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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어진(御眞)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0. 12. 12:55

[뉴스 속의 한국사]

초상화로 진짜 얼굴 알 수 있는 조선 임금은 4명뿐이죠

입력 : 2023.10.1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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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어진(御眞)

 전북 전주 어진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국보 조선 태조 어진. /문화재청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봉안 의례 재현 행사가 지난 7일 전북 전주에서 열렸어요. '어진'은 임금의 초상화를 말하고, '봉안'은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에요. 어진은 진전(眞殿)이라는 건물을 지어 소중하게 모시고 제사도 지냈는데, 이 진전 중 하나가 전주에 있는 경기전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진이 낡으면 똑같이 베껴 그리고 옛 그림은 불태웠어요. 이번 행사는 새로 그리기 위해 어진을 한양으로 옮겼다가 다시 전주 경기전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재현한 것입니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작업한 명품 중 명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태조 어진은 조선 왕의 유일한 전신상

 
국보로 지정한 조선 태조의 초상화는 지금 전주의 어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제작했다는 태조 어진 26점 가운데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어진입니다. 조선 말인 1872년 제작한 것이지만, 충실하게 옛 그림을 베껴냈기 때문에 원래 초상화를 그렸던 조선 초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요.

 
그림 속 태조 이성계는 임금의 복장인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채 위엄 있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죠. 무인(武人) 출신다운 기개가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적절한 음영을 넣어 얼굴이 살아 있는 듯한데, 옆으로 늘어진 귓불은 넉넉한 풍모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눈썹 위에 난 작은 혹까지도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조선 임금의 어진 중에서 전신상(全身像)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 초상화가 유일하기 때문에 더욱 큰 가치를 지닙니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임금은 모두 27명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임금의 어진 중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태조, 영조, 철종, 고종, 순종의 초상화뿐입니다. 이 다섯 임금이 아닌 다른 왕의 초상화는 대부분 1950년대 이후 상상력을 가미해 그린 것입니다.

 
부산 용두산 화재와 어진의 비극

 
조선 전기의 어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많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태조와 세조 어진은 보존됐습니다. 1921년 이왕직(李王職·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의 일을 맡아 하던 관청)은 창덕궁에 신(新)선원전을 만들고 여러 궁궐에 흩어져 있던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아 봉안했죠.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어진들은 다른 옛 황실 유물 4000여 점과 함께 임시 수도 부산으로 옮겨졌습니다. 용두산 근처에 있던 관재청 창고였죠. 1953년 휴전 이후에도 계속 그곳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54년 12월 26일 용두산에 큰 화재가 일어나 불길이 창고로 옮겨붙었고, 3500점이 넘는 유물이 불타버렸습니다. 그렇게 소실된 유물 중에는 세조, 숙종, 정조, 순조, 헌종의 어진도 있었습니다. 일제와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어진들이 한순간에 어처구니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정조 어진 원본은 조선 시대 대표적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놀라운 것은 화재 전 사진 촬영해 놓은 어진조차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왕들의 실제 모습이 어땠는지 우리는 영영 알 길이 없게 돼 버린 셈입니다.

 
살아남은 영조와 철종의 초상화

 
간신히 화마를 피한 몇 점의 어진은 그 가치가 더욱 커지게 됐습니다. 영조의 어진은 임금일 때 익선관을 쓴 상반신 초상화와 임금이 되기 전 연잉군 시절 초상화까지 다행히 2점이 살아남았습니다. 익선관을 쓴 어진은 보물로 지정해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데, 51세 영조 임금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터럭 하나라도 같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조선 시대 초상화의 정신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전에 드라마 '이산'에서 영조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이순재씨와 상당히 닮은 얼굴입니다.

 
철종 어진은 그림 왼쪽 부분과 얼굴의 입 주변이 불타 버렸지만,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는 남았습니다. 군복을 입은 조선 임금의 유일한 초상화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군복의 화려한 채색에서 당시 화가들의 필력을 엿볼 수 있기도 하죠.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세조의 얼굴'

 
그런데 2016년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어요. 세조의 어진은 불타 버렸지만, 1935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왕실의 주문을 받아 옛 어진을 베껴 그릴 때 만들었던 어진의 초본이 경매에 나온 것이죠. 다시 말해 세조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된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왕이 되는 과정에서 숱한 혈육과 신하들을 죽인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박해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죠.

 
'수양대군 시절 젊었을 때 초상화가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분명히 초상화 속 인물은 곤룡포를 입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수염이 거의 없는데, 이것은 김은호 화백의 생전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이 작품은 국립고궁박물관이 낙찰을 받았고, 아쉬운 대로 어진 복원 작업도 가능해졌습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두 임금인 고종과 순종의 어진도 현재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진 말고도 사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임금의 얼굴을 잘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오직 초상화나 초상화의 초본을 통해서 그 얼굴을 알 수 있는 조선 시대의 임금은 태조(1대), 세조(7대), 영조(21대), 철종(25대) 등 네 명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 문화재가 훼손됐던 경험을 거울삼아 남은 문화재를 더 잘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하겠죠. 그런데 아뿔싸, 전주에 있는 태조 어진은 2005년 무려 40㎝가 찢어져 얼굴의 귀와 입 부분이 크게 훼손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본지 2005년 9월 23일 자 A9면〉 물의를 빚었어요. 관리 소홀로 인한 참사였습니다. 복원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것이죠. 생각보다 많은 경우, 훼손된 문화재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2018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조선 7대 임금 세조 어진 초본. /뉴스1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조선 21대 임금 영조 어진. /문화재청
 25대 임금 철종 어진(왼쪽 부분 불에 탔음). /문화재청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