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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제주 맛집 기행...메밀국수를 먹어야 하는 이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6. 3. 23:01

 

5월 제주 맛집 기행...메밀국수를 먹어야 하는 이유

[아무튼, 주말]
[부부가 둘 다 놀고 먹고 씁니다]

윤혜자 작가
입력 2025.05.17. 00:30업데이트 2025.05.19. 10:03
 
 
 

어디에 눈을 둬도 찬란한 풍경이 되는 5월에 남편을 떼어 두고 제주에 다녀왔다. 여행의 시작은 이랬다. 지난해 연말 고양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지 않거나 않게 된 여자 셋이 모였다. 우린 ‘삼묘상상’이란 모임 이름을 짓고 뭔가 재미있고 유익한 생각들을 기획해 세상에 내놓자고 결의했다. 아직 이렇다 할 결과는 없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가 되어가는 중이다.

최근 모임 멤버 중 한 명이 모친상을 치르고 휴식차 제주에 간다고 했다. 면 음식에 빠져 ‘어이없게도 국수’라는 음식 에세이를 낸 강종희씨는 “마침 내가 ‘메밀소바’로 원고 청탁을 받았으니 우리나라 최대 메밀 생산지인 제주로 취재를 가는 게 당연하다”며 맞장구쳤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나도 제주 음식 이야기로 칼럼을 쓰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결국 종희씨와 나는 ‘음식’에 합을 맞추고 제주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처음 제주 여행을 얘기한 혜선씨는 다른 동행이 있어 일정 중 한번 만나기만 했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제주메밀식당’의 비비작작면은 오이, 버섯 등을 가늘게 채 쳐서 면과의 조화가 좋다. /윤혜자 제공

여행의 목적이 음식이 아니더라도 여행 일정에 가야 할 음식점을 골라 넣는 것은 관광객의 의무다. 그런데 이번엔 목적이 음식이다. 최상의 여행을 위해 나는 챗GPT에 제주에서 우리가 머물 숙소를 중심으로 주제에 맞는 음식점과 여행 동선을 제안하라고 했다. 챗GPT는 단 몇 초 만에 3박 4일의 동선과 음식점을 꽤 그럴싸하게 내놓았다. 혹시나 하여 제안한 음식점을 지도 서비스에서 검색했다. 아뿔싸! 단 한 곳도 바른 정보가 없었다. 대부분은 아예 지도에도 나오지 않았고 나온 곳도 폐업 상태였다(사람이든 챗GPT든 너무 믿지 말자). 결국 나는 소셜미디어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이를 토대로 방문할 음식점 리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음식은 자연환경과 생태에 따라 그 지역만의 특징을 갖는다. 제주도는 첫째, 해녀 문화와 함께 다양한 해산물 산지로 유명하고, 둘째, 화산섬이라 곡물이 잘 자라지 않아 밭농사보다는 감자·보리·메밀 등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을 중심으로 식문화가 형성되었다. 셋째, 기름기가 적고 간결한 조리, 염분을 줄인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식재료 고유의 맛을 즐기기에 좋다.

메밀은 이런 제주의 특징을 잘 담은 식재료다. 무엇보다 제주는 전국 43%의 메밀을 생산해내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메밀 산지다. 메밀은 가뭄과 태풍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씨를 뿌리고 두 달이면 수확할 수 있다. 그래서 메밀을 수확하는 5월 말에서 6월, 10월 말에서 11월엔 제주에서 메밀 축제도 열린다.

 
'채식카페 작은부엌'의 꽃비빔밥 /윤혜자 제공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찾은 첫 번째 음식점은 제주시에서 평양냉면으로 인기 부상 중인 ‘미친제주면소’였다. ‘미친부엌’이라는 이자카야를 하는 공건아 요리사가 냉면에 빠져 연구하듯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공건아 요리사 대신 젊은 여성 둘이 주방을 지키고 있었다. 우린 냉면과 고사리 만두, 메밀면 등이 들어 있는 양지국밥을 주문했다. 진하고 동시에 맑은 냉면 국물과 100% 순 메밀면이 서울에서 먹던 평양냉면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 음식점은 접객 태도가 좋았다. 바 형태로 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제주 메밀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는데 거침없이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내놓는 모습에서 음식에 대한 열정을 보았다(이곳은 6월 초부터는 ‘공평옥’이라는 상호로 새로운 장소에서 영업한다고 한다).

메밀면 음식으로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음식점은 서귀포시 안덕면 중산간에 위치한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제주메밀식당’이라는 긴 이름이다. 이곳은 영농조합으로, 조합원들이 메밀을 이용한 각종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알리고 판매하는 카페와 음식점을 운영한다. 대표 메뉴는 메밀면에 버섯·무·오이·참깨·들깨를 넣고 간장 양념에 비벼 먹는 비비작작면과 소고기 양지로 국물을 낸 물냉면이다. 동치미가 들어간 듯 쨍하고 맑아 ‘혹시 동치미를 넣었냐’ 물으니 직접 만든 간장 양념으로 간을 잡은 것이 비법이라고 했다. 종희씨와 나의 위장이 좀 더 컸다면 비빔냉면에 메밀전, 만두까지 모두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만 크다.

'고르멍드르멍'의 몸국 /윤혜자 제공

이 밖에 제주 음식점으로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분이 소박하게 운영하는 공항 근처의 ‘고르멍드르멍’의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 조천읍 선흘리 ‘방주할머니식당’의 도메칼국수(도토리와 메밀가루를 섞은 면으로 만든 칼국수), ‘채식카페 작은부엌’의 꽃비빔밥과 채소떡볶이도 추천한다. 이곳은 모두 사장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채집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여행 후 찐 살은 오롯이 내 몫이지만 여행을 할 때만이라도 내 위가 조금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혼자 앉아 3인분은 되어 보이는 두부수육 정식과 칼국수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우고 일어나는 한 사내의 위가 정말 부럽더라. /윤혜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