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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25] 길을 묻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21. 14:10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5] 길을 묻다

입력 2022.06.10. 03:00
 
 
 
 
 
 
                                                          주황, Departure #4407 Indonesia, 2016

 

나의 스무 살 소원은 마흔 살 되는 거였다. 그냥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을 텐데, 그런 허무한 소원이 대체 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나의 소원은 예순 살 되는 거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는 현재에 붙들린 나의 불완전함에 대한 반성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된 나에 대한 바람이다.

 

미래를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알 수 없으니 궁금하지도 않으면 좋으련만, 살다 보면 절실하게 내일이 궁금해지는 순간도 있다. 과학과 이성, 자유와 경쟁이 존중받는 시대에 신자유주의 세계에 살면서, 미래에 대한 책임과 부담은 각자의 몫이다. 타인에게 나의 길을 물을 수 없는 시간을 고스란히 떠안고, 우리는 매일 미지의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난다.

 

주황 작가의 ‘디파쳐(Departure)’ 연작은 공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청년기 동안 20년 넘게 미국에 거주하면서 동양인과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귀국 후 한국의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해외로 뛰쳐나가는 세태를 목격하고 이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공항에서 바쁘게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즉석 섭외해서 횡단보도 건너편에 세워 두고 촬영한 작품 속에서, 각자의 이유와 방식으로 떠남을 감행하는 사람의 모습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공항은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는 행위를 통해 극적인 물리적 이탈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이다. 하늘은 뿌옇게 열려 있고 주인공은 자신의 소지품을 단단히 챙긴 채로 바짝 서있다. 긴장한 듯 무표정한 얼굴은 익숙함을 벗어나서 새로운 일상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짐작하게 한다. 여행, 이민, 친지 방문 등 입국 서류에 쓰는 사유만으로 그들의 출발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떠남’은 그 자체로 길을 묻는 과정이며, 고뇌와 선택으로 지나온 시간과 설렘과 걱정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사진은 찰나만을 보여주지만, 무수히 많은 시간의 교차점을 감지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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