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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와 인터넷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 15. 23:48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221] 마르틴 루터와 인터넷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 2017.01.12 03:09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새로운 기술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더 빨리, 더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검증된 지식과 정보가 널리 전파될 수 있는 더욱 합리적인 세상을 기대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들이 유언비어로 변신하고 증오와 의심이 산불같이 번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탈진실(post-truth)'의 도움으로 45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이야기가 아니다. 500년 전 당시 최첨단 발명품이었던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놓은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다.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성당 문에 그 유명한 '95개 논제'를 걸어 놓는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분노하던 내용이었다.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이었던 예수님. 그런데 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세상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복음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했는데, 왜 교회는 돈을 받고 구원을 파는 것인가?

마르틴 루터. /위키피디아
오래된 권력의 부패와 오만, 불평등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1439년 구텐베르크는 유럽 첫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었다. 중세기 책 한 권 가격은 오늘날 차 한 대 값과 비슷했지만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루터의 글들은 저렴하고 빠르게 복사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시에 거짓과 프로파간다 역시 구텐베르크의 첨단 기술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불평등과 부패를 극복하려던 루터의 종교개혁은 결국 100년 넘는(1524~1648년) 유럽 종교전쟁 과 학살로 탈바꿈한다.

TCP/IP라는 새로운 통신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1969년 도입된 인터넷(당시엔 ARPANET로 불림). 최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급격한 변화와 글로벌 불평등. 그리고 여전히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기존 권력의 부패와 엘리트들의 오만. 500년 전 종교개혁과도 같이 오늘의 정보 개혁은 또다시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