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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도시의 미래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28. 15:48

AI·VR 빵빵한 ‘제2 바벨탑’ 꿈…가상 도시에선 누구나 황제·신

중앙선데이

입력 2019.10.26 00:2

 
 
[김대식의 ‘미래 Big Questions’]
<5> 대도시의 미래는?

                                                                     피터르 브뤼헬, ‘바벨탑’(1563)

왜 같은 그림을 세 번이나 그린 걸까?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헬은 창세기에 소계 된 ‘바벨탑’ 이야기를 세 가지의 유화를 통해 그려본다. 로마에서 그린 첫 번째 작품은 불행히도 남아있지 않지만, 나머지 버전들은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과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브뤼헬의 바벨탑. 개인적으로 로테르담 버전을 더 선호한다. 신의 노여움이 그렇게도 두려웠던 걸까?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폐허에 가까운 모습인 비엔나 바벨탑. 그렇게 멋진 탑을 왜 돌산 위에 짓는 걸까? 나약한 인간은 결국 자연과 신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패배주의적 메시지이지 않을까? 반대로 로테르담 버전은 자부심이 넘친다. 자연의 도움도, 신의 호의도 없이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로테르담의 바벨탑. 질투심 많기로 유명한 야훼신만 아니었더라면 바벨탑은 여전히 이라크 사막 한가운데 꼿꼿이 서있지 않을까?

기원전 3300년 세운 우룩, 인류 첫 대도시

물론 바벨탑은 신의 노여움 덕분에 무너지지 않았다. 햇빛에 말린 찰흙 벽돌로 지었기에, 비와 홍수에 치명적으로 약했던 메사포타미아 건물들. 기원전 18세기부터 내려온 아트라하지스(Atrahasis)의 대홍수 전설과 길가메시 신화에 등장하는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 이야기. 물론 창세기 노아의 방주에서도 보여주듯, 메소포타미아에서의 홍수는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했기에 허물어진 신전과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도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였을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노력은 추후 바벨탑의 모델이 될, ‘지구라트(Ziggurat)’가 필요로 했다. 찰흙 벽돌로 수십 미터 높이 쌓아 올린 지구라트 성탑. 음식을 먹고, 목욕하고, 잠을 자고, 사랑을 나누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신들이 지구라트 맨 위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신은 상징적이지도, 추상적이지도 아닌, 그들과 함께, 같은 도시에 사는 존재들이었다. 지구라트는 신들의 집이고, 도시는 인간의 집이었기에 홍수와 폭우로 파괴된, 흙덩어리가 되어버린 지구라트를 바라보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세상과 도시의 종말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3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 반도를 떠돌던 호모 사피엔스. 농사의 비밀을 이해한 신석기 시대 인류는 드디어 한곳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길에서 태어나 사랑을 나누고, 길에서 죽어 길가에 버려지던 인간은 드디어 한곳에 정착해 씨를 뿌리고, 양과 염소를 키우기 시작한다. 경험을 통해 뇌의 연결고리들이 완성되는 ‘결정적 시기’를 이제 같은 곳에서 보내기 시작하며 ‘고향’이라는 새로운 인지적 바이러스가 우리 뇌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익숙한 사람과 소리와 냄새. 뇌를 완성한 그것들로 가득한 고향에서 우리는 엄마의 품 같은 편안함과 안심을 느낀다.

괴베클리 테페(기원전 1만년), 예리코(기원전 9000년), 차탈회위크(기원전 7000년)… 중동지역의 인류 첫 도시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시는 아직 아니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신들만을 위한 도시였고, 예리코와 차탈회위크에 살던 이들에게 도시란 도적과 야생동물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자연에서 동물을 키우고 농사를 짓던 그들에게 도시란 자연과 독립된 장소가 아닌, 자연을 통해서만 생존 가능한 인간을 위한 휴식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명의 바람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을 타고 서서히 남쪽으로 흘러갔고, 남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은 인류 첫 대도시, 그러니까 메트로폴리스를 건립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을 ‘검정 머리 인간(ug-sag-gig-ga)’이라고 표현했던 수메르인들. 특히 기원전 3300년 설립됐다는 우룩은 진정한 인류 첫 대도시, 메트로폴리스였다. 프리츠 랑 감독의 1927년 SF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바벨탑을 능가하는 초고층 빌딩과 건물, 도로와 비행기들로 표현된 대도시의 핵심은 ‘자연과의 단절’이다. 우룩 이전 도시에서의 삶은 대부분 자연의 연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룩은 달랐다. 자체 생존이 불가능했던 우룩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먼 곳에서 생산된 곡식을 수입하고, 우룩에서 생산된 사치품과 도자기를 수출하는 상인들이 나타난다. 무역 내용을 관리하기 위해 글과 수학이 발명되고, 회계 장부에서 시작된 글은 문학과 철학과 과학을 가능하게 한다. 대도시의 등장은 드디어 자연과 분리된, ‘현대 인간’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① 보리스 이오판, ‘소비에트 궁전’(1937) ② 알버트 스페어, ‘민족 전당’(1938) ③ 프리츠 랑 감독, ‘메트로폴리스’(1927)

대도시의 탄생과 함께 자연으로부터 주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한 인류였지만 동시에 인간은 도시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다. 도시의 인프라와 무역 네트워크 없이 생존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던 신석기시대 마을과는 달리,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도시인에게 도시 바깥은 죽음과도 같았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는 삶 자체를 잃었다.

20세기 초 대도시에서의 인간은 이제 아무 권한도, 정체성도 없는, 단지 대도시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가 된다. 오스트리아 작가 로버트 무질(Robert Musil)의 1930년 작품 ‘특징 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에서 주인공이야말로 아무 특징도, 색깔도 없는, 그렇기에 어디에나 어울리면서도 언제나 외롭고 불안한 자아를 가진 호모 메트로폴리투스, 대도시의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힘없는 개인을 대신한 민족과 인종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아의 두려움을 해소해주겠다며 20세기 전체주의 사상들이 등장했다. 보리스 이오판이 1937년 소련 공산당을 위해 설계한 ‘소비에트 궁전’과 나치의 세계 정복 기념을 위해 준비했던 알버트 스페어의 ‘민족전당’. 대리석과 철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새로운 바벨탑에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의 집권을 시작으로 “혁명이 혁명의 아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준 대도시가 이제 거꾸로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대도시인에게 도시 바깥은 죽음 같은 곳

대도시의 미래는 무엇인가? 더 높고 더 거대한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일까? 아니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24시간 감시 아래 ‘안전’과 ‘행복’을 보장받는, 올더스 헉슬리 스타일의 ‘멋진 신세계’일까? 아니면 마치 암세포같이 끝없이 확장해 도시와 자연, 시골과 도시의 차이가 무의미해진, 스타워즈 은하제국의 수도 행성 ‘코러산트(Coruscant)’와 같이 지구 전체가 하나의 대도시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대도시의 미래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로 무장한 미래 인류는 물질과 원자로 만든 도시가 아닌 정보와 비트로 구성된 가상의 대도시를 선호할 수도 있다.

현실의 도시에서는 개미보다도 못한 무의미한 존재지만, 가상의 도시에서는 누구나 황제이며 신이며 절대 존재일 수 있으니 말이다. 털 없는 원숭이로 지구에 등장해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문명을 만들었지만, 이젠 자신을 해방해준 대도시에서 숨 막혀가는 호모 사피엔스는 - 적어도 가상의 현실에서나마 - 다시 털 없는 원숭이로 돌아가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