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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동백·순천 매화… 늦은 만큼 설레는 ‘봄 마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2. 18. 15:38

거제 동백·순천 매화… 늦은 만큼 설레는 ‘봄 마중’

  • 문화일보
  • 입력 2025-02-13 08:56
  • 업데이트 2025-02-13 08:57

붉은 동백꽃이 터널을 이룬 봄날의 거제 지심도 모습. 선착장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다.



■ 봄꽃여행 추천 명소

거제 지심도 섬 전체가 동백숲
장흥 천관산엔 국내 최대 규모

순천 금둔사는 매화 향기 가득
제주 한림공원 뒤늦은 수선화

혹한에 뒤이어 폭설까지…. 겨울이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남녘에서는 봄꽃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막바지 겨울 추위로 첫 꽃소식이 예년에 비해 많이 늦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봄소식이라 반가운 마음도 더 하다. 절정의 순간 모가지가 툭 떨어지는 선홍빛 동백의 본격적인 개화는, 봄을 앞둔 이즈음이 시작이다. 차가운 가지에 성글게 꽃을 피우는 매화도, 제주에서 개화가 시작돼 바다를 건너오고 있다. 제주에는 예년보다 20일쯤 늦게 핀 수선화가 만개로 치닫고 있다. 이른 봄꽃여행의 목적지로 삼기 좋은 호젓한 명소를 골라봤다.

# 춘백(春栢)이 활짝… 거제 지심도

경남 거제 장승포항 남동쪽 5㎞쯤에 떠 있는 지심도는 면적 0.36㎢, 해안선의 길이가 3.7㎞에 불과한 자그마한 섬. 섬의 형상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해서 지심도(只心島)란 이름이 붙었다. 지심도는 섬 전체가 동백숲이다. 지심도의 동백은 2월 중순을 지나며 절정을 이루는데, 올해는 좀 꽃이 다소 늦어서 3월 중순까지도 절정의 동백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심도 동백은 절정을 넘기고도 4월까지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절정의 개화 시기에 맞춰서 가는 것도 좋지만, 동백의 아름다움은 만개했을 때보다 툭툭 떨어져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질 때가 더 아름다운 법이니 좀 늦었다 싶을 때 가도 좋겠다.

지심도에서는 산책로를 따라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섬 구경의 전부이지만, 동백숲이 터널을 이룬 오솔길과 바다 풍경이 근사하다. 장승포항에서 출발한 배가 닿는 지심도 선착장에서부터 동백꽃 터널의 오솔길이 시작된다. 지심도의 동백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아름드리 동백이다. 길어야 3시간이면 섬을 모두 다 둘러볼 수 있지만, 일출이나 일몰을 보려면 민박집에 여장을 풀어야 한다.

# 국내 최대 동백숲… 장흥 천관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단일 수종의 최대 동백숲은 전남 장흥의 천관산에 있다. 동백나무와 비자나무를 비롯한 난대 수종이 온통 뒤얽혀 자라는 전남 진도의 여귀산 동백숲(100㏊·30만여 평)을 최대로 꼽는 이들도 있지만, 동백나무 단일 수종으로만 따진다면 천관산자연휴양림 입구의 20㏊(6만여 평) 동백숲의 면적이 가장 크다. 1만2000그루에 달하는 이곳의 동백나무들은 따로 조림한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자란 것들이다. 그래서 크기도 굵기도 제각각이다. 오래된 나무는 100년 수령을 훨씬 넘겼고, 어린 것도 족히 40년생은 된다.

동백숲은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임도의 협곡에 있다. 내비게이션에 휴양림을 입력하면 동백숲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임도에서 진초록의 거대한 동백숲으로 내려가는 긴 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반짝이는 이파리의 동백숲 한가운데로 들어설 수 있다. 이곳 동백의 개화 시기는 다른 곳보다 좀 늦는 편이다. 해마다 들쑥날쑥하지만 2월 말이나 3월 초부터 개화를 시작해 3월 중순을 넘길 때쯤 만개한다.



# 앞다퉈 피는 매화… 순천 금둔사·선암사

전남 순천 금전산 자락의 절집 금둔사는 남도 땅에서도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곳 가운데 하나다. 금둔사에는 지난 2023년 타계한 지허 스님이 20여 년 전 낙안읍성의 오래된 매화의 씨를 받아 심었다는 이른바 ‘납월매’ 6그루가 있다. 납월매란 납월(臘月·음력 12월)에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씨를 내어준 낙안읍성에 있던 늙은 납월매는 이미 노목이 돼 죽어버렸다.

섬진강변의 매화 개화가 아직 멀었을 때도 납월매는 먼저 꽃을 피워올린다. 금둔사의 매화는 다른 매화보다 유독 꽃이 작다. 매실 농장의 폭죽처럼 피어난 매화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선비의 풍모와 그윽함이 엿보인다.

금둔사에는 매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웅전 마당에는 10여 그루의 영산홍이 있고, 장독대 주변에는 동백이 환하다. 해마다 봄이면 매화와 영산홍, 동백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워올리는데, 봄이 무르익을 무렵에 절집은 그윽한 꽃향기로 가득 찬다. 금둔사를 찾았다면 인근의 낙안읍성 민속마을과 벌교 꼬막을 엮어 한나절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아무 양념 없이 삶아 상에 내놓는 쫄깃한 벌교 꼬막은 매화가 필 때쯤이면 막바지다.

# 지각한 봄꽃 소식… 제주한림공원

봄꽃 개화 시기를 가늠할 때 보통 제주는 번외로 치곤 한다. 육지에 비해 봄꽃 소식이 빨라도 너무 빨라서다. 그런데 올해는 제주의 꽃소식이 많이 늦었다. 한림공원의 수선화가 이제야 피어났다는 소식이다. 제주의 수선화는 늦어도 1월 중순쯤이면 피는데, 올해는 계속된 한파로 꽃망울이 늦게 터졌단다. 예년에 비해 개화가 20일쯤 늦었다.

제주에는 봄꽃을 대표하는 매화를 앞세우는 노리매 매화공원도 있고, 매화축제로 이름난 휴애리 자연생활공원도 있지만, 꽃의 정취로 본다면 한림공원이 으뜸이다. 33만578㎡(10만여 평)의 너른 부지에 들어선 한림공원은 야자수와 선인장, 다양한 아열대 식물로 가득한 이국적인 수목원이다. 한림공원에서 가장 볼 만한 건 매화다. 한림공원의 매화가 특별한 건 발치에 수선화 꽃밭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순백색과 노란색의 수선화꽃과 진초록의 잎, 그리고 화사한 매화와 그윽한 향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한림공원에는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축축 늘어진 ‘수양 매화’가 여러 그루 있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거대한 우산처럼 사방으로 늘어뜨린 가지에 다닥다닥 매화 송이가 매달린 모습이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상적인 건 매화군락지로 가는 길에 놓인 돌 수조에다 띄워놓은 모가지째 떨어진 붉은 동백꽃. 공원 곳곳에서 이런 감각적이고 센스있는 터치가 느껴진다.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