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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성자와 청소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10. 13:11

 

성자와 청소부

 

오늘도 나는 청소를 한다

하늘을 날아가던 새들의 어지러운 발자국

어두운 생각 무거워

구름이 내려놓은 그림자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그 말씀들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로 같은 가슴에 모으기 위해

기꺼이 빗자루를 든다

 

누군가 물었다

성자가 된 청소부는 누구이며

청소부로 살다 성자된 이는 또 누구인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리라

사라졌다가 어느새 다시 돋아오르는 새싹을

그 숨결을

당신은 빗질하겠는가

아니면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들겠는가

 

『시와 산문』 2012년 봄호

 

나호열의 시는 삶의 본질이나 사물의 본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시들이 보편성이나 객관적 진술을 거부하고, 자신의 귀나 눈으로 보고 들으며 자유로운 모색과 성찰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나호열은 일찍부터 철학에 대하여 견고한 견해를 가져왔다. 이러한 깨우침의 바탕에서 상상력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주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해 준다. 삶에 대한 성찰이 풍경 속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늘도 나는 청소를 한다”. 시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도,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시의 시각을 제시히고 있다. 잠시 뒤를 돌아보게 하여, 소중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소통의 길로 인도하는 이 시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시 쓰기를 성찰적 행위로 보여준다. 이것은 세상을 바꿔보려는 상상력이 시의 전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쓰레기”를 쓸어내기 위해서 “빗자루”를 드는 것이 아니라 “화로 같은 가슴을 모으기 위해” 화자는 “빗자루”를 들었다. 이는 ‘성자’에 도달하는 길과 눈에 띄지 않는 잠재된 길을 믿는 정신의 철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철학은 일상의 열정과 종교적 감성의 갈등이다. ‘성자’와 ‘청소부’는 가난하다. 정신적이든지 물질적이든 빈곤을 사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보편적 일상과는 다른 공간의 일상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물었다”. 여기서 ‘누구’는 무의식의 상징이다. 그 무의식 속에 숨겨 있는 것은 세상의 모든 페르소나이다. 결국 살아 움직이는 몸의 말의 우리의 몸 밖 공간으로 전이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 묻지 않아도 영원히 살아 있는 페르소나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극심한 경제적, 신체적 고독과 지적 혼미속에 빠지면 세상에서 볼 수 있던 풀뿌리 저항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즐거운 삶의 욕망만 남는다. 자신의 생각을 바꿈으로서 모순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는 간결하고 단순한 시어 하나로 수 백 개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리라.” 평범한 일상을 재구성하고 시작과 끝을 구분 짓는 은유가 돋보이는 행이다. 격조 높은 향식을 갖춤으로써 진부한 삶과 새로운 삶의 등식을 구분 짓는다. “싹”과 “숨결”은 아무도 “빗질”하지 못한다. 다만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들 수 있다. 오늘의 시는 미래의 ‘싹’이며 ‘생명’이다. 풍요로운 상실의 기대에 흙투성이 현실과 고귀한 영혼 사이에서 시인은 부단히 고민하고 있다.

 

이충이, 계간 『시와 산문』 201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