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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 일대 보석처럼 빛난다, 폭염속 서울 낙원을 찾아서 [여름 달빛 산행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8. 4. 17:53




평창동 일대 보석처럼 빛난다, 폭염속 서울 낙원을 찾아서 [여름 달빛 산행①]
카드 발행 일시2025.07.17 에디터김영주


무더위와 습한 날씨 탓에 걷기가 쉽지 않은 때다. 그래도 꿋꿋이 걷는 사람들이 있다. 비 오는 날 맨발로 숲길 걷기, 해질녘 집 가까운 트레일을 걷는 이들이다. 이럴 땐 밤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야트막한 산이나 둘레길이 적당하다. 무더위를 피해 여름밤에 걷기 좋은 길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서울 근교. 야간 산행 경험자들의 추천을 받은 인왕산·남한산성·수락산을 밤에 걸었다.

글 싣는 순서

여름밤 달빛 걷기
① 인왕산, 수락산, 남한산성
② 문경 새재길 8km
③ 임실 천담~어치 8km

흐린 날의 인왕산 야간 산행   

                                                            호모 트레커스 인왕산 야경. 김영주 기자

서울 종로구 인왕산(338m)은 요즘 가장 핫한 트레일이 됐다. 주말이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고, 이중엔 외국인도 상당하다. 여름밤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 떨어진 후 인왕산 북동쪽 기차바위 아래서 산을 올려다보면 랜턴을 켜고 바윗길을 내려오는 이들이 자주 보인다.

경복궁의 진산(鎭山) 북악산(342m)에 가려져 있지만, 인왕은 경복궁을 바라보고 서촌 일대를 품은 위풍당당한 산이다. 애초 무학대사(1327~1405년)는 이 산을 진산으로 꼽았다. 정상에 서면 그 위용을 실감한다. 동대문·잠실 등 서울 동쪽과 마포를 비롯해 김포·파주·고양이 한눈에 펼쳐진다. 비가 살짝 온 지난 15일 저녁에 올랐다.

기점은 종로구 부암동주민센터.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다. 윤동주문학관을 거쳐 성곽을 따라 오르는 길과 무계원을 거쳐 부암동 주택가 맨 꼭대기에서 기차바위로 향하는 길이다. 두 길은 기차바위 아래 성곽에서 다시 만난다. 이 방면에서 또 다른 길은 석파정 아래 홍지문(弘智門) 길 건너 나무 데크에서 시작해 기차바위로 오르는 길이다. 중간에 군 초소를 우회한다.

부암동 주택가 길을 택했다. 트레일 초입이 흙길이라 부담 없고, 다른 두 길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아 더 호젓하다. 주택가를 지나면 데크 계단이 나타나고, 옆으로 3년 전 산불로 타버린 소나무 숲이 자리한다. 까맣게 그을린 소나무 아래로 어린 아까시와 참나무류가 자연 발아했다.

트레일 입구에서 산 능선까지 10분이면 닿는다. 목이 마를 새도 없이 시원한 능선 위에 섰다. 동쪽으로 북악산과 북한산 보현봉(714m) 능선, 서쪽으로 서대문구 안산(196m)이 펼쳐진다. 산과 산 능선은 먹빛. 도심의 찬란한 불빛이 산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했다. 밤에 처음 방문한 도시처럼 새록새록 하다.

보랏빛 일몰과 함께 어스름이 막 깔린 오후 8시10분.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종로구(관철동)의 기상 데이터는 기온 24.6도, 습도 73%, 바람은 약 초속 2m. 습기 때문인지 체감 온도는 26도를 가리켰다. 같은 시각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 산 능선(해발 약 250m)은 이보다 더 선선하게 느껴졌다. 기온은 낮고 바람은 더 불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도 끈적하지 않다.

이날 밤 인왕산엔 제법 사람이 있었다. 헤드랜턴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반반으로 나뉘었다. 인왕산 북동쪽 기차바위에서 서쪽에 능선까지, 산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명 시설이 없다. 조명이 켜진 구간은 10%도 안 될 것 같다. 나무의 생장에 방해가 된다고 되도록 켜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헤드랜턴을 해야 한다. 랜턴이 없다면 돌부리·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더러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는데, 손에 물건을 들고 있으면 넘어졌을 때 더 크게 다친다. 또 그로 인해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다면 긴급한 상황에서 대처가 어렵다.


                                    인왕산에서 본 북한산 보현봉(가운데)과 북악산(오른쪽) 성곽 길. 김영주 기자

인왕산 정상에서 평창동(종로구)을 바로 보는 전망이 좋았다. 북한산 보현봉·문수봉 아래 평창동·구기동 주택가의 불빛이 보석처럼 빛났다. 네팔의 대표적인 산악 마을 남체 바자르(3440m)가 연상됐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아고라광장처럼 반원 모양의 민가가 넓게 펼쳐진 마을. 밤에 보니 북한산 능선 아래 불 켜진 평창동 일대가 네팔의 고산 마을 같았다.

산 아래 창의문(彰義門)에서 북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곽엔 붉은 조명이 선명했다. 이 조명은 밤새 불을 밝힌다. 산을 향해 타오르는 산불 같다.

산에서 내려와 인왕산 스카이웨이 걷기 길를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길 중간에 오후 10시까지 문을 여는 초소 책방이란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 산에서 내려와 차 한잔하기 좋다.


신재민 기자

한밤의 남한산성 라운드 트랙, 환상적인 경험  

                                                               남한산성 수어장대 야경. 김영주 기자

경기도 하남·광주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南漢山城). 병자호란(1636~1637년)의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그 때문에 산성이나 장대(將臺) 등 유적이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을 밤에 오른 건 처음이다. 편안하고 환상적인 밤길이었다.

들머리는 산성 동쪽, 하남시 청운사를 기점으로 했다. 이곳에서 약 2㎞ 오르면 서암문(제6암문)을 통해 수어장대까지 직등한다. 암문까지 줄곧 흙길이고, 단시간에 청량산(497m) 수어장대(守禦將臺)에 오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단 길이 가팔라 숨이 차다. 수어장대는 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 축성 때 만든 4개의 장대 중 하나로 군사를 지휘하도록 쌓은 높은 대를 말한다. 이 산성에는 사대문을 포함해 16개의 암문이 있다. 산성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차례로 만난다.

지난 13일 오후 7시30분. 사진가 이내정(51)씨와 함께 청량산을 향해 올랐다. 그와는 꼬박 23년 길동무다. 2002년 레저 주간지에서 일할 때 기자와 사진가로 만나 전국의 산하를 같이 싸돌아다녔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남한산성을 밤에 온 적은 없었다. 그는 수어장대 바로 아래에 산다. 주로 안개 자욱한 날이나 비 오는 날에 오른다고 했다. 그런 날이 오히려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수어장대 1시간, 단숨에 올라쳤다. 서로 누가 체력이 나은지 경쟁이라도 하듯 한숨도 쉬지 않았다. 덕분에 상의가 땀에 절었다. 장대 아래서 내려다본 도심 쪽 전망은 흐릿했다. 서울 동쪽에 우뚝 솟은 롯데타워 꼭대기에 매연 같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수어장대에서 본격적인 라운드 트랙을 시작했다. GPS를 찾아보니 산성을 한바퀴 도는데 약 8~9㎞. 바삐 걸으면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시계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티베트 불교에서 탑돌이를 하거나 마니차를 돌릴 때 늘 이 방향이라고 한다. 이유는 “신성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첫 번째 관문은 서문이다. 여기 서면 롯데타워가 정면이다. 비 온 뒤 구름이 걷히며 스카이라인이 선명해졌다. 서문에 선 시간은 오후 8시30분. 같은 시각 송파구의 기상 데이터는 기온 26도, 습도 74%, 체감온도 28도. 바람은 0.8m/s로 거의 없는 편이다. 남한산성 서문에선 이보다 더 선선하게 느껴졌다.

성곽을 따라 난 오솔길엔 조명이 아예 없다. 서문·북문·동문·남문 사대문과 장대 등 주요 거점만 불이 켜져 있을 뿐이다. 반드시 헤드랜턴이 필요하다. 헤드랜턴이 손전등이나 핸드폰보다 좋은 점은 시선에 따라 가는 길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오후 9시쯤, 남한산성 서쪽 전망. 구름에 잠겨 있다. 김영주 기자

구불구불한 성곽길을 한 구비 한 구비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활엽수 가득한 숲이 앞을 가로막다가도 어느새 시원한 전망대가 나타났다. 특히 산성 서쪽 남한산(522m, 경기 광주)과 남쪽 검단산(535m, 경기 성남) 방향 전망이 좋았다. 겹겹이 포개진 산 능선이 짙게 깔린 수증기에 젖어 있었다.


                                                       남한산성 둘레길 중 소나무 군락. 김영주 기자

이날 둘레길은 도심의 불빛 때문인지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안개 자욱한 새벽녘처럼 비교적 훤했다. 특히 성곽 바로 옆 오솔길은 헤드랜턴을 끄고도 윤곽이 보일 만큼 밝았다. 반면 성곽을 벗어나 숲으로 들면 금세 캄캄한 밤길이 됐다. 이날은 음력으로 열아흐렛날, 달이 떴다면 보름달일 테지만 구름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달은 구름 위에 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늘 빛도 먹빛이 아닌 옅은 회색에 가까웠다.

길은 걷기에 아주 좋았다. 대부분 흙길, 또 돌부리가 있을 법한 곳엔 야자수 매트를 깔아 편안했다. 맨발로 걷는 이들은 야자수 매트 길을 꺼리지만, 밤길을 걸을 때 이 인공의 소재는 푹신푹신한 감촉을 선사했다.

약 8㎞의 둘레길은 내내 호젓하고, 선선하고, 전망도 좋았다. 평지를 걸을 땐 ‘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실제로 몇몇 구간은 달려가기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뛴 경험이 있는 이씨는 “트레일 러닝 훈련 장소로 최적”이라고 했다.

남문은 산성터널이 지나는 찻길 옆에 있다. 옛사람들은 가장 많이 이용했던 문이라고 한다. 남문 아래는 성남시 중원구 주택가로 이어지는데, 그래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었다. 길에서 만난 한 노년의 부부는 숲으로 접어드는 기자를 향해 “컴컴한데 그리 가느냐”고 말을 건넸다. 그러더니 이내 “운동하기엔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남문에서 1㎞ 정도 가면 영춘정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1㎞를 더 가면 수어장대가 나온다. 걸어 보니 딱 8㎞ 길, 3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어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오후 10시30분쯤 수어장대로 되돌아오니 환하던 조명이 모두 꺼져 있었다. 밤새 불을 밝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다음날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에 문의하니 “수어장대는 24시간 개방하고, 조명도 24시간 켠다”고 했다. 그날 조명이 꺼진 이유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해처럼 붉은 달이 휘영청


                                                     수락산 오르는 길에서 본 붉은 달. 김영주 기자

‘수락산을 밤에 가면 좋다’고 추천한 이는 이렇게 말했다. “수락산에서 바라보는 도봉산(740m) 전망이 좋고, 지하철에서 가까워 늦게 내려와도 집에 가기 편하다.”

그의 말대로 지하철 7호선은 수락산 서쪽을 남북으로 관통한다. 그래서 지하철을 이용한 산행은 수락산역에서 내려 벽운계곡을 따라 도솔봉(540m)과 수락산 정상을 오른 뒤, 석림사 방향으로 내려와 장암역을 이용하는 코스가 가장 적합하다. 산 서면 두 개의 등산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난 12일 오후 7시40분, 벽운계곡 입구에서 출발해 염불사를 향해 올랐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날씨는 쾌청해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절까지 가는 길은 종종 조명이 있었다. 하지만 염불사 넘어 돌계단에 진입하자 무성한 나무에 가려 길은 컴컴했다. 헤드랜턴 없이는 위험한 길이었다. 돌계단은 도솔봉 아래 안부 삼거리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다리에 피로가 쌓였다. 산 능선까지 약 1시간 남짓 걸렸다.

능선에서 수락산을 향해 가는 오후 9시20분쯤. 고개를 돌리니 동쪽 하늘에서 붉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남양주 예봉산(678m)·운길산(606m) 방면에 뜬 달은 발갛게 달아올라 마치 해와 같았다. 이날은 음력 열여드렛날. 분명 달이 기울 때지만, 지면에서 올라오는 달은 보름달이었다. 그 시간 달이 태양 빛을 가득 받고 있어서다.

길을 멈추고 붉은 달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단, 길을 비추는 달 그림자는 없었다. 달이 지평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었고, 또 도심의 불빛이 달빛을 삼켜버린 탓이기도 했다.


                                                     수락산 정상에서 본 서울 도심 야경. 김영주 기자

홀로 수락산 정상에 서니 서너명의 등산객이 헤드랜턴을 켜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날 본 유일한 등산객이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수락산 정상을 그냥 지나쳐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갔다.

수락산에서 석림사 방면으로 내려가는 약 3㎞의 길은 예상보다 가팔랐다. 경사가 제법 있는 데다 돌계단이 많아 다리에 부담이 됐다. 비 온 뒤나 축축한 날 밤에 걷는 건 아주 위험할 것 같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이날 본 붉은 달은 환상적이었다. 수락산역에서 시작해 벽운계곡을 따라 도솔봉과 수락산 정상에 오른 뒤, 장암역으로 내려오는 길은 약 8㎞. 서너 시간 걸린다.

신재민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