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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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종점의 추억 /이동훈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6. 10. 19:17

 

 

종점의 추억/ 나호열

 

가끔은 종점을 막장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에게 종점은 밖으로 미는 문이었다

 

자정 가까이

쿨럭거리며 기침 토하듯 취객을 내려놓을 때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귀잠 들지 못하고 움츠려 서서

질긴 어둠을 씹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버스는

늘 즐거운 꿈을 선사해 주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설렘인가

서강행(西江行) 이름표를 단 버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유년을 떠나갔지만

서강은 출렁거리며 내 숨결을 돋우었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까

이윽고 내가 서강에 닿았을 때

그곳 또한 종점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몸에 잠들어 있던 아버지가

새살처럼 돋아 올랐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말한다

이 세상에 종점은 없다.

 

- 『눈물이 시킨 일』, 시와시학, 2011.

 

 

* ‘막장’과 같은 느낌을 주는 ‘종점’은 외지고 소외된 삶의 변방이다. 종점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기도 한데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귀가를 미룬다. 화자에게 종점은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다. 벗어나고 싶은, 그래서 ‘밖으로 미는 문’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종점의 답답한 일상에서 ‘서강’으로 대변되는 낯선 이름, 다른 삶에 화자는 몹시 이끌린다. 서강행 버스를 탔을 아버지의 부재는 ‘서강’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증폭시켰을 거고. 환상을 덧씌운 막연한 동경이라 하더라도, 그런 것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법이다.

 

어른으로 성장한 화자는 ‘서강’ 역시 반대편 종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에게 ‘서강’은 낭만이나 꿈이 아니라 생활을 위한 또 하나의 종점이었겠구나. 아버지가 된 화자는 비로소 옛날의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이다.

 

종점은 없다, 왜? 삶은 어차피 유전이니까, 과정이니까, 아니면 다 삶의 중심이니까.(이동훈)

 

우리시 홈페이지 2011.06.08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