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노원의 장소성과 문화의식의 확장
나호열 시인 ·도봉학연구소장
지역학이라는 낯설고, 이 시대의 문화 발전의 화두로 자리 잡은 용어에 대해 김태우 교수는 ‘지역주민의 장소에 대한 시대적 거리감과 단절감을 극복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속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명료하게 정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여러 차례의 정치적 혼란을 거쳐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새롭게 출발하면서 중앙 /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지역’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각 지방정부는 일정부분의 재정적 독립을 꾀할 수밖에 없었고, 선출직 지방 정부의 수장은 주민들에게 외형적 성과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문예회관, 기념관, 공연장을 비롯한 지역의 문화유산의 정비, 축제 등을 통하여 향토의식을 함양하고 재정의 안정을 꾀하는 노력을 경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오늘날과 같은 급격한 도시화, 노마드Nomad의 추세와 맞물려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 계승, 교육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지역주민의 정체성을 드높이고 정주화 定住化 하는 방편으로 학제간의 경계를 넘어서서 협동, 협업을 통한 아카이브 작업과 콘텐츠 개발이라는 영역으로 넘어가게 하는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노원구 문화유산의 현황과 노원지역학의 과제』는 이러한 과제에 대하여 노원구(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각종 문화재를 분석하고, 그러한 문화유산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민의 문화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문화유산들의 재맥락화를 이푸 투안의 주장으로 설명히고 있다. “무차별적인 공간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장소가 된다”. 즉, 결국 ‘추상적인 공간’이 인간의 경험에 의해 의미를 조직할 때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고 보았다. 두 번째로 이 논문은 전통적 문화유산의 재조명 작업과 병행해서 미래유산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노원의 농경문화의 유산인 ‘마들농요’. ‘한글 영비’에 대한 전승, 활용과 더불어 무차별하게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효용에 근거한 도시화에 맞서는, 한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미래유산을 발굴하고 아카이빙을 통해서 독특한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철거민 수용을 위해 건축한 연립주택, 오래된 이발소, 석유집, 연탄가게, 재래시장 등의 유형의 자산과 수락산, 불암산 자락에 자리잡은 산 제사 등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수할 수 있을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 번째로 그동안 관심 밖에 놓여 있던 ‘노원역 터’의 행방과 무형문화재의 소멸에 대한 논의는 노원의 지역학 연구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아야할 문제로 생각된다.
『노원구 문화유산의 현황과 노원지역학의 과제』는 노원지역(구)에 산재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점검하고 이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넘어서 오늘의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 이 논문에서 적시한 미래유산의 보존과 콘텐츠로 만드는 데 거쳐야할 예산의 확보, 주민과의 갈등해소, 그리고 문화와 교육에 관련된 유관기관과의 협치를 어떻게 원만하게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노원의 문화는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지역학의 확장은 이제 멈출 수 없는 지방 분권의 핵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난관은 지역의 문화 창달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주체가 어느 기관이 되어야 하는지, 이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의 충원이 어떻게 확보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경쟁하는 각 기관과의 적절한 협치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