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학술회의에 참석한 가타오카 류(片岡龍·49·사진) 일본 도호쿠(東北)대학 교수는 선비정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동양사상사를 전공한 그는 일본 내 한국사상 전문가다. 숙명여대에서도 교편을 잡았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공공’ 용례의 검토」 등 한국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을 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비정신을 정의한다면.
“공공성이 강한 ‘통합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이 온몸 곳곳에 전달돼야 하듯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신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선비정신은 사회가 바람직하게 움직이는 데 필요한 ‘사회적 생명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예전에는 상류층이 주로 사회를 대변했는데 이를 보완한 것이 선비정신이다. 민중들의 의견을 상층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또 선비정신은 생명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모든 인간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퇴계 이황 선생은 선비정신을 ‘원기(元氣)가 깃들이는 장소’라고 규정했다.”
-선비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만 본 것은 아닌가.
“실례로 들어 설명하겠다.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헌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여기에만 1000여 건이 등장한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불과 40여 건 밖에 찾아볼 수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이 공공성을 많이 강조하는데 실제 역사적으로 공공성에 가장 큰 의미를 뒀던 나라는 한국이었다. 그 중심에 선비가 있다.”
-외국 학자로서 선비정신에 대한 평가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독특한 정신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윗사람을 섬기는 것에 충실하다. 또 생명을 존중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시하는 측면이 강하다. 중국의 사대부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즉, 관직에 오른 특수계층으로 이들은 대중과 격리돼 있다. 반면 한국의 선비는 관직을 갖지 못했어도 그 지위를 유지한다. 이들은 특정된 사회적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과는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대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념과 의리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 학자로서 선비를 볼 때 이들은 매우 다이나믹한 존재였다. 사회적 명분과 정의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저항적 집단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이들은 일본의 사무라이나 중국의 사대부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
-선비정신을 통해 현대인들이 배울 점은.
“선비정신을 현대에 접목시켜 좀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사회가 훨씬 효율적이며 공평하게 될 것이다. 성장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가장 중시되는 학문 중 하나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은 인격을 함양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학을 추구하더라도 선비정신을 함께 곁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사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데 선비정신이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갈등이나 사건도 선비정신으로 해결이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이다. 선비정신이 사회를 주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불합리한 사건이나 행동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이런 정신이 없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큰 혼란을 겪었다. 일본의 경우 선비와 같은 중간층이 없고 국가와 국민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대지진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한 후 국가가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 국민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처럼 선비정신은 국가적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긴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