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문해력 논란에서 우리가 놓친 것

어릴 적 자란 거제도 어촌 마을 이웃집엔 황 할머니가 살았다. 일제의 창씨로 당시 성은 ‘기하라’였댔나.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이름밖에 쓰지 못했다. “할매, 면사무소에서 한글 가르쳐 준대요” 하면 경상도 말로 “나만 사람(나이 많은 사람)이 인자 머 배우기는 쪽시럽다(부끄럽다)” 했다. 할머니 집에 관공서 우편물이 날아오면 옆에 앉아 읽어드렸다. 부두 근처 컨테이너에 붙은 게시판 위엔 어부 삼촌들의 삐뚤빼뚤 손글씨도 자주 보였다. “다음주 페그물(폐그물) 배출함니다“....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관련 책들이 올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출간됐다. 예스24에 따르면 10월까지 나온 신간만 230종. 집값과 규제로 혼란스러운 해인데 부동산·경매 신간(194종)보다 많았고, 작년 수치(217종)를 이미 추월했다. 전체 문해력 도서는 2000종이 넘는다. 판매량은 상반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21% 더 팔렸다. 40대 여성 구매자가 절반을 차지했다. 아이를 문해력 나쁜 ‘요즘 애들’로 만들지 않기 위한 엄마들로 추정된다. 독서 학원 같은 문해력 ‘필수 코스’도 많아졌다.
요즘 애들이 정말 문해력 위기에 봉착해 시장이 커진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선 어린 세대일수록 문해력이 높았다. 문해력이 가장 낮은 ‘수준1′의 비율은 대부분의 세대가 1%도 되지 않았지만 70대는 10.3%, 80세 이상은 39.8%였다. 서울 및 광역시(2.2%)에 비해 농산어촌(7.9%)은 3배 이상이었다. 농림어업종사자의 문해율이 가장 낮았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받아들인다는 요즘 애들 얘기는 늘 화제다. 그럴 때면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언어 결핍은 늘 있었지만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지금 눈에 더 잘 띄게 된 건 아닐까. 안 보이는 시골 문제는 사회과학의 고도화로 이제야 측정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배운 사람들 앞에 누군가의 말과 글이 뒤늦게 도착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문해력 부족 세대’라는 허망한 그물 대신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맥락, 독법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황 할머니는 글은 몰라도 세상은 잘 읽었다. 일기예보도 필요 없었다. 구름 냄새와 파도 빛깔만 봐도 내일의 바람을 읽어냈다. 요즘 애들이 책을 덜 읽고 한자를 잘 모르는 것도 맞다. 다만 이를 인정하며 문해력 책을 읽고 학원에서 아등바등 익히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기자의 고향 동네엔 지금도 독서 학원은커녕 서점도 없다. 그곳 애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만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글을 몰라도 세상과 자연의 흐름을 읽어낸 황 할머니처럼, 과연 우리는 ‘요즘 애들’ 타령 뒤에 숨겨진 세대와 지역의 진심을 읽고 있는가. 문해력 논란의 진짜 결핍은 개인의 글 읽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글 밖의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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