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찬반 사이 존재…사상·토론 자유로 '다수 폭정' 막아야
중앙선데이입력 2025.11.15 00:01업데이트 2025.11.17 13:20
[박상훈 ‘고전으로 읽는 민주주의’]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과 부인 해리엇 테일러. 여성의 평등한 지성을 존중한 철학자로도 유명한 밀은 책 헌정사에서 “내 작품인 것만큼 그녀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책은 두 주제를 동전의 양면처럼 다룬다. 하나는 ‘민주적 폭정’으로, 자유에 대한 위협은 폭력적 압제만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과 감정, 여론과 같은 민주적 수단에 의해서도 가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적 자유’다. 그러한 폭정을 제어하기 위해 민주정에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기초 위에서 결사·행동·취향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를 자유”가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밀 이전까지 자유는 “권력자로부터의 자유”를 뜻했다. 대표적으로 존 로크는 불가침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설정하고 정부가 이를 침범하면 인민은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을 중심으로 정부에 ‘입헌적 제한’을 부과해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이를 ‘제한정부론’이라 부른다. 그러나 루소에 의해 인민주권이 주창되고 미국과 프랑스에 민주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인민이 통치자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접근 대신, 통치자를 “자신의 의향에 따라” 자유롭게 바꾸고 자신에게 봉사하는 “일꾼이나 대리인”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민의 것”이라면 권력을 제한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키우고 강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인민이 자유롭게 지시”할 수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인민의 열정은 ‘자유를 옹호하기 위한’ 제한정부론에서 ‘권력을 최대화하려는’ 인민 정부론으로 옮겨갔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국민주권 정부론’이 대세가 된 것이다.
다양성 억압은 오류 고쳐나갈 기회 차단
문제는 인민의 권력, 인민의 정부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그 인민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활동적인 일부 사람들” 혹은 “다수파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 목소리 큰 인민이 다른 인민들에게 “지배적인 의견과 감정”을 강요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밀은 이를 “정치적 탄압보다 더 무시무시한 사회적 폭정”이라고 정의한다. 신체를 억압했던 과거의 폭정과 달리 “영혼 자체를 노예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론”이라는 “도덕적 강압”을 동원해 열광과 혐오라는 획일화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이어졌다. 이견을 관용하지 않고 이적시하는 우리의 팬덤 정치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밀의 자유론은 간단명료한 “하나의 원칙”으로 이루어진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다른 사람의 행동과 그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자기 보호”, 즉 정당방위가 필요할 때뿐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정신적으로 성숙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선한 목적이라면 “고언·충고·설득·간청”은 가능하나 “강제나 해악”을 입힐 권리는 없다. 이런 원칙이 구현되어야 할 “인간 자유의 고유한 영역”은 세 가지다. 첫째는 “내면의 영역”이다. 어떤 주제에서든 “양심·사상·감정의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 둘째는 “취향과 욕구”의 영역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자유, “자신의 개성에 맞는 삶의 계획을 세울” 자유다. 설령 다른 사람의 눈에 어리석거나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침해될 수 없다. 셋째는 “결사”의 영역이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모든 성인은 여하한 목적을 위해 결사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 밀은 단호하다. “이 모든 자유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라면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밀은 왜 이 특별한 자유론을 고안하려 했을까. 인간이 가진 본성적 한계 때문이다. 이견과 이단을 박해해 온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듯, 우리에게는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는 뿌리 깊은 성향이 있고, 이는 오로지 “의견의 다양함”이 허용될 때만 제어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 대다수의 인류는 사회의 지배적 의견에 순응적이어서 역사적으로 “진리에 열광”한 사례는 드문 반면 “오류에 열광”했던 사례는 많았다. 이러한 문제는 “여론의 폭정”에 굴복하기 쉬운 민주정에서 극대화될 것인 바, 밀은 그에 대한 “자유의 방벽”을 세우는 과업을 자처하고 나섰다. 주요 논변을 요약해 보자.
우리 스스로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 나가는 “자기 삶의 주권자” 즉, 저자(author)다. 인류가 지금껏 삶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잘못을 수정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이견과 부딪혀 배운 것 덕분이다. 우리에게 이견과의 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진리란 찬반 어느 한쪽에 있기보다 찬반 사이에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가진 한계 때문에 상반된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리란 곧 “대립하는 의견들의 화해와 결합의 문제”인데 이는 자유로운 의견과 상호 비판 및 토론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견을 억압하면 그 부작용은 “미래의 인류에까지 나쁜 영향”을 끼친다. 억압된 누군가의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로 바꿀 기회”를 잃을 것이다. 설령 억압된 그 의견이 틀렸더라도 오류와의 논쟁을 통해 얻게 될 “진리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인식”을 상실하게 된다. 인간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후세대가 판단할 기회를 빼앗을 만큼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시대정신이 어쩌니 하면서 특정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미래를 “도둑질하는” 일이 된다.
책 헌정사에 사별한 부인 공동저자 명시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듯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의 양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실천적으로 증명할 “행동의 자유”도 필요하다. 인간의 삶을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그 자체”이다. 어떤 명분으로든 개개인의 개별성을 짓밟는 것은 압제다. “인간의 본성은 나무와 같다. 모형을 본떠 만들어져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하도록 설정된 기계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내적 힘의 경향에 따라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할 것을 요구한다.”
감정도 욕망도 충동도 인간의 일부를 형성한다. 강렬한 충동은 적당하게 균형을 갖지 못할 때 위험할 뿐이다. “인간을 고상하고 아름다운 사색의 대상이 되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고려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해 그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에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 그로 인해 인간 생활도 풍부해지고 활기를 띠게 된다. 나아가 고상한 사상과 숭고한 감정에 종류가 다른 자양분이 공급됨에 따라, 개인들로 이루어진 인류가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같지도 않고 같아질 수도 없다. 식물도 저마다 적절한 환경이 다른데 하물며 인간이 똑같은 기준 아래서 개성 있게 성장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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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알렉시 드 토크빌이 사망한 해에 출간한 존 스튜어트 밀의 대표작. 저자 스스로 “짧은 에세이”라 부른 작은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간단치 않고 영어도 어려워 20여 종의 한국어 번역본은 옮긴이가 누구냐에 따라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총 5장으로 이루어진 책의 1장은 “서론”으로 민주정에서 자유가 위협받는 이유를 논하는 주제 장이다. 이어서 저자 특유의 자유론이 펼쳐지는데 2장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 3장은 결코 침해할 수 없는 “개별성”, 4장은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권위의 한계”를 다룬다. 마지막 5장 “적용”에서는 독약 판매, 금주법, 의무교육, 관료제와 지방자치 등의 사례로 책의 논지를 보강한다.
민주주의는 대중 여론을 앞세워 사람들의 개성을 억압하고 같은 열정을 갖도록 몰아갈 때 폭정이 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개인은 대중 속”에 매몰되어 있다. 정치는 여론 동원 싸움이 되었다. “타인을 강제하여 그 길을 따르도록 하는 대중 권력”은 다른 이의 자유로운 발전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정치 또한 타락하게 만든다. 그 결과 권력의 압박에 저항한다는 관념이 정치가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며 같은 대상에 열광하거나 혐오하는 정치다. “인간은 잠시라도 다양성을 보지 않고 있으면 곧 다양성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게 되는 존재”다. 대중 지지자를 획일적 사고로 이끄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우리에게 왜 이견이 필요한가. 목소리 큰 하나의 당파가 독주하는 민주주의는 왜 위험한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대답이 밀의 『자유론』이다.
『자유론』의 맨 앞에는 짧은 헌정사가 있다. 여기서 밀은 한 여성에 대한 “사랑과 슬픔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이 책의 “공동 저자”라고 말하는 이, 저자가 평생 유일하게 원했던 사람, 해리엇 테일러다. 밀은 25살 때 두 살 아래인 그녀를 처음 만나 철학적 관심을 나눴다. 유부녀였던 그녀가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 21년을 기다려 결혼했다. 그리고 7년째 되는 해 그녀를 잃었다. 은퇴 후 처음으로 남유럽 여행을 하며 이 책의 원고를 같이 수정하려 했는데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그녀에게 폐출혈이 왔다. “내 작품인 것만큼 그녀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 책을 밀은 이듬해 런던에서 출간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있는 아비뇽으로 돌아와 무덤을 돌보고 정원을 가꾸며 집필 활동을 하다가 끝내 그녀 곁에 묻혔다. 그녀가 죽은 뒤 15년째 되는 해였다.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밀은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고 여성의 평등한 지성을 존중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밀은 훌륭한 철학자이기 전에 좋은 사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남자였다.
박상훈 정치학자.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특유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글을 써왔다. 다작의 작가로 최근엔 『혐오하는 민주주의』 『정치적 말의 힘』 『청와대 정부』 등을 펴냈다. 유명 칼럼니스트기도 하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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