배경 화면에 뜬 알림 정도는 잠금을 풀지 않아도 보였다. 당근마켓에서 새로운 채팅이 왔다고 했다. 누가 보냈을까. 당근마켓은 내 핸드폰에도 있었다. 현이 팔 수 있는 것은 유일무이했다. 속이 보이기도 안 보이기도 하는 알. 기대하고 열어 보는 사람을 자주 실망시키는 알. 나는 우리 동네에 매물로 나온 가챠를 검색했다. 치이카와 미개봉 가챠 판매합니다. 이틀 전 올라온 글이 눈에 띈 건 사진 때문이었다. 캡슐을 올려놓은 곳은 다이아몬드 무늬의 파란 매트리스 위였다. 현이 누워 잠든 매트리스와 똑같았다.
나는 판매자 프로필을 클릭하여 현이 그동안 거래한 내역을 살폈다. 곰돌이 푸 가챠. 원피스 열매 가챠. 산리오 가챠. 온통 가챠였다. 특이한 것은 제목마다 적혀 있는 미개봉이라는 표현이었다. 한 번 열었다가 닫아도 미개봉이라고 할 수 있나? 현이 판매하는 캡슐은 하나같이 굳게 닫힌 불투명한 알뿐이라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아직 거래가 성사되기 전인 한 게시물에 들어갔다. 사진 속 캡슐에는 사람의 솜씨인 듯 주황색 마커가 칠해져 있었다. 알의 원래 색깔을 알 수 없도록. 나는 내 프로필에 들어가 그동안 적은 게시물을 모두 숨겼다. 그래 봤자 두 개였다. 구정에 받은 카놀라유 선물 세트와 추석에 받은 스팸 세트 팔 호. 시중에서 파는 가격과 큰 차이 없이 올렸더니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요리할 때 식사할 때 하나씩 깠다. 박스만 남았다. 말도 안 되게 싸게 파느니 그 편이 나았다.
― 구매 원해요. 그런데 왜 색칠되어 있어요?
나는 현이 자고 일어나 확인하길 바라며 채팅을 보냈다.
가챠숍 맞은편 가게가 공실이 되었다. 공원에서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았다. 제과점이었나 미용실이었나. 책방이었던 거 같기도. 동네의 골목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실이 되니 그곳의 이전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다. 천장은 뜯어진 듯 전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유리창에는 임대 문의라는 문구와 함께 부동산 번호가 현수막으로 붙어 있었다. 이곳에 폐업 매장이 들어온다면, 사장님이 미쳐 물건을 말도 안 되게 싸게 파는 가게가 들어온다면. 현은 다시 일할 수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 가챠는 그런 거니까요.
현이 일어났는지 내 채팅에 회신을 보냈다. 가챠가 뭔데? 한 달 치 생활비 대출 이자 낼 돈으로 혹시 모를 확률에 도전하는 거? 엇비슷한 플라스틱 조각인데 원하는 게 나오지 않는다고 자꾸만 돈을 태우는 거? 핸드폰이 한 번 더 울렸다.
― 원하는 게 내 손 안에 있다고 믿는 거요.
나는 이상하게 발이 떠올랐다. 열리지 않는 캡슐을 으깨던 현의 발이. 나에게는 그것이 캡슐 안에 원하는 게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졌다. 믿으면 뭐하나. 현은 무수히 배반당했다. 그런데 가챠를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다. 믿고 믿고 믿었으나 배반당하고 당하고 또 당했다. 언제쯤 그만둘까. 나는 회신하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듯 현도 별말이 없었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현에게 말했다.
“폐업 매장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어떻게 알아?”
“공실이 생겼거든.”
현은 식빵을 먹고 있었다. 냉동 칸에 있던 대용량 식빵일 것이었다. 빵의 갈색 테두리가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배가 부르구나, 너는. 현이 테두리의 딱딱한 식감을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른 매장이 들어설지도 모르지.”
“폐업 매장이길 바라야 하지 않아?”
“바란다고 다 되나.”
현의 팔꿈치에 묻은 빵가루가 거슬렸다. 식탁 위에 흘린 가루를 문댄 것이 틀림없었다. 저 상태로 매트리스에 다시 눕기라도 하면. 나는 화가 났다. 표정에도 감정이 드러났는지 현이 먹던 빵을 내려놓았다.
“쉬어 간다고 생각해.”
“우리 대출까지 받았어.”
“고작 백만 원이잖아.”
“얼마나 큰 돈인데.”
“그러는 넌, 일이 있어?”
말문이 막혔다. 나에게 죄를 덮어씌우다니. 우리 둘의 차이에 대해 현에게 조목조목 따졌다. 나는 상반기 공채 시즌을 기다리는 거고, 너는 그저 생각 없이 놀고 있다고. 나는 어떻게 생활비를 줄일지 고민하지만, 너는 그깟 유희를 위해 돈만 쓰고 있다고. 현이 식탁을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기다리면 뭐하냐. 다 떨어지는데.”
큰소리로 현관문이 여닫혔다. 돈이 빠져나가는 소리 같았다. 나는 발코니로 나갔다.

있는 것과 있다고 믿는 것이 그렇게 다른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있다는 믿음은 자주 배반당했다.
도둑질을 시키는 거냐고 물으니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이 폐업 매장의 사장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으니까.
현이 출입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현은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알을 꺼냈다. 나는 그 안에 현이 원하는 것이 들어 있기를 바랐다. 현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랬다. 현은 뚜껑을 열었다. 손으로 돌려도 쉽게 열렸다. 현은 안에 든 것을 쳐다보았다. 뚜껑을 다시 닫았다. 그러고는 대로변으로 걸어갔다. 시야에서 멀어지고 사라졌다. 나도 밖으로 나갔다. 현을 두 번 미행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공실이 된 가게 옆 공인중개소에 찾아가 물었다.
“여기 뭐가 들어오나요?”
공인중개사는 의아하게 나를 보았다. 그걸 왜 묻냐는 듯이. 그럴 만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그래도 말해주었다. 두 달짜리 깔세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공인중개사의 말대로 공실 밖 벽면에 대형 현수막이 붙었다. 폐업 정리 긴급 처분.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는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구였다. 현은 나에게 물었다. 함께 일해 보지 않겠냐고. 자기가 사장도 아니면서 그랬다. 나는 싫다고 했다.
“일을 가릴 때가 아니잖아.”
현은 매장 규모가 작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직원이 두 명은 필요할 거라고 했다. 액세서리 매장이니 힘쓰는 일도 많지 않을 거라며. 현의 말이 맞기는 했다.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공채 시즌이 오기에는 아직 추운 계절이었다. 대출받은 생활비도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그러자는 말이 안 나왔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나에게 있었나? 현은 혼자 가게에 다녀와 내일부터 출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나 바빠. 생활비 관리하면서 취업도 준비하는 게 보통 일이야?”
나도 모르게 말에 날이 섰다. 현은 삼십 분도 안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나 대신 거래 좀 나가. 정오에 만나기로 했는데 못 가게 되었어.”
현은 플라스틱 알을 건넸다. 내 손에 쥐어진 알. 온통 주황색 마커로 칠해진 그 알이었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게 믿기지 않았다. 현이 일러준 거래 장소로 가면서도 괜한 걸음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 구매자가 나올 거라고 했다. 그 공원은 내가 일주일에 두어 번 운동하러 가는 곳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탓인지 공원에는 운동하는 노인 두어 명이 전부였다. 저 하늘 걷기는 내 건데. 이미 누가 타고 있었다. 하늘 걷기는 인기가 많았다. 저 노인처럼 두 발을 엇갈리게 타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네를 서서 타듯 두 발을 함께 앞뒤로 움직이면 재밌었다. 발 하나 올릴 자리에 두 발을 모두 올려놓고 움직이면 더 재밌었다.
“가챠 왕 맞아요?”
초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법한 여자애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엄밀히 말해 나는 가챠 왕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나에게 이천 원을 주었다. 세어 보라고 했다. 세어 볼 게 뭐 있나. 천 원 두 장을. 그래도 나는 열심히 셌다. 두 장인 척하는 세 장은 아닌지 혹은 장난감 지폐가 아닌지. 아무리 보아도 이천 원이 맞았다.
“싸게 팔아 주셔서 감사해요. 이거 뽑으려면 오륙천 원은 하는데.”
뭐? 나는 아이의 손에서 플라스틱 알을 다시 빼앗고 싶었다. 자기가 낸 돈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물건을 내놓은 현이 이해되지 않았다. 폐업 매장에서만 일하다 보니 헐값이 익숙해진 걸까? 사장님이 미쳤어요. 나는 현이 정말 미친 거 같았다.
“키티를 좋아해서 사기는 했는데. 마커는 왜 칠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의 말에 동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챠 왕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가챠는 그런 거니까요.”
“그런 게 뭔데요?”
“원하는 게 내 손 안에 있는 거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플라스틱 알을 문질렀다. 그러자 마커가 조금씩 벗겨졌다. 반투명한 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이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원하는 게 없는데요.”
“원하는 게 뭔데요?”
“태닝 키티요.”
아이의 말에 의하면 태닝 키티는 피부가 갈색이어야 했다. 휴양지에 온 듯 선글라스도 끼고 나뭇잎 치마도 입고 있어야 했다. 나는 아이가 건넨 알을 들여다보았다. 붉은 리본을 달고 피부가 흰, 내가 아는 키티밖에 없었다. 환불해 달라고 하면 어쩌지. 나는 걱정이 앞섰다. 이천 원이면 크기가 큰 컵라면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햇반을 살 수도 있었다.
“그것까지 가챠예요.”
“네?”
“원하는 게 그 안에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까지가 가챠라고요.”
나는 정말 가챠 왕이 된 기분이었다. 가챠를 많이 해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 그 진리를 가챠 왕국의 만민에게 전파하는 사람. 무언가 더 할 말이 남은 거 같았지만 아이는 떠났다. 다행히 환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천 원을 고이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마침 하늘 걷기에 사람이 없었다. 나는 발 하나 올릴 자리에 두 발을 모두 올려놓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하늘을 걷다 못해 과속하는 기분이었다. 이천 원을 사수해서 그런지 깨달은 적 없는 진리를 전파해서 그런지 마음이 들떴다. 이해 못 할 말도 뱉고 보니 꽤 그럴싸했다.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나는 과속을 멈추고 화면을 켰다. 현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 어떤 거짓말을 한 거야?
현은 당근마켓에서 자신이 받았다는 구매자 후기를 캡처하여 나에게 보내주었다. 거짓말로 사람 현혹. 어이없어요. 이상했다. 나는 현에 빙의하여 잘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당근마켓에 들어가 현이 나에게 보냈던 채팅을 다시 읽어 보았다. 원하는 게 내 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정말 거짓말을 했네. 현은 나 때문에 온도가 깎였다고 했다. 미안. 나는 사과했다.
있는 것과 있다고 믿는 것이 그렇게 다른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있다는 믿음은 자주 배반당했다. 현이 플라스틱 알을 열 때도 내가 공채 발표를 확인할 때도. 통장을 확인할 때도 어림짐작한 것보다 늘 돈이 없었다. 아이도 원하는 게 제 손에 있을 거라는 내 말을 믿고 플라스틱 알을 열었다. 하지만 없었고, 실망했다.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있어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데. 현이 직장에 다니고 돈을 꾸준히 벌던 시절에는 있다는 믿음이 배반당하지 않았다. 통장에 돈이 충분하다고 믿으면 정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있었던 것이 사라진 탓에. 있는 것도 언젠가 사라진다면 있다고 믿었다가 배반당하는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 없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인데. 눈앞에 오늘부터 영업을 시작한 폐업 매장이 보였다. 현이 있었다.
매장 앞 긴급 처분이라는 현수막 문구와 어울리지 않게 현의 움직임은 섬세했다. 현은 사람들이 만지고 간 매대 위 반지의 각도를 원상태로 복구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또 흐트러지고 말 텐데. 하지만 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듯 자신의 손놀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매장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최대 구십 퍼센트까지 할인한다는 사장의 외침이 거리의 행인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구경은 공짜. 시착도 공짜. 싸게 가져가세요. 그 말에 홀린 행인인 척 나도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좁은 공간 안에 사람이 미어지는 탓인지 현은 나를 보지 못했다. 목걸이와 시계, 팔찌와 반지 같은 액세서리가 천장의 백색 조명을 받아 작위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반지 하나를 검지에 껴 보았다. 가운데에 다이아몬드를 본뜬 모형 장식이 박혀 있었다. 손의 각도를 달리할수록 장식이 반사하는 빛의 세기도 달라졌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빛나나. 보지 못해 알 수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내 손에 진짜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믿으며 반지를 끼고 다닐 수 있을 거 같았다. 반지의 가격은 이천 원이었다. 지금 내 주머니에 있는 이천 원.
“여기서 뭐 해?”
현이 나를 발견하곤 옆으로 다가왔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부끄러웠다. 반지를 빼려는데 현이 내 손을 붙잡았다.
“갖고 싶어?”
“그냥 해 본 거지 뭐.”
현은 가지라고 했다. 자기가 사장도 아니면서. 도둑질을 시키는 거냐고 물으니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이 폐업 매장의 사장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으니까.
“곧 사라질 매장은 물건 하나 없어지든 말든 신경 안 써.”
나는 반지를 낀 채 매장을 나왔다. 주머니 속 이천 원은 그대로였다. 나는 아직 컵라면도 살 수 있고 햇반도 살 수 있었다. 진짜 같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얻었는데도. 마음먹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반지의 다이아몬드가 진짜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모조품이었다. 이천 원도 필요 없는 분명한 가짜. 맞은편에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너는 뽑기 할 때 제일 예뻐. 사치라도 하면 내가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의 주인처럼 느껴질까. 나는 가챠숍 안으로 들어갔다.
현의 가게만큼 면적이 좁았지만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대신 가챠 기계로 공간이 가득 찼다. 나는 좁은 통로를 따라 기계들을 살폈다. 그곳에는 먹을 수 없는 초밥도 있었고 탈 수 없는 자동차도 있었다. 마실 수 없는 음료수도 들을 수 없는 라디오도 있었다. 현이 주로 뽑는 캐릭터 가챠도 많았지만 내 눈에 띄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생활에서 본떴으나 제 기능을 잃은 것들. 나는 스테들러 문구 세트를 형상화한 모형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형광펜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길쭉하고 노란 형광펜은 문구점에서 흔히 파는 스테들러 형광펜과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똑같았다. 잉크도 없고 뚜껑도 열리지 않는, 형태뿐인 형광펜.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유용한 물건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실제로는 무용한 점이. 맞은편 폐업 매장에서 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플라스틱 알을 도로 닫곤 하는 현이. 사람을 잘못 만났다며 직장을 그만둔 현이. 마침 딱 이천 원이었다. 나는 기계에 돈을 넣었다. 쇠로 된 손잡이를 돌렸다. 플라스틱 알이 나왔다.
알은 둥글고 매끈했다. 현이 매일 뽑던 알처럼. 불투명한 붉은색 알이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것을 열고 싶지 않았다. 여는 순간 알게 될 테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뽑았는지 아닌지. 나는 알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며 웃는 현을.
해는 기운 지 오래였다. 퇴근한 현이 공원에 가자고 했다. 현도 나 몰래 하늘 걷기를 하고 있나? 외투 안을 파고드는 가을 추위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플라스틱 알이 잡혔다.
“폐업 매장만 고집하는 이유가 뭐야?”
적막을 깨고 현에게 물었다. 묻고 싶었으나 물을 수 없었던 것을, 마침내 물었다. 그동안 나는 현이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이유를 파고들지 않으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래서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알아야만 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기분이었다. 현은 폐업 매장 알바가 적성에 잘 맞는다고 했다. 그만둔다고 먼저 미안한 소리 할 것도 없고, 사장에게 해고 통보를 들을까 절절매지 않아도 된다면서.
“매장 임대 계약이 끝나면 쿨하게 헤어지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젖혀 버즘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잎사귀 색이 얼룩덜룩 바래고 있었다. 사라지고 생기는 매장들을 철새처럼 옮겨만 다니면 현은 결국 무엇이 될까. 현의 미래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불투명한 알은 미래를 알 수 없을 때 열린다. 나는 산책로 한편에 웅크리고 앉았다. 알을 꺼내 뚜껑을 돌렸다.
“안 열리네.”
“그런 알도 있지. 하지만 결국 다 열려.”

나는 알을 바닥에 두고 오른발 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알을 살짝 밟으니 작은 돌멩이가 내 아래에 있는 듯했다. 나는 힘주어 그것을 으깼다. 플라스틱이 눌리다가 두 동강 나며 진동이 느껴졌다. 다이아몬드를 깨도 이런 느낌일까.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보석사의 쇼츠에선 다이아몬드가 가장 단단한 보석이라는 속설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긁히지 않을 뿐 잘 깨어지죠.
두 동강 난 플라스틱 알에 비닐로 싸인 미니어처가 있었다. 현과 나는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뚜껑을 닫았다. 언제든 다시 열 수 있도록.
강변의 고수부지에서 메아리처럼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수부지 한편에 흙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어디에 쓰려는 흙인지 족히 무릎 높이는 돼 보였다. 형제로 보이는 두 아이가 흙무더기를 발로 차고 있었다. 찬바람에 단단히 굳었는지 숱한 발길질에도 흙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늘 걷기도 그럴 것이었다. 나는 한 발을 올릴 자리에 두 발을 모두 올렸다. 반대편 자리에서 현도 그렇게 했다. 우리는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현의 몸과 내 몸이 서로 엇갈렸다. 하늘을 걷는 두 다리처럼. 속도가 붙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이 크게 흔들렸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현은 퇴근할 때마다 작은 액세서리를 두어 개씩 훔쳐 왔다. 사장이 현을 믿는 덕분이라고 했다. 나는 현이 가져오는 액세서리를 구경했다. 명품 로고를 본뜬 펜던트 목걸이도 있었고 조악하게 장식된 플라스틱 머리핀도 있었다.
“이런 게 수백 개는 있어.”
현의 방에는 상자가 있었다. 빈 플라스틱 알들이 그 안에 있었다. 현이 원하던 것을 얻고 남은 기념물이었다. 모아두니 꽤 많았다. 나는 액세서리를 알에 넣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알 반투명한 알 가리지 않고 목걸이와 팔찌와 반지 같은 것을 넣었다. 액세서리가 든 알로 상자를 다시 채웠다. 나는 사진을 찍어 당근마켓에 글을 올렸다. 액세서리 가챠. 단돈 삼천 원. 하나가 팔릴 때마다 일 리터 우유를 살 수도 생크림 빵을 살 수도 있는 돈이었다.
거래는 주로 공원에서 이루어졌다. 가챠 박스를 내려놓고 하늘 걷기를 하다 보면 구매자가 왔다. 나는 그때마다 박스 뚜껑을 열고 하나 집으라고 하면 되었다.
“원하는 게 있으신가요?”
사람들의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결혼식 하객룩에 필요한 목걸이를 원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별 후 허전해진 약지에 끼고 다닐 반지를 원했다. 원하는 것을 뽑으면 하늘을 날 듯 기뻐했다. 아니어도 즐거워했다. 이런 중고 거래는 처음이라면서.
바닥에 박스를 두고 하늘 걷기를 하면 당근마켓으로 채팅을 주고받지 않은 사람이어도 이따금 나에게 왔다. 돈을 내면 뽑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나야 좋았다. 삼천 원이 생기는 건 똑같으니까. 더는 당근마켓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앱에서는 내가 회자되었다. 동네생활 게시판에선 하늘 걷는 그 사람으로 나를 불렀다. 하늘 걷는 그 사람 어디 있나요? 언제 공원에 오나요? 순대 트럭 닭꼬치 트럭처럼 누군가 기다리는 존재가 되다니. 썩 나쁘지 않았다.
“나 왔어.”
노인이 나에게 삼천 원을 주었다. 보라색 털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원에 하나뿐인 하늘 걷기를 두고 나와 암묵적으로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녀는 이제 한 발 올릴 자리에 두 발을 올려놓고 하늘을 걷는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흘기지 않았다. 삼천 원을 내밀고 가챠, 가챠 했다. 나에게는 그 말이 꼭 가자는 말처럼 들렸다. 가짜라고 들리기도. 그녀는 언제나 시계를 원했다. 지금까지 쓴 돈을 합치면 온전한 시계를 사고도 남았을 텐데. 시계는 희귀템이었다. 다른 액세서리에 비해 크기가 커 현이 쉽게 훔치지 못한 탓이었다. 시계를 뽑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해도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가챠는 그런 걸까?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함을 알면서도 그 얼마 안 되는 가능성에 매달리는 것. 나는 시계가 어느 알에 있는지 알았다. 불투명한 흰색 알에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이번에도 색깔 있는 알을 집었다.
“열지 마세요.”
나는 뚜껑을 돌리려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왜 그러냐는 듯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설명했다. 여는 순간 결정되고 마는 운명을. 열지 않으면 계속되는 가능성을.
“가챠는 그런 거니까요.”
노인은 내 손에서 희게 빛나는 모조 다이아몬드를 보고 물었다.
“이거 진짜야?”
“글쎄요.”
“시계가 있으면 좋지. 하지만 없어도 괜찮아.”
원하는 게 있기를 기대하지만 내 손 안에 없음을 확인하는 거, 그게 가챠라고 노인은 나에게도 익숙한 말을 했다. 그녀는 기어이 알을 열었다. 목걸이에 탁한 진주가 걸려 있었다. 노인에겐 가짜가 이미 차고 넘쳤다. 주름진 손가락에 낀 루비 반지도, 귀에 걸린 샤넬 로고 귀걸이도. 모두 가챠 상자에서 노인이 뽑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치라면서.
“좋은 건 적게 넣어야지. 미련이 남아야 사람들이 또 오잖아.”
현은 플라스틱 알에 액세서리를 넣는 나에게 말했다. 원룸 바닥에는 모조 보석으로 된 장신구들이 뒤엉켜 있었다.
“원하는 게 저마다 다르던걸.”
현도 무엇이 좋은 건지 쉽게 답하지 못했다.
구직 사이트에 채용 공고가 하나둘 올라왔다.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은 기업은 적었다. 좋은 건 적게 넣어야지. 현의 말이 떠올랐다. 이력서를 쓰고 남는 시간에는 가챠숍에 갔다.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꼭 갖고 싶은 가챠가 하나는 생겼다. 가장 가고 싶은 기업에 이력서를 넣은 날 내 눈에 띈 건 러닝 입은 사람의 피규어였다. 키가 손가락 한 마디 길이에도 못 미칠 법한 그는 기분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플라스틱 알에 갇혀 있는 신세니 걷는다고 말하기는 모호했다. 하지만 당장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듯 두 다리를 힘껏 벌리고 있었다. 하늘 걷기를 하는 내 모습 같았다. 움직일 뿐 기계 위를 벗어나지 않았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챠 기계 안에는 러닝 입은 사람이 걷는 버전, 가부좌를 튼 버전, 만세 하는 버전 등 다양한 피규어가 들어 있었다. 나는 기계 안에 오백 원 동전을 여섯 개 넣었다. 액세서리 가챠를 팔아 번 돈이었다. 쇠 손잡이를 시계 방향으로 신중하게 돌렸다. 그렇게 하면 원하는 가챠를 얻을 수 있다는 듯이. 알은 불투명했다. 걷는 사람을 뽑으면 이력서를 넣은 기업에서 연락이 오고, 다른 사람을 뽑으면 모두 꽝이다. 가챠와 취업은 아무 관계 없지만 나는 스스로 미신을 만들어냈다. 건너편의 폐업 매장에서 현은 오늘도 매대 위 액세서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매장 안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장도 더 이상 거리의 행인을 불러들이기 위해 할인율을 외치지 않았다. 현은 매장의 임대 계약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곧 문을 닫을 폐업 매장처럼 내 운명도 정해져 있었다. 나는 알의 뚜껑을 서서히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