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망치에 맞아보라” 허무한 중년, 유혹하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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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망치에 맞아보라” 허무한 중년, 유혹하는 니체
카드 발행 일시2025.05.09
에디터
선희연
더,마음
관심
문득,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 적 없나요?
매일 치열하게 살아 왔지만, 마음 한 켠이 공허한 적 없나요?
충분히 먹고 마시고 잘 살고 있으면서도, 초조함을 느끼진 않았나요?
이런 질문에 통찰 있는 대답을 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입니다. 어딘가 위험하고,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사상가. 평생에 걸쳐 니체의 철학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앞장선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이진우(69) 명예교수는 “니체에겐 나쁜 남자 같은 매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망치로 모두 깨부숴야 너만의 철학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파격적인 사람이니까요.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이진우 명예교수는 제8대 계명대 총장, 한국니체학회 회장, 한국 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경록 기자
니체는 신이 죽은 시대를 말합니다. 목적과 방향을 잃은 삶의 민낯을 보여주죠. 하지만 누구보다 삶의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한 열정적인 철학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여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라고 말하죠.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에 대답해 줄 가장 알맞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니체에게 고민 상담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허무한 삶이 고민인 사람에게 니체는 뭐라고 말해줄까요? 만약 니체가 살아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해줄 단 하나의 질문은 무엇일까요? 니체의 사상을 정리한 책『니체의 인생 강의』(휴머니스트),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휴머니스트) 등을 쓴 니체 권위자 이 교수에게 그 답을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 ‘나쁜 남자’ 니체가 사랑받는 이유
📌 삶이 허무한 중년에게 니체는 뭐라고 할까
📌 잘 살고 있어도 초조한 나, 뭐가 문제지
📌 니체가 묻는다 “당신은 왜 사나?”
✅ ‘나쁜 남자’ 니체가 사랑받는 이유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니체가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요?
니체는 1908년에 발표한 철학적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죽은 뒤에야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해요. 당대엔 이해받지 못하지만 죽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가슴을 울리는 사상가, 그게 본인이라는 거죠.
니체가 꿰뚫어 본 시대 정신은 ‘허무주의’예요. 허무주의는 니체가 살았던 시대에도 분명 문제였지만, 누구도 이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인 사람이 없었죠. 1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21세기 문화적 현상에서 허무주의는 당연한 것이 됐죠. 일상이 된 거예요. 그러니 니체가 한 말들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거죠. 우리가 느끼는 실체 없는 불안함, 허무함의 원인을 니체의 글에서 찾고, 거기서 위로를 얻는 겁니다. 그의 예언처럼 죽은 뒤 더 사랑받는 철학자가 됐죠.
근데 ‘허무주의’는 뭔가요?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중심인 유럽 사회에선 신처럼 초월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고, 신을 믿는 삶이 절대적 가치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니체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말했어요. “허무주의는, 너희가 믿는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도발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이 말에 기독교계가 발칵 뒤집어졌죠.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들이 사라진다는 뜻인가요?
서양 문명의 근본이자 핵심적인 가치, 절대적인 진리라고 여겼던 게 신이잖아요. 최고로 여긴 가치가 사라지는 것, 모든 가치가 전도되는 게 바로 허무주의죠. 어느 날 갑자기 신이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흔들릴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니체는 “삶에 목표가 없다면 그것이 허무주의다. 왜 사는지 대답할 수 없다면 허무주의에 빠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촌철살인의 방식으로 아주 정확하게 짚어낸 거죠.
니체는 삐딱함의 대명사이기도 하잖아요.
삐딱함을 넘어서 니체는 살아있을 때 이미 ‘위험한 철학자’ ‘지적인 병균’이란 소리까지 듣습니다. 그때 니체는 뭐라고 했을까요? “그래, 나는 위험한 사상을 퍼뜨리고자 하는 병균일 수도 있다”고 받아쳐요. 또 이런 말도 합니다. “나는 망치를 들고 철학을 한다.” 아니, 망치 들고 철학 하는 사람 봤어요?
철학자들은 대부분 머리로 철학 한다고 그러는데, 니체는 망치를 들고 철학 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비유죠. 이제까지 추구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모두 때려 부수겠다는 의미니까요.
니체의 매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니체는 ‘나쁜 남자 전술’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사람을 사귈 때 너무 모범생이면 별로 매력 없잖아요. 약간 삐딱하고 도발적이고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더 매력적인 것처럼 말이죠.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독일의 철학가. 대학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한 니체는 24세에 최연소 바젤대학교 고전문헌학과 교수가 됐다. 이후 10년간 『비극의 탄생』『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등 수많은 책을 냈다. 이 시기에 심한 두통에 시달렸는데, 건강 문제로 1879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유럽을 돌며 책을 썼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등이 이때 나왔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발작을 일으킨 그는 광기에 휩싸이다 1900년 사망한다. 신의 죽음, 허무주의, 영원회귀, 아모르파티(운명을 사랑하라) 등의 사상을 남겼으며, ‘왜 사는가’에 대해 깊이 고찰했다.
✅ 삶이 허무한 중년에게 니체는 뭐라고 할까
이 교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중년에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잘살았나, 잘살고 있나 하면서요.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니체의 말에 따르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사라졌을 때” 허무한 감정을 느껴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그저 반복된 일상일 뿐이거든요. 아침 먹고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잠드는 삶요. 그렇게 하루이틀이 가면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지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제 삶을 훔쳐본 것 같아 뜨끔한데요. 만약 니체라면 어떤 조언을 했을까요?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했을 것 같아요. 날마다 반복되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예요. 반복 속에서도 각자의 의미를 찾는 연습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요?
저는 아침의 일과를 좋아해요. 은퇴한 뒤로 시간이 많아져서 매일 아침 커피 마시며 아내와 40분 정도 대화를 나눠요. 뭘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그 시간이 저에겐 되게 소중해요. 그럼 의미 있는 반복인 거죠.
만약 출근한다면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가는 것도 추천합니다. 매일 지나가는 길, 똑같아 보이지만 주의 깊게 보면 달라요. 돌담길에 핀 꽃, 못 보던 광고판도 볼 수 있고 날씨의 변화도 느낄 수 있죠. 스마트폰 보느라 고개 숙이며 다니면 주위의 변화를 알아챌 수 없거든요. 대부분은 공허함을 달래려고 자전거 타러 나가고, 등산 동호회 나가고, 유행하는 여행지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병적으로 찾거든요.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이 돼 있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환경만 바뀐 똑같은 일상이 될 뿐이에요.
✅ 잘살고 있어도 초조한 나, 뭐가 문제지
니체의 말에 따르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래만 바라보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다. 순간에 충실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김경록 기자
잘살고 있으면서도 초조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런 감정은 왜 드는 걸까요?
이 상황에 대해 니체가 정확히 얘기한 게 있어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은 늘 초조하기 마련이다.” 타인의 삶을 쫓아가느라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이직해서 연봉 올리고, 강남 30평대 아파트 사고, 주식 투자해 큰돈 벌고, 매년 해외여행을 가는데, 나만 못하고 있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요? 무언가를 놓쳤다는 공포, 실패했다는 좌절감이 오죠. 초조함은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내가 살아가는데 30평대 강남 아파트가 꼭 필요한가, 어느 정도 주거 공간이면 내가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해요. 삶의 기준을 타인이 설정한 것에 맞추기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하고 두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니체는 “남의 머릿속에서 살지 말라”고 해요. 지금 세태에 꼭 맞는 말이죠. 기준을 나에게서 찾으면 불안함은 점차 옅어질 겁니다.
결국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것만큼 어려운 말이 없는 것 같아요.
현대인들은 너무 자아에 매달려요. 나답게 산다는 걸 지금의 나와 다른 진짜 내 모습이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거든요. 나답게 산다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나답게 사는 걸 최고의 이상으로 꼽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니체는 단호하게 “꿈 깨라”고 했어요. 이상적인 자아는 환상에 불과하다고요.
니체도 ‘나답게 살기’를 강조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니체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어요. “나답게 사는 건 어떤 것인가”라고 물을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내 욕망을 잘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예를 들면 화창한 날 회사에 가는 것보다 고궁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충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직업을 만들어 두어야 하겠죠. 수입이 걱정된다면 내가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을 다시 책정해 보기도 해야 할 거고요. 내가 원하는 걸 이루는 삶, 그게 나답게 사는 겁니다.
✅ 니체가 묻는다 “당신은 왜 사나”
니체의 책을 읽는 게 삶의 이정표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니체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게으름뱅이 독자들을 미워한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남이 쓴 글에서 해답을 구하려는 사람은 게으름뱅이라는 거죠. 그런 사람은 내 책을 읽을 가치도 없다고요. 냉정해요.(웃음) 니체의 말에서 위안을 얻고 방향성을 찾을 순 있겠지만, 결국 실천하는 건 나의 몫이에요.
어떤 책부터 읽는 게 좋을까요?
니체의 철학이 흥미롭다는 이유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금방 질려서 나가떨어질 겁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건 지금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거예요. 내가 요새 불안한지, 허무한지, 공허한지, 자책하는지 파악해야 그 내용과 관련한 부분을 읽고 삶에 적용할 수 있어요. 내 문제는 제쳐두고 그저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책을 따라 읽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에요. 삶에 적용하지 않는 철학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럼 잘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팁 하나만 알려주세요.
니체의 문체는 조금 독특해요. 굉장히 압축적이고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쓰여 있거든요. 이런 형태를 아포리즘(aphorism)이라고 하죠. 책 전체를 완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힘들어요. 그러니 니체의 잠언집 중 아무 곳을 펴놓고 마음을 두드리는 명제 하나, 한 구절, 한 페이지만 소화해 보는 겁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면서요. 저도 고등학생 때 청계천 고서점에서 산 니체의 잠언집을 읽다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어떻게 해야 철학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생각할 여유를 많이 확보해야 철학과 가까워질 수 있어요. 지금 시대는 생각하며 살아갈 여유를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낭만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도 여유가 없기 때문이고요. 8시간 넘게 일하고 집에 온 사람에게 무슨 생각할 여유가 있겠어요. 요새는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 같은 드라마조차 유튜브에서 짧게 정리한 요약본으로 소비하잖아요.
그러니 억지로라도 시간적·공간적·심리적 여유를 갖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하루에 30분 디지털 기기를 꺼 두고 시간을 보내겠다, 한 달에 한 번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운 장소로 가보겠다. 철학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니까요.
만약 니체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면 무슨 질문을 했을 것 같나요?
그러면 아주 단순하게 던졌을 겁니다.
너는 왜 사니?
이 질문에 대답을 잘할 수 있다면, 아주 잘살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니체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다. 불행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고통을 이겨내면 즐거움의 기분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을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말했다. 김경록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