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단청의 그 색, 돌 깨뜨려 시간으로 갈아 만들었죠
중앙일보
입력 2021.10.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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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전통단청 시범사업으로 보수작업을 마친 전북 전주 경기전 실록각. [사진 김현승]
“이렇게 진한 색을 내려면 칠하고 말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진짜 잘 나왔어요”
최근 새단장을 한 강원 동해 삼화사 무문전의 단청 사진을 보여주며 가일전통안료 김현승(58)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색색의 단청에 칠해진 안료는 그가 만든 것이다. 삼화사는 문화재청이 2019년 시작한 ‘전통단청 시범사업’ 대상 중 한 곳이다. 문화재의 단청을 보수할 때 전통 안료와 아교를 사용하도록 한 사업이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삼일문, 가평 현등사 등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2008년부터 전통 석채(石彩)를 만들어왔다. ‘석채’는 ‘돌로 만든 색’이라는 뜻으로, 전통 단청과 불화(佛畵) 등에 쓰이는 전통 안료다. 그림을 그리거나 단청에 칠할 때는 아교에 개어 쓴다.
최근 찾아간 경기도 양평 작업장에선 ‘석청’ 제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장 수요가 많은 색 중 하나다. 주먹만한 파르스름한 돌을 작두와 정으로 깨고, 돋보기를 놓고 하나하나 골라낸다. 골라낸 조각 중 색이 진한 것은 물과 함께 맷돌에 갈면서 색을 내는 부분 이외의 불순물을 시커먼 땟물과 함께 나오게 한다. 갈아낸 가루는 물에 담가 여러 차례 옮기면서 입자의 크기와 비중에 따라 분류한다. 이른바 수비(水飛) 과정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색이 석청(푸른색), 석록(녹색), 뇌록(암녹색), 경면주사(붉은색), 자황(노란색) 등이다.
석청 가루 푼 물(오른쪽 위 대야)을 아래쪽 네 접시에 차례로 옮겨담아가며 접시에 남는 돌가루를 모으면 한 가지 색이 된다. 가장 처음 물을 따르는 오른쪽 접시에는 가장 빨리 가라 앉는 무거운 입자들, 왼쪽으로 갈수록 천천히 가라앉는 다소 가벼운 입자들이 모인다. 굵은 입자가 색도 진한 탓에, 사진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옅은 푸른색을 띤다. [사진 김현승]
석채는 돌가루의 입자가 클수록 진한 색, 작을수록 연한 색을 띤다. 김 대표는 수비를 “5㎛~100㎛ 크기의 입자들을 물에 한꺼번에 푼 뒤, 무거운 입자가 먼저 가라앉는 원리를 이용해서 큰 입자부터 먼저 뽑아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두 달여의 수비 과정을 거쳐 10단계 색의 석채로 분류해낸다.
석채는 대량으로 값싸게 만들기 어렵다. 돌을 깨고 고르는 일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하고, 이후는 오롯이 시간과 물을 들이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작업이기 때문. 가장 비싼 석채는 하늘색과 보라색이 섞인 색을 내는 청금석 가루로, 1g에 7000원을 호가한다. 원석 구하기도 까다롭다. 조선시대처럼 대부분의 원석은 중국·일본 등에서 수입해오는데, 김 대표는 원석 수급이 끊길까 봐 창고에 대량으로 쌓아뒀다. 국내에 묻혀있는 광물은 포항 지역에서 일부 나오는 뇌록석 정도다. 김 대표는 “물감 만드는 회사들도 석채를 만들려고 검토하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관둔 거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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