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종 5배 늘어 20종....20년 만에 자연하천처럼 바뀌는 인공하천 청계천
어종 5배 늘어 20종....20년 만에 자연하천처럼 바뀌는 인공하천 청계천

2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 인근. 40대 여성 2명이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심 40㎝ 청계천을 들여다보며 “물고기 진짜 많다! 돌에 붙은 이끼 같은 걸 먹고 있나 봐”라며 신기한 듯 말했다. 이들이 가리킨 곳에는 검은 가로 줄무늬를 가진 어른 손가락 길이의 돌고기 15마리가 뭉쳐 다니며 돌 가장자리에 붙은 녹조를 먹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어른 팔뚝만 한 잉어 4마리가 입을 뻐끔뻐끔거리며 흙 같은 걸 뱉어내고 있었다.
올해 복원 2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시설공단이 청계천의 어류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현재 청계천에 사는 어류는 모두 20종으로 복원 이전(4종)의 5배로 늘었다. 한반도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민물고기 ‘쉬리’도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급수 이상의 깨끗한 물에서만 터를 잡는 것으로 알려진 쉬리가 정착했다는 것은 청계천이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하천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쉬리 서식 확인… 청계천 생태계 안정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시설공단이 청계천 6개 지점의 어류 생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계천 상류인 관수교 인근 지점에서 쉬리 4마리가 확인됐다. 쉬리는 수질이 2급수 이상으로 맑고, 유속이 빠른 여울에만 서식해 하천의 생태적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으로 꼽힌다.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 서울시 모니터링 때 1~2마리 발견된 적이 있다. 당시엔 쉬리가 일시적으로 발견된 것인지 서식지를 갖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이번 발견을 통해 “쉬리가 청계천에 터를 잡고 서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몇 해에 걸쳐 꾸준히 발견되면서 청계천 생태계의 안정성이 확인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홍양기 국립중앙과학관 연구사는 “2019년 최초 발견 이후 건강한 생태계와 서식지 환경이 유지돼 쉬리가 청계천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오는 7월과 9월 두 차례 추가 조사를 통해 다른 지점에서도 쉬리가 나올지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쉬리가 청계천으로 유입된 과정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여름에 비가 많이 와 청계천 수위가 늘어났을 때, 한강 수계에 살던 쉬리 개체가 중랑천을 거쳐 청계천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완옥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장은 “처음에는 쉬리가 인위적으로 방류됐다가,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니 자리를 잡고 서식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공단 관계자는 “쉬리가 계속해서 청계천에 살 수 있는 것은 청계천에 있는 여울보 덕분”이라며 “보가 물을 어느 정도 막아 수심을 유지하면서도, 물이 흘러내릴 때는 유속을 빠르게 해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한다”고 했다.
◇청계천 어종 20종으로 늘어
청계천 복원 전인 2003년 4종에 불과했던 청계천 서식 어종도 이번 조사에서 20종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를 이끈 홍양기 국립중앙과학관 연구사는 “청계천에 여러 종의 어류 서식지와 먹이 환경 등이 다양하게 구축됐다”며 “인공 하천인 청계천이 자연 하천과 유사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모전교 인근부터 중랑천과 만나는 합수부까지 총 6개 지점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어류 20종과 1품종(이스라엘잉어)이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어류 1238마리 가운데 피라미가 53.7%로 가장 많았다. 한국에만 서식하는 참갈겨니(14.7%)와 돌고기(7.5%), 참붕어(6.5%) 등이 뒤를 이었다. 청계천 복원 전인 2003년 같은 지점에서 조사했을 때는 붕어·참붕어·미꾸리·밀어 등 더러운 물에서도 잘 사는 4종만 발견됐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참갈겨니·피라미·버들치 등은 양호한 수질에서 사는 어종이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서식 종이 늘어났다는 것은 서식지와 먹이 환경 등 생태계가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생활 하천이던 청계천은 1958년부터 이어진 공사로 아스팔트 도로와 고가도로가 지나는 복개천이 됐다가, 2005년 10월 1일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서울시설공단은 “복원 후 20년 동안 생태계를 해치는 외래 어종은 계속해서 제거하며 수질을 관리했다”며 “이번 발견은 청계천이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공간이 됐다는 의미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