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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벤처 도시 시리아 팔미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6. 7. 21:02

 고대의 벤처 도시 시리아 팔미라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 제429호 | 20150531 입력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33세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마케도니아 국왕, 이집트 파라오, 페르시아 국왕에 자신이 만든 아시아 국왕까지 겸했다. 아무도 젊은 국왕의 유고를 예견하지 못했으며, 자식도 없었다. 왕비인 중앙아시아 박트리아 공주 록산나가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를 임신하고 있었을 뿐이다. 임종 자리에서 후계자를 묻는 질문에 알렉산드로스는 말했다. “가장 강한 사람에게.”

모호한 발언은 ‘디아도코이(계승자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의 필사적인 경쟁을 불렀다. 부하 장군인 안티고노스·카산드로스·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리사마코스는 왕위를 놓고 40년에 걸쳐 싸웠다. ‘서양판 삼국지’로 부를 만한 ‘디아도코이의 전쟁(기원전 322~기원전 275)’이다. 영웅담에 합종·연횡·배신 등 희비극적 요소를 두루 갖춘 서사극의 시대였다. 결국 본토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던 최강자 안티고노스를 제거한 나머지 4명의 디아도코이가 마케도니아·이집트·시리아·트라케(발칸 동남부와 소아시아 반도 서부)로 나누어 각자 제국을 이뤘다.

그중 셀레우코스 제국(기원전 312~기원전 63)은 지금의 시리아를 중심으로 이라크, 이란, 터키 동부, 아르메니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에 파키스탄 서북부까지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고대 그리스와 중동, 중앙아시아에 인도 문명까지 용광로에 녹인 ‘헬레니즘 문명 제철소’ 역할을 맡았다. 중요한 것은 제국 동부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이 박트리아인과 문화적으로 결합해 박트리아-그리스 국가와 문명을 이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북 변경주에 위치한 간다라를 지배했다. 이 지역에서 불교와 그리스 조각문화가 융합돼 나온 간다라 문명은 한국까지 전해졌다. 경주 석굴암이 그 유산의 하나다. 한국의 불교문화는 이러한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융합이자 전승일 것이다.

서로 다른 문명권이 합쳐져 셀레우코스 제국이라는 한 나라가 됐으니 교역도 활발해졌다. 타문명권에 대한 호기심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교역은 고대 세계의 벤처였고, 이는 신흥 무역도시를 만들었다. 대표주자가 시리아 한복판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다. 지리적으로 지중해권과 메소포타미아권, 북아프리카권을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팔미라는 교역으로 고대의 ‘실리콘밸리’가 됐다. 팔미라는 실크로드의 서부 중계지점이기도 했다. 나중에 로마의 일부가 됐으나 무역은 여전히 번성했다.

이 도시에는 아람인·아모리인·아랍인이 유대인, 그리스인과 함께 거주했다. 당시 공용어는 아람어였다. 공용어의 존재는 세계화의 증거다. 아람어는 당시 중동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공영어)‘였다. 유대인들도 바빌론 유수 이후 헤브루어 대신 이 언어를 모국어로 썼다. 예수도 아람어로 말했다고 한다. 멜 깁슨이 2004년 내놓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와 유대인들은 아람어로 말하고,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말한다.

경제적 번영은 수많은 기념비적인 건축으로 이어졌다. 팔미라 유적은 그리스·로마 양식에 페르시아 양식을 합친 문화융합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개방성이 만든 고대세계의 세계화다. 그런 곳이 최근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점령됐다. 반문명적인 반달리즘를 일삼아온 IS로부터 팔미라를 지키는 데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 팔미라는 인류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세계화 유산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