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천루의 효시… 새 얼굴로 돌아온 삼일빌딩
김중업이 설계한 ‘서울 근대화의 상징’ 50년 만에 리모델링한 건축가 최욱
입력 2021.04.29 03:00 | 수정 2021.04.29 03:00
리모델링을 마친 삼일빌딩을 청계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 모든 층의 조명이 가지런하고 질서정연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세입자나 사용자가 바뀌어도 건물이 인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이다. /사진가 장미
청계천변 삼일빌딩의 새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63빌딩 이전에 한국 최고층 빌딩이었고, 근대화된 서울의 상징이었던 이 빌딩을 새 단장하는 작업이 매우 세심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금 삼일빌딩을 바라보면 콕 집어 말하긴 어려워도 어딘가 세련되고 또렷해진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지난해 11월 마무리된 리모델링은 치밀한 디테일(세부 요소)이 확고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림건축과 함께 리모델링을 맡은 최욱(58)은 학고재 갤러리, 현대카드 여의도 본사 3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다. 27일 만난 그는 “김중업 선생님의 원래 설계를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 건물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작업의 방향이었다”면서 “한국 대표 건축가 중 한 분인 만큼 부담도 컸다”고 말했다.
삼일빌딩은 김중업이 뉴욕 시그램 빌딩의 영향을 받아 설계했다고 알려져 있다. 시그램 빌딩은 근대건축 거장 미스 반 데어로에의 대표작이다. 이 빌딩처럼 삼일빌딩도 1970년 완공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던 유리 외벽(커튼월) 방식으로 지었다. 이 공법은 유리를 고정하는 철제 뼈대가 외부에 드러나며 건물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이번에 김중업이 설정한 비례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더 정교한 재료로 교체했다. “당시엔 일본에서 나온 기성품을 사서 썼어요. 마감이 조금 동글동글했는데 이번에 더 날렵한 것으로 바꾸면서 건물이 더 섬세하고 단단해 보이게 됐죠.”
과거의 삼일빌딩은 여러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우선 1969년 3월 개통된 삼일고가도로가 건물 정면의 저층부를 가로막았다. 건물 입장에선 얼굴이 가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도 삼일빌딩이 입구 주변 풍경보다는 주로 자동차에서 내다본 모습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이후 삼일고가는 철거됐고 복원된 청계천 일대는 활기찬 거리가 됐다. 이런 변화에 맞춰 저층부 설계에 공을 들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거리에서 들여다보이는 로비 2층 천장 전체가 조명처럼 환하게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최욱은 “저층부를 밝게 해서 주변 거리를 활성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건물 높이는 정해져 있는데 이름처럼 31층으로 하려다 보니 층고가 낮아져 실내가 답답했던 점도 문제였다. 이는 실내 천장 일부를 트고 배선 등이 들어가는 바닥 높이를 통상 20~30㎝에서 5㎝까지 낮춰 해결했다.
건축물의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장치는 조명이다. 청계천에서 바라보면 모든 층의 천장에서 조명의 끝부분이 질서정연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반복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명의 위치를 면밀하게 계산한 결과이자 건물의 앞날을 감안한 디자인이다. “이 빌딩의 파사드(전면부)가 가진 견고함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견고한 원칙이 있으면 건물에 앞으로 누가 들어오더라도 지켜질 테니까요. 그래서 조명과 정면의 이미지에 신경을 썼죠.”
삼일대로와 청계천로가 만나는 곳에 삼일빌딩이 있다. 삼일대로는 일제강점기 화재나 공습에 대비한 소개(疏開) 도로로 조성됐다. 청계천로는 산업화 시대 복개(覆蓋)되면서 서울의 새로운 중심가로 떠올랐다. 삼일빌딩이 근대화 이후 서울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답답하게 가로막았던 고가도로가 사라지고 이제 삼일빌딩은 새로운 얼굴로 거리와 마주하게 됐다. 50년 만에 완성됐다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