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읽는 밤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은
진화론의 지루한 서문이다
무정란의 하루가 거듭될수록
저 커다란 눈물 한 덩이의 기나긴 내력을
통째로 삶거나 짓이기고 싶은
약탈의 가여움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비상을 포기한 삶은 안락을 열망한 실수
사막으로 쫓겨온 낙타 아버지와
초원을 무작정 달리는 어머니 말
그렇게 믿어왔던 맹목의 날들이
닭대가리의 조롱으로 메아리 친다
다시 나를 저 야생의 숲으로 보내다오
삵에게 쫒기며 도망치다 보면
날개에 힘이 붙고
휘리릭 창공을 박차 올라
매의 발톱에 잡히지 않으려는 수 만년이 지나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
새가 되리라
진화론의 서문이 너무 길어
달걀을 깨버리는
이 무심한 밤
두레문학 2020년 여름호
엄블레라 2021 창간호 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