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기자의 여행 - 경남 거창
가야산 줄기에 1046m 우두산
Y자형 출렁다리 ‘색다른 매력’
전망대 올라서면 분지 한눈에
장미·수련 가득한 ‘거창창포원’
축구장 66개 크기 습지형 공원
원학동, 영호남 통틀어 명승지
수려한 산세 ‘현실속 무릉도원’
퇴계이황이 이름붙인 수승대도
골짜기 따라 지방도 드라이브
위천변 5.9㎞ 걷기 코스 완비

거창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지금부터 장마 전까지는 어디든 초여름의 초록으로 가득한 때다. 한낮의 햇볕이 따갑고 기온도 높지만, 바람은 시원하고 습도는 낮아 쾌적하다.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에 온통 눈부신 초록으로 가득한 곳을 찾았다. 경남 거창이다. 최근 거창에 자연을 보는 멋진 전망대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거창에는 영호남을 통틀어 손꼽는 명승인 원학동(猿鶴洞)이 있다. 새로 지은 전망대가 ‘높은 시선의 공간’이라면, 시간의 이끼가 묻은 계곡은 ‘낮은 시선의 공간’이다. 거창은 높은 곳과 낮은 곳, ‘요즘 장소’와 ‘옛날 공간’, 인공정원과 자연 계곡을 오가며 초록의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초여름 거창을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뽑은 답이다.
# Y자형 출렁다리가 알린 우두산
거창은 고산분지(高山盆地)다. 덕유산과 가야산 줄기의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섰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高峰)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덕유산, 기백산, 금원산, 황석산 등 이름난 웅장한 명산이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산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두산(1046m)이다.
우두(牛頭·소머리)란 이름에서 떠올린 건 이중섭의 그림 ‘흰 소’다. 이중섭 그림처럼 힘찬 산세를 품고 있는 우두산의 매력은, 근래 들어서야 외부로 알려졌다. 산 아래에 휴양림과 유사한 ‘항노화힐링랜드’를 조성하고 협곡에 ‘산악형 출렁다리’를 놓으면서 관광 명소로 유명해졌다.
2020년 설치한 우두산 출렁다리는 마주 보고 있는 협곡의 암벽 세 곳에서 나온 길이 하나로 만나는 이른바 ‘Y자’형이다. 출렁다리가 전국에 흔해 빠졌지만, 그래도 Y자형 출렁다리는 새롭다. 세 방향의 다리가 한데 모이는 중간에 서면 마치 허공을 딛고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2024년 더 큰 Y자형 출렁다리가 포천 한탄강에 놓이기 전까지 우두산 출렁다리는 국내 유일의 Y자 출렁다리였다.
요즘은 출렁다리라면 선입견부터 갖게 된다. 한때 각광받던 출렁다리는 이제 한물간 퇴물 취급이다. 비슷한 시설이 여기저기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며 환경 훼손과 예산 중복 등의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안전사고 우려도 있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유지 관리 비용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던 출렁다리가 지금은 너나없이 손가락질을 받는다. 출렁다리 유행처럼 ‘출렁다리 비판’도 유행인 걸까.
변명하자면 출렁다리는 관광지 부재에 대한 지역의 궁여지책식 대안이었다. 출렁다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다리의 역할’이 아니라, 그 자체가 기념물이었다.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졌던 건 당연하다. 다리만 지어 놓으면 그걸 보러 관광객이 몰렸으니까.
그러다 보니 ‘건널 필요가 없는’ 곳까지 경쟁적으로 다리를 놓았고, 그 결과가 요즘 어딜 가나 보이는 출렁다리다.

# 하늘구비길 위의 둥지 전망대
출렁다리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지만, 우두산은 꿋꿋하게 ‘직진’ 중이다. 출렁다리를 ‘지속 가능한 관광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 이른바 출렁다리 콘텐츠의 고도화다. 지난 5월 1일, 출렁다리로 이어지는 기존의 부드러운 경사로 ‘오르미길’이 있는데도 가파른 능선에 계단과 나무 덱으로 만든 등반로를 개통했다. 이름하여 ‘하늘구비길’이다.
하늘구비길 중간중간에는 악센트처럼 두 개의 전망대를 들여놓았다. ‘Y자형 전망대’와 ‘둥지 전망대’다. Y자형 전망대는 세 개의 길이 만나는 출렁다리 형상을 본떴고, 둥지 전망대는 둥그런 새 둥지 모양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우두산의 수려한 풍경과 가조면의 가조분지를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가조분지 일대의 경관이었다. 뭉게구름 피어나는 초여름 가조면의 모습이 마치 초록 물감을 두껍게 이겨 바른 유화(油畵)처럼 보였다.
전망대라 이름 붙인 곳은 두 곳이지만 내내 시야가 탁 트이는 하늘구비길에서는, 멈춰서는 어디든 전망대라 불러도 될 만큼 경관이 좋다.
출렁다리를 놓고 비판이 쏟아지지만, 막상 거기에 가 보면 좋다. ‘더 좋은 곳’과 ‘덜 좋은 곳’은 있겠지만 그래도 출렁다리는 대표 명소에 놓기 마련이라 경관만큼은 ‘기본값’을 한다.
환경 훼손 논란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제외하고, ‘출렁다리의 경쟁력 부족’을 지적하는 비판의 표적은 경관이 아니다. 경관은 좋지만 ‘거기까지 사람들을 불러들일 지속 가능한 동력’이 문제라는 얘기다.
거창에는 출렁다리나 전망대처럼 ‘만든 관광지’가 또 있다. ‘거창창포원’이다. 창포원은 축구장 66개 크기의 거대한 습지형 생태공원이다. 합천댐 조성 과정에서 생겨난 수몰 지역을 생태적으로 복원해 만들었다. 여기를 ‘행정이 만든 그렇고 그런 꽃밭’쯤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들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정원이자 산책로다.
제철을 넘긴 창포꽃은 이제 끝물. 샤스타데이지도 지고 있지만, 배턴을 이어받은 장미와 금계국이 만발했고 수련은 이제 막 피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도 많고, 천변을 따라 근사한 산책로도 있어 초록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창포원을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 타기’다. 자전거는 창포원 관리사무소에서 대여해 탈 수 있다. 거창 공용자전거 ‘그린씽’의 경우 3시간 기준 1000원이다. 3시간마다 반납했다가 다시 타면 1000원으로 종일 탈 수도 있다. 가로수 그늘을 따라 금계국 만발한 천변을 달리는 값으로는 싸도 너무 싸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다인승 자전거도 빌려준다. 바퀴 4개짜리 4인승 자전거는 1시간에 4000원이다.

# 무릉도원을 이룬 거창의 산수
지금까지 거창에서 ‘만든 곳’ 얘길 했다면, 이제부터는 손대지 않은 거창의 자연 얘기다.
거창을 둘러싼 산과 분지의 경계쯤에는 어김없이 수려한 산세와 화강암 바위 사이를 굽어 흐르는 물이 있다. 풍류와 정취를 찾던 옛사람들에게 거창의 산수는 현실 속 무릉도원이었다.
거창의 무릉도원이라면 단연 ‘원학동’이다. 원학동은 영호남 통틀어 최고의 명승으로 일컬어졌던 ‘안의삼동(安義三洞)’ 가운데 한 곳이다. 안의삼동이란 ‘안의현(安義縣)에 있는 3개의 동천(洞天·신선이 살 만한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거창은 함양과 함께 조선 시대 안의현에 속했다.
안의삼동, 그러니까 안의현의 동천 3곳은 거창의 원학동, 함양의 화림동과 심진동을 말한다. 이 지명은 지도에 없다. 마을 이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행정 지명도 아니니까. 안의삼동은 자연의 이치를 통해 세상의 도리를 읽었던 옛 선비들이 꿈꿔 온 관념 속 이상 공간이었다.
안의삼동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 건 거창의 원학동이었다. ‘원학(猿鶴)’이란 원숭이와 학이다. 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원숭이는 난데없다.
이름에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중국 송나라 때의 시문집 ‘고문진보’에 실린 ‘북산이문(北山移門)’에서 가져왔다는 얘기다. 북산이문은 1500여 년 전 제나라 시인 공치규가 지은 시와 산문의 중간쯤 되는 글. 북산(北山)에 은거하다 벼슬길에 오른 이가 임기가 끝나서 산으로 돌아오려 하자 산신령이 그가 돌아오려는 걸 거절하는 내용을 담았다. 산신령의 입을 빌려 쓰는 형식을 택했는데 ‘가짜 은둔자’를 배척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더러운 얼굴을 치켜들고 속된 모습으로 달려가니, 바람과 구름은 슬퍼하며 분노를 띠고 바위 사이의 샘물은 울면서 슬프게 흘러내린다.” 벼슬을 좇아 떠난 은둔자의 뒷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학(鶴)과 원숭이(猿)가 등장한다. “향초로 엮은 휘장은 텅 비어 밤의 학이 원망하고, 산인(山人)이 떠난 새벽에 원숭이가 놀란다.”
두 번째 설은 좀 단순하다. 거창 금원산의 ‘금원(金猿·황금원숭이)’과 원학동에 살았다는 ‘청학(靑鶴·푸른 학)’이 합해져 금빛 원숭이와 푸른 학이 사는, 속세와 떨어진 곳이라는 뜻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연원이 어떤 것이든 ‘속세에 물들지 않은 은자(隱者)가 숨어 사는 동네’란 뜻은 다르지 않다.
# 드라이브로 즐기는 원학동의 풍류
원학동은 덕유산에서 발원해서 거창읍으로 흐르는 위천(渭川)이란 물길 주변으로, ‘마리면 영승마을∼월성계곡 사선대’까지의 계곡 일대를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짚으면 월계리 ‘원학슈퍼마켓’에서 월성리 ‘월성2교’ 사이다.
이 구간에 수많은 명소가 있다. 사락정, 수승대, 강선대, 모암정, 용암정, 사선대…. 정자며 대(臺)는 ‘빼어난 산수간(山水間)’에 세워지는 법. 위천 변 명소가 이리 촘촘한 건 원학동이 품고 있는 압축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땅의 기운을 읽는 데 능통했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바닷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은 계곡에 사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산중 계곡에서 사는 걸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 여긴 것이다. 산과 물이 주는 위로 혹은 기운, 그리고 자연이 품은 성리학적 메시지에 관한 얘기다.
경관이 좋다는 건 미감(美感)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었다. 옛사람들은 뛰어난 명승에서 인물이 무궁하게 난다고 생각했다. 옛 선비들에게 경관은 그냥 경치가 아니었다. 자연은 학문과 도리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자연에 가까이 산다는 건 자연 곁에서 도(道)를 보고 익힌다는 뜻이었다.
위천을 끼고 내로라하는 인물이 여럿 났다. 위천이, 고대 중국의 패권을 쟁취한 주나라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渭水)’에 자주 비유되는 이유다. 주나라 문왕에 의해 발탁된 위수의 강태공을 연상케 하는 위천의 인물을 불러 보자. 고려 말 문신 강천 이예, 고려 충신 영계 유환, 조선 중기 유학자 갈천 임훈, 조선 전기 문신 죽헌 조숙, 조선 중기 문신 동계 정온….
무릉도원의 이상향이라는 원학동 경관을 가장 간편하게 즐기는 방법은 드라이브다. 위천의 물길에 딱 붙어서 1001번 지방도(송계로)와 37번 지방도(덕유월성로)가 있다. 출발 전에 미리 가 볼 만한 위천 변의 명소를 지도에 찍어 두는 걸 추천하지만, 그때그때 나오는 명소를 도로 표지판을 보고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강조하고 싶은 건 ‘길의 방향’이다. 드라이브 방향은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가 낫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다. 그러니까 출발 지점으로 삼을 곳은 원학슈퍼마켓. 거기서 차량 내비게이션에 ‘월성2교’를 찍고 달리면 된다.

# 서출동류 물길… 계곡을 즐기는 최고의 호사
위천 변에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걷기 길’이 있다. 산수교에서 월성숲을 지나 황점마을까지 이어지는 5.9㎞ 남짓한 길인데, ‘서출동류(西出東流) 물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서출동류란 이름 그대로 ‘서쪽에서 발원해(西出) 동쪽으로 흐르는(東流) 물길’이란 뜻.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줄곧 동쪽으로 흐르는 월성계곡 물길의 방향을 이름으로 삼았다.
월성리 마을에서 잠깐 포장도로로 올라서는 짧은 구간이 있긴 하지만, 서출동류 물길 대부분 구간이 손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계곡과 가깝다. 계곡의 물소리와 앞산의 뻐꾸기 소리 사이로 난 천변의 초록 숲 그늘을 걷다 보면 오래전 선비들이 왜 원학동을 안의삼동 중 최고로 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초여름의 자연을 즐기는 길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걷기에서 길의 방향은, 드라이브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같은 길이라도 ‘이쪽에서 저쪽으로’와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풍경과 감흥은 사뭇 다르다. 걷기 길은 드라이브 때와 마찬가지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을 권한다. 이렇게 걸어야 계곡 물이 쏟아져 내리는 걸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경관도 그렇지만, 물소리도 전면에서 듣는 게 훨씬 낫다.
산수교에서 황점마을까지. 서출동류 물길을 편도로 걸으면 2시간 남짓이다. 원점 회귀할 방법이 마땅찮아 차를 가져간다면 이 길을 왕복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4시간이 걸린다.
이게 부담스럽다면 산수교에서 출발해 서출동류 물길의 딱 중간쯤인 월성숲까지만 다녀오는 걸 추천한다. 이렇게 걸으면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감수해야 할 게 있다. 필시 ‘더 걷고 싶어질’ 마음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 셀럽과 토호가 맞붙으면
안의삼동 중 최고가 원학동이라면, 원학동의 중심은 수승대다. 거창의 수승대야 워낙 알려진 명승이니까 그곳 얘긴 되도록 짧게. 수승대는 본래 ‘수송대(愁送臺)’였다. 거창이 백제 땅이었던 시절, 강성해지고 있던 신라에 사신을 ‘근심으로(愁) 보내는(送)’ 곳이었다는 얘기.
이 이름을 ‘빼어난 경치를 찾아 즐기는 곳’이란 뜻의 수승대(搜勝臺)로 바꾼 건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었다.
그 사연을 보자. 퇴계는 거창 수승대 인근인 처가에 왔다가 이튿날 수승대를 방문하겠다며 지역 유지들에게 전갈을 보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왕명으로 서둘러 한양으로 돌아간 퇴계는 수송대라 불리던 곳을 제멋대로 수승대로 바꿔 부르는 시 한 수를 보냈다. 슬픔의 정서를 품은 이름이 명승에 어울리지 않으니 수승대로 바꾸자는 얘기였다. 그게 수송대가 수승대가 된 경위다.
그 시를 본 지역 선비 갈천 임훈은 외지인인 퇴계가 와 보지도 않은 곳의 이름을 바꾼 게 짐짓 언짢았던 모양이었다. 갈천은 ‘수송(愁送)의 뜻을 풀어 그대들에게 보이다’란 제목의 시를 짓는다. 시에는 ‘그대도 장차 떠나니(君將去)’란 대목이 나온다. ‘여기 살지 않고 떠날 사람(퇴계)이 이름을 지어서야 되겠냐’는 힐난이다.
좀 불경스럽긴 하지만 이런 비유는 어떨까. 퇴계는 전국적 명성의 인플루언서 혹은 셀럽. 갈천은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사는 변방의 선비. 셀럽인 외지 사람 퇴계가 토박이 갈천의 고향 땅 지명을 마음대로 바꾼 셈이다.
지명을 놓고 맞붙은 결과는 셀럽의 일방적인 KO승이었다. 퇴계가 시를 지은 뒤 수승대는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모이는 풍류 공간이 되었다. 퇴계 이전의 수송대와 퇴계 이후 수승대는 다른 곳이 됐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셀럽의 붓이 ‘와 보지도 않은 곳’을 송두리째 바꾼 셈이었다.
아, 역전의 기회가 딱 한 번 있긴 했다. 2021년 명승 전수조사를 진행한 문화재청은 수승대를 삼국시대 명칭인 ‘수송대’로 변경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수승대로 불리기 시작한 건 1543년이고, 삼국시대부터 그때까지 수송대라 했으니 역사적 연원이 오래된 수송대로 이름을 바꾼다는 공고였다. 이 공고에 거창군이 극력 반대하고 나서자 문화재청은 두 달 만에 두 손 들고 변경 공고를 취소했다. 역전은 언감생심이었다.

■ 이름만 거창한 항노화랜드
‘항노화(抗老化)’면 ‘늙는 걸 막는다’는 뜻인데, 거창 항노화힐링랜드의 프로그램은 여느 휴양림·산림욕장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기대 수위를 낮추고 가시길. 맑은 공기에서 즐기는 산림욕이나 운동이 건강에 좋으니 장수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항노화’라 할 수 있을까.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겨냥한 과대 포장이 아닐까. 항노화힐링랜드의 입장료는 3000원. 2001년 개장 때부터 입장료를 지역 상품권 2000원 권으로 환급해 주던 제도를 작년부터 폐지했다.
박경일 전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