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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의 불교 유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4. 28. 17:15

[뉴스 속의 한국사]

'석가모니 괘불도' '33조사도'… 100점 넘는 佛畵 남아있죠

입력 : 2023.04.2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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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의 불교 유물

 선암사 대웅전과 3층 석탑.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선암사성보박물관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이 10월 27일까지 선암사(仙巖寺) 소장 불교 문화재 특별전 '세계유산 선암사'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어요. 전남 순천시 조계산 기슭에 있는 선암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7개 사찰 가운데 하나예요. 이 절이 소장한 많은 보물을 외부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선암사가 어떤 절이고, 이곳에는 어떤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지 알아볼까요.

 
선각국사 도선이 터 닦은 천 년 고찰

선암사는 신라의 아도화상이 처음 세운 것을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선각국사 도선(827~898)이 고쳐 지었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아도화상이 전라도까지 건너와 선암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요.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확산시킨 인물로 유명한 도선은 순천 동쪽에 있는 광양 옥룡사(玉龍寺)에 머물면서 많은 사찰을 세웠다고 해요. 현재 선암사 대웅전 앞에는 통일신라 때 세운 3층 석탑 2개가 남아 있어요.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당시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도선이 선암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더 믿을 만해요.

초기 선암사는 규모가 작았지만 11세기 말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큰 절로 바꿨어요. 고려 11대 왕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의천은 11세에 출가했고, 31세에는 송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했어요. 1086년 귀국한 의천은 개경 흥왕사(興王寺) 주지가 돼 천태종을 널리 알렸어요. 의천이 개창(開創)한 천태종은 이론 중심의 교종과 수행 중심의 선종 사이에서 종파적 융합을 지향해 지식인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하지만 의천은 법상종(法相宗)이라는 종파의 견제에 밀려 1094~1095년 전라도 일대를 떠돌게 됐어요. 이 무렵 의천은 선암사 대각암(大覺庵)에 잠시 머물렀다고 해요. 그 인연으로 의천이 개경으로 돌아간 뒤 선암사를 보수하는 자금을 후원한 것으로 여겨져요. 선암사가 보관하는 '대각국사 중창건도(重創建圖)'에는 법당 70여 동과 전각 등이 그려져 있어 웅장했던 당시 사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러나 선암사는 정유재란과 6·25전쟁 등 전란과 여러 차례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타 없어져 현재는 건물 20여 동만 남아 있어요.

조계산 동쪽의 '살아 있는 수도원'

선암사 사찰 전체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 마당에는 3층 석탑 한 쌍이 있어요. 도선이 절을 창건할 당시에는 쌍탑을 중심으로 사각형 회랑이 에워싼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돼요. 현재 대웅전은 1825년 고쳐 지은 것으로, 전통 목조건축으로는 거의 말기에 해당하는 건물이에요.

하지만 대웅전을 받치는 건물 기단은 목조 가구처럼 화강암을 정교하게 짜맞춰 만들었어요. 건물 기둥의 초석도 잘 가공한 원형 초석을 사용했어요. 이러한 석재들이 3층 석탑에 사용한 화강암과 동일한 재질, 기술로 제작됐다고 해요. 절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쌓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죠. 또 기단석 일부에는 대형 화재 당시 떨어져 나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처음 세운 불전이 불탄 뒤 그 위에 조선 후기 목조 건물을 세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

선암사는 승려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승방(僧房)이 잘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해요. 완벽한 'ㅁ'자 모양의 승방을 유지하고 있는 심검당(尋劍堂)과 설선당(設禪堂) 등은 밖에서 보면 1층으로 보이지만, 안마당 쪽에서 보면 2층이나 3층으로 구성된 입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구조는 서울과 경기 지역 양반집에서 안채를 꾸미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해요.

선암사에 있는 여러 건물은 '길'과 '물'이 하나로 묶어주고 있어요. 특히 뒷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작은 연못에서 모였다가 축대 위 인공 폭포를 타고 떨어지도록 했어요. 작은 수로를 타고 타원형 연못인 삼인당(三印堂)에 모인 물은 옆 골짜기에서 내려온 계곡물과 합류해 무지개다리 승선교(昇仙橋)까지 흘러 내려가죠. 선암사 물길은 자연과 건축을 하나로 엮어주는 연결 고리라 할 수 있어요.

선암사 밖으로 나온 보물들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3층 석탑 2개는 불국사 석가탑을 본떠 만들었어요. 높이 4.5m 정도로 같고, 9세기 후반 함께 세운 것으로 추정돼요. 동쪽 탑에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재질의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장치)가 발견됐어요. 석탑 1층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귀가 셋 달린 청자와 뚜껑이 있는 분청사기, 금동으로 만든 팔각형 사리기(사리를 모신 그릇)예요. 팔각형 사리기 안에는 타원형의 회백색 사리 1개가 있었다고 해요.

선암사에는 100점이 넘는 불화가 남아 있는데,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어요. 그중 1753년 제작한 '석가모니 괘불도'와 '33조사도'는 문화재청에서 보물로 지정할 만큼 가치가 높아요. 특히 33명의 조사(祖師·불교에서 한 종파를 열었거나 종파 법맥을 이은 고승을 이르는 말)를 그린 33조사도는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제작한 사례가 드물어 귀중한 불화로 평가받아요. 이 그림은 원래 11폭으로 구성됐지만, 안타깝게도 4폭이 도난당해 현재 7폭만 남아 있어요.

19세기에는 주변 암자를 중심으로 불화가 제작됐어요. 1805년 도일이라는 승려 화가가 그린 선각국사 도선과 대각국사 의천 초상화가 대표적이에요. 두 초상화는 한 사람이 그려서 색채나 구도가 매우 비슷해요. 특히 얼굴 표현에서 두 스님의 수행자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죠.

선암사에는 제작 시기를 달리하는 여러 개의 범종(梵鐘)이 남아 있어요. 범종은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종이에요. 선암사 범종에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글자가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선각국사 도선의 초상화.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선암사성보박물관
 조선 후기 그려진 ‘대각국사 중창건도(重創建圖)’. 건물 70여 동과 암자가 그려져 당시 웅장했던 사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어요.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선암사성보박물관
 대각국사 의천의 초상화.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선암사성보박물관
 선암사 33조사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뛰어난 조사(祖師)들을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어요.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선암사성보박물관
 선암사 동쪽 석탑에서 발견된 청자와 분청사기, 금동으로 만든 사리장엄구(왼쪽)와 1657년 제작된 범종.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선암사성보박물관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