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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피면 만나서 이 술을 마셨으리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1. 3. 15:18

연꽃이 피면 만나서 이 술을 마셨으리라

[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밤은 부드러워, 마셔] 정약용의 술

입력 2022.09.03 03:00
 
 
 
 
 

한여름 참외가 익을 때 만난다. 서늘한 바람이 나면 연꽃을 보러 서지에서 만난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만났다는 조선 시대 사람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참외라니… 연꽃이라니… 참외에 대해서도, 연꽃에 대해서도 별다른 생각을 가져 보지 못했던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참외와 연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외가 익을 때, 또 서늘한 바람이 불 때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굴까라고도. 과일이 나거나 꽃이 피는 계절의 그 시기, 절기에 함께 술을 먹고 싶은 사람 말이다. 여름엔 여름의 술을, 초가을엔 초가을의 술을 마실.

겸재 정선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염계상련'의 일부. 중국 북송 유학자 주돈이가 정자에 홀로 앉아 연꽃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정약용도 그림 속 주돈이처럼 앉아 연꽃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문화재청

 

나는 이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만한 프로그램은 내가 알기로 딱 한 군데다. ‘노래의 날개 위에’. 그래서 ‘노래의 날개 위에’를 좋아한다. 운전을 할 때 ‘노래의 날개 위에’가 나오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치를 따져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운전할 때만 라디오를 듣는다. 나는 오후에, 그리고 러시아워를 피해 운전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노래의 날개 위에’는 네 시에 시작하고, 나는 거의 93.1만 듣기 때문이다. 저녁 약속이 다섯 시라도 네 시에 움직이고, 여섯 시라도 네 시에 출발한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있거나 잡지를 보거나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그런다.

 

차가 별로 없는 도로 위에는 나 혼자 있다. 차에서는 귀를 쫑긋하게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노래의 날개 위에’를 듣고 있으면 나는 날개를 달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 프로에서 틀어주는 곡도 곡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날의 오프닝이다. 음악가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나 관점을 비틀어 들려주는 이야기, 절기에 대한 이야기 들이 나오는데 마음이 자주 울렁거린다. 그런 사람이 나만일 것 같지는 않고,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누군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고.

 

이 조선 시대 사람은 정약용이다. 뛰어났으나 불운했던 문신(文臣)으로, 시인이라고 하는 게 과하지 않을 만큼 글도 잘 썼던 사람으로, 그 시절 드물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던 남자라는 정도로 그를 알던 나는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그 글은 ‘죽란시사첩’의 서문에 있었다.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시대, 이 나라에 지금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몰랐을 수도 있다. 거리가 너무 멀어도, 한쪽이 너무 못 되거나 한쪽이 너무 잘 되어도, 취향이 달라도 함께 어울리고 놀지 못한다. 이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이유인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끼리 이 책을 만든다. 여기까지 읽다가 아득해졌다. 내가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이유가, 어쩌다 얻은 몇 안 되는 친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한 이유가 모두 이 글에 있었다. 친구란 흔한 말이지만 만들기는 정말 어렵고, 그래서 친구라는 말처럼 귀한 말도 없다는 걸 생각하게 되는 글 아닌가.

 

왜 죽란시사첩인가 하면, 정약용이 지은 이 모임의 이름이 죽란시사라서다. 죽란시사인 이유는 정약용의 집에서 자주 모였는데 그의 집에 대나무로 만든 담장, 죽란(竹欄)이 있었다. 당시(1796년 무렵) 정약용의 집은 명례방(지금의 명동과 충무로 일대)에 있던 번화가라서 수레바퀴와 말발굽 소리로 시끄러웠다고 한다. 집 뜰에 꽃과 과실 나무를 심고, 오가는 사람들이 꽃을 건드리지 않도록 대나무를 울타리 삼아 심었다. 퇴청한 후 대나무 울타리를 거닐며 쉬었다. 혼자 달을 보며 시를 짓기고 하며 담 밖의 소란을 잊으려 했다. 여기에 마음이 맞는 몇 사람이 와서 함께 마셨고, 이들이 ‘죽란시사(竹欄詩社)라며 정약용은 글로 남기기도 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찾아보니 이러했다.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서늘한 바람이 나면 서지에서 연꽃을 보러 모이고, 국화가 피면 모이고, 큰 눈이 내리면 모이고, 화분의 매화가 꽃을 터뜨리면 모인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차려 놓고 술 마시며 시 짓는 데 이바지한다.” 꽃과 술과 안주와 붓과 벼루라니… 아아. 내가 본 어느 문장보다도 아름다운 이 문장을 나는 여러 번 읽었다. 이런 게 풍류지하면서.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는 게 풍류고, 이게 세상 제일가는 사치지라면서.

또 혼자 보는 꽃처럼 혼자 마시는 술도 좋지만, 함께 보는 꽃처럼 함께 마시는 술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누가 독서 모임인지 공부 모임인지 한다고 하면 뭘 읽을지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 이들이 모여서 읽었던 책은 궁금하다. 나누었던 이야기, 지었던 시, 그리고 마셨던 술들이 궁금하다. 그들의 리스트가 말이다.

다 알지는 못해도 술 중에 하심주(荷心酒)가 있던 건 분명하다. 연을 통과시켜 마시는 술. 하심주는 연잎 줄기 속으로 흘러나오게 해서 마시는 술이다. 연잎에 술을 담아두고 연잎 줄기에 구멍을 내서 연잎에 담겨 있던 술이 줄기를 타고 내려온다. 쪼르르. 얼마나 시원하고 맑은 맛이었을지. 아마 물방울이 연잎을 따라 구르는 걸 보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이 커다란 잎을 술잔으로 쓰면 좋을 거라고.

연잎은 발수성이라 조금만 흔들거려도 물방울이 죄다 흘러내린다. 이게 바로 진흙 속에서 자라도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의 비밀이라 들은 적이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 꽃을 피우지만 끝내 진흙은 묻히지 않는다. 이런 연꽃의 생리가 좋아서 죽란시사들은 연잎에 술을 마셨을 것이다. 우리는 더러워지지 말자. 더러움이 묻겠지만 연잎처럼 털어버리자.

 

이제, 서지(西池)에 대해 말할 차례다. 조선 시대 한양의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밖에 연못이 있었고, 연못이니 연꽃이 있었다. 동지, 서지, 남지로 불렀다. 어느 연못의 연꽃이 잘 되었느냐로 동인, 서인, 남인의 우세를 가늠했다. 남지의 연못이 성하면 남인들이 득세할 거로 생각해 집권하는 파가 연못을 파 없앴다고도 한다. 정약용과 친구들은 서대문 밖의 연못인 서지에서 연꽃을 보았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정약용은 서인이었냐? 아니, 남인이었다. 남인인데 서쪽의 연못에 핀 연꽃을 보러 갔다. 여기서 하심주를 마셨다. 어디에서? 배 위에서다. 연못에 배를 띄우고 동트기 이른 새벽에 연꽃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는 게 아니라 터지는 거다. 연꽃은 피울 때 퍽! 퍽! 소리를 낸다고. 그도 그럴 것이 연꽃은 크기도 하고, 한번 피면 삼사일 동안 개화가 지속된다고 한다. 옹골차게 벼르면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다가 때가 되면 화려하게 터뜨렸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술을 안 할 수 있을 리가. 새벽이지만, 새벽인데도 말이다.

 

처음으로 술을 마시면서 쓰지 않은 ‘밤은 부드러워, 마셔’였다. 하심주는 상상 속의 술 같고 너무 귀해서 도무지 마실 수가 없어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찬비 내리는 날이었다. 빗방울을 통통 튕겨내고 있을 연잎들을 생각하며 썼다. 오늘밤의 연잎들은 더 부드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