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 줄댕강나무에 담긴 사연
서울시청 앞 광장 줄댕강나무에 담긴 사연
[김민철의 꽃이야기]
<238회>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다 뜻밖의 나무를 보았다. 광장 한쪽에 다 자란 나무를 심은 화분 10여 개를 갖다 놓았는데 꽃과 줄기를 보니 줄댕강나무였다.
줄댕강나무는 충북 단양·제천, 강원도 영월 등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높이 1~2미터로 자라는데 줄기에 6개의 줄이 선명하게 패어 있다. 몇 년 전 지인과 영월에 꽃 탐사를 갔을 때 보고 꽃의 빛깔과 향기에 반한 나무였다. 이 나무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만난 것이다.

◇줄기에 선명한 줄
마침 꽃이 만개한 때였다. 꽃은 5~6월 새로 나온 가지 끝에서 긴 깔때기 모양으로 피는데 꽃부리 바깥쪽은 연한 붉은색, 안쪽은 흰색이다. 꽃잎이 5개로 갈라지지만 밑부분은 붙은 통꽃이다. 흰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꽃도 예쁘지만 향기가 참 좋다.
독특한 이름에서 ‘댕강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댕강’ 하는 소리가 난다고, ‘줄’은 나무 줄기에 줄이 뚜렷하게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국립수목원이 관리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은 줄댕강나무를 댕강나무로 합쳤고,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국가생물종목록은 줄댕강나무를 유지하고 있다).
이 나무는 일단 꽃이 예쁘고 크기도 도심에 심기에 적당하다. 또 내한성이면서도 공해에 견디는 힘이 강하고 반음지에서도 잘 적응해 도심 조경수로 적합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데 드디어 서울 도심에 진출한 것이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앞 연못가,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도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도심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댕강나무 종류는 꽃댕강나무다. 주로 산울타리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꽃이 진 다음 꽃받침이 예뻐 두 번 꽃 피는 것 같은 나무다. 이 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조경용으로 도입한 것이다.

줄댕강나무 학명은 ‘Zabelia tyaihyonii (Nakai) Hisauti & H. Hara’다. 식물 학명은 ‘속명 + 종소명 + 명명자’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종소명 ‘tyaihyonii’는 이 나무를 처음 발견한, 우리나라 초창기 식물분류학자 정태현의 이름이다. 종소명은 주로 발견지나 식물의 특징을 잡아 붙이는데, 학자 등 특정인을 기려 붙이는 경우도 있다. 줄댕강나무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활동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이 나무를 처음 발견한 정태현 박사 이름을 종소명에 붙인 것이다. 영어 이름도 ‘Taihyun’s abelia’다.
◇학명에 이 나무 발견한 정태현 이름
정태현(鄭台鉉, 1882~1971)은 우리나라 식물학의 뿌리 역할을 한 학자다. 구한말에 태어나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나카이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 식물을 조사했다. 우리 특산식물 중에는 정태현 박사가 발견했는데 나카이 이름으로 등록한 식물이 많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그의 업적 중 가장 빛나는 것은 1937년 국내 식물학자 3명(도봉섭, 이덕봉, 이휘재)과 함께 우리나라 식물을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선식물향명집’을 펴낸 것이다. 요즘 우리가 부르는 식물 이름은 이 책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다.
해방 후에는 전남대·성균관대에서 후학을 기르면서 신종 16종을 발견하는 등 우리나라 자생식물 연구에 이바지했다. 생물학계에서는 그를 기려 1968년부터 생물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학자에게 ‘하은(정태현 박사의 아호) 생물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물학계에서 선배 학자 이름을 학명에 넣은 경우가 더 있다. 장억새는 경기도 가평 등 중부 지방에 분포하는 희귀 억새다. 식물학자 이영노가 발견한 뒤 1964년 선배 학자 장형두를 기려 그의 성(姓)을 따서 명명했다. 장억새의 학명은 ‘Miscanthus changii Y.N.Lee’인데, 종소명에도 장형두 이름이 들어 있다.
제주고사리삼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에만 사는 양치식물이다. 2001년 이 식물을 한국 특산속(屬)으로 지정하면서 학명을 ‘Mankyua chejuensis B.Y.Sun, M.H.Kim & C.H.Kim’으로 정했다. 속명은 양치식물을 연구한 초기 분류학자 고(故) 박만규 박사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서울시에 알아보니 줄댕강나무 사연을 알고 심은 것은 아니고, 잔디광장을 새로 조성하면서 개장 시기에 꽃 피는 나무를 고르다 선택한 나무라고 했다. 그렇더라도 작은 안내문이라도 하나 놓으면 어떨까 싶다. 서울 시내에 다양한 사연을 가진 나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