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 이야기

서울시청 앞 광장 줄댕강나무에 담긴 사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5. 27. 13:11

서울시청 앞 광장 줄댕강나무에 담긴 사연

[김민철의 꽃이야기]

<238회>

입력 2025.05.27. 00:05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다 뜻밖의 나무를 보았다. 광장 한쪽에 다 자란 나무를 심은 화분 10여 개를 갖다 놓았는데 꽃과 줄기를 보니 줄댕강나무였다.

줄댕강나무는 충북 단양·제천, 강원도 영월 등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높이 1~2미터로 자라는데 줄기에 6개의 줄이 선명하게 패어 있다. 몇 년 전 지인과 영월에 꽃 탐사를 갔을 때 보고 꽃의 빛깔과 향기에 반한 나무였다. 이 나무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만난 것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 줄댕강나무.

 

◇줄기에 선명한 줄

마침 꽃이 만개한 때였다. 꽃은 5~6월 새로 나온 가지 끝에서 긴 깔때기 모양으로 피는데 꽃부리 바깥쪽은 연한 붉은색, 안쪽은 흰색이다. 꽃잎이 5개로 갈라지지만 밑부분은 붙은 통꽃이다. 흰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꽃도 예쁘지만 향기가 참 좋다.

 
서울시청 앞 광장 줄댕강나무. 이 나무 학명엔 일제강점기 이 나무를 처음 발견한 정태현 박사 이름이 들어 있다.

독특한 이름에서 ‘댕강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댕강’ 하는 소리가 난다고, ‘줄’은 나무 줄기에 줄이 뚜렷하게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국립수목원이 관리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은 줄댕강나무를 댕강나무로 합쳤고,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국가생물종목록은 줄댕강나무를 유지하고 있다).

이 나무는 일단 꽃이 예쁘고 크기도 도심에 심기에 적당하다. 또 내한성이면서도 공해에 견디는 힘이 강하고 반음지에서도 잘 적응해 도심 조경수로 적합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데 드디어 서울 도심에 진출한 것이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앞 연못가,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도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줄댕강나무. 원래 자라는 강원도 영월에서 담은 것이다.

 

도심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댕강나무 종류는 꽃댕강나무다. 주로 산울타리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꽃이 진 다음 꽃받침이 예뻐 두 번 꽃 피는 것 같은 나무다. 이 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조경용으로 도입한 것이다.

꽃댕강나무.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입종 나무다.

 

줄댕강나무 학명은 ‘Zabelia tyaihyonii (Nakai) Hisauti & H. Hara’다. 식물 학명은 ‘속명 + 종소명 + 명명자’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종소명 ‘tyaihyonii’는 이 나무를 처음 발견한, 우리나라 초창기 식물분류학자 정태현의 이름이다. 종소명은 주로 발견지나 식물의 특징을 잡아 붙이는데, 학자 등 특정인을 기려 붙이는 경우도 있다. 줄댕강나무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활동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이 나무를 처음 발견한 정태현 박사 이름을 종소명에 붙인 것이다. 영어 이름도 ‘Taihyun’s abelia’다.

 

◇학명에 이 나무 발견한 정태현 이름

정태현(鄭台鉉, 1882~1971)은 우리나라 식물학의 뿌리 역할을 한 학자다. 구한말에 태어나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나카이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 식물을 조사했다. 우리 특산식물 중에는 정태현 박사가 발견했는데 나카이 이름으로 등록한 식물이 많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그의 업적 중 가장 빛나는 것은 1937년 국내 식물학자 3명(도봉섭, 이덕봉, 이휘재)과 함께 우리나라 식물을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선식물향명집’을 펴낸 것이다. 요즘 우리가 부르는 식물 이름은 이 책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다.

해방 후에는 전남대·성균관대에서 후학을 기르면서 신종 16종을 발견하는 등 우리나라 자생식물 연구에 이바지했다. 생물학계에서는 그를 기려 1968년부터 생물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학자에게 ‘하은(정태현 박사의 아호) 생물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물학계에서 선배 학자 이름을 학명에 넣은 경우가 더 있다. 장억새는 경기도 가평 등 중부 지방에 분포하는 희귀 억새다. 식물학자 이영노가 발견한 뒤 1964년 선배 학자 장형두를 기려 그의 성(姓)을 따서 명명했다. 장억새의 학명은 ‘Miscanthus changii Y.N.Lee’인데, 종소명에도 장형두 이름이 들어 있다.

제주고사리삼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에만 사는 양치식물이다. 2001년 이 식물을 한국 특산속(屬)으로 지정하면서 학명을 ‘Mankyua chejuensis B.Y.Sun, M.H.Kim & C.H.Kim’으로 정했다. 속명은 양치식물을 연구한 초기 분류학자 고(故) 박만규 박사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제주고사리삼. 학명에 초기 양치식물 분류학자 고(故) 박만규 박사 이름이 들어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

서울시에 알아보니 줄댕강나무 사연을 알고 심은 것은 아니고, 잔디광장을 새로 조성하면서 개장 시기에 꽃 피는 나무를 고르다 선택한 나무라고 했다. 그렇더라도 작은 안내문이라도 하나 놓으면 어떨까 싶다. 서울 시내에 다양한 사연을 가진 나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