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산업화의 상징 58년 개띠]
시비 거는 노인, 백안시하는 청춘…세대갈등 최전선 된 지하철 1호선
SPECIAL REPORT
지난 6일 오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노인들이 개찰구를 향해 걷고 있다. [연합뉴스]
“지하철 무임수송에 대한 기획재정부 지원이 이뤄지면 대중교통 요금 인상 폭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기재부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야 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연초부터 지하철 무임승차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에 지하철 이용 요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제도다. 노인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된 데다 대상자 중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아 사실상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공방이 시작된 셈이다. 지하철 이용자가 가장 많은 서울만 봐도 2021년 무임승차자 2억2469만명 중 1억8702만명(83.2%)이 노인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노인 인구는 급격히 더 많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만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17.6%. 올해는 1세대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생)의 대표격인 ‘58년 개띠’가 만 65세를 넘기며 노인 인구에 접어든다. 다가오는 2025년에는 노인의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1세대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인 인구에 합류하며 기존 복지 제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당장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 지를 두고 서울시와 기획재정부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서울시는 정부가, 기재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은 지자체의 몫이었다. 서울교통공사의 2021년 영업손실 9385억원 중 24.6%(2311억원)가 노인 무임비용이다. 이 수치도 코로나19로 적자가 커지며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2019년에는 무려 영업손실 5324억원 중 57.3%(3049억원)가 노인 무임비용이었다.
이런 이유로 여야가 합의해 지난 11월 국회 교통위원회에서 PSO(공익서비스에 따른 손실 보전) 예산을 3979억원에서 7564억원으로 증액해 의결했다. 그간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2조에 근거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만 지원하던 무임승차 손실을 지자체에도 보상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기재부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에서 무산돼 원안 3979억원만 통과됐다. 서울시가 최근 대중교통 요금 인상 추진에 나선 배경이다.
기재부는 “지하철은 자치사무”라며 선을 그었지만 무임승차 제도가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확립된 만큼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무임승차는 법률에 의한 국가 정책”이라며 “원인 제공자인 국가가 손실 보상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비 지원의 사회적 효과를 검증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
실제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사회적인 편익은 적지 않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로 인한 여가 활동 증가, 고령자 경제활동 증가, 의료비 절감, 교통사고 발생 억제, 우울증 및 자살 감소 등의 사회적 편익은 2014년 기준 3361억원이다. 2020년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환산한 편익은 3650억원(서울연구원)에 달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은 세대 갈등으로도 번지고 있다. 특히 1974년 개통해 오래된 데다 노인 이용률이 높은 역이 많은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세대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호선으로 꼽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이용객이 1만명 이상인 수도권 지하철역 중에서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소요산역(55%), 제기동역(54.6%), 동묘앞역(52.2%) 순이었다. 그 밖에도 신설동역(45.1%·5위), 청량리역(43.9%·7위), 도봉산역(43%·8위) 등 10위 내 1호선역만 6개다.
해당 역을 주로 이용하는 젊은 세대의 노인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청량리에 거주하는 최현석(27)씨는 “분위기도 안 좋고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서 지하철 이용이 꺼려진다”며 “젊은 놈이 왜 앉아있느냐며 양보를 강요하는 노인분들도 있어 그냥 서서 간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의 한 대학교 재학생 김정현(26)씨는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거나 무임승차 횟수를 제한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직장인 이기원(31)씨는 “1호선에는 노인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지하철 빌런’ 비중이 가장 많은 것 같다”며 “일주일에 1~2번은 괜한 시비를 거는 분들을 만난다”고 토로했다. 온라인에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1호선’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반면 기성 세대는 “내가 젊어서 낸 세금으로 건설한 지하철인데 나이 들어 혜택을 보는 것도 문제냐”(60대 이모씨), “태어날 때부터 지하철을 이용하며 자란 요즘 젊은이가 허허벌판에서 하나 하나 지하철을 만든 우리를 백안시하는 것이 서럽다”(70대 한모씨)는 반응이다. 시대에 맞게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연금 수령, 퇴직 연령 등 많은 문제가 걸려 있어 쉽지 않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노인 인구로 편입되며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면서도 “이분들에게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혜인·원동욱 기자 yun.hyein@joonga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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