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묵호 ‘추억 여행’
명태 그득했던 덕장, 북적이던 로터리… 겨울 끝자락에 떠올린 ‘눈부신 옛 풍경’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5-02-27 09:10
묵호항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덕장마을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본 모습. 사진 왼쪽 등대 아래가 누추하고 좁은 달동네 골목에다 벽화를 그려 넣어 관광명소가 된 ‘논골담길’이다. 사진 오른쪽은 묵호의 과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주택가.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옛모습 사라지기 전에… 동해 묵호 ‘추억 여행’
몇년새 관광명소 된 ‘논골담길’
묵호 중심이었던 ‘발한 삼거리’
술집·백화점·극장 사라졌지만
과거의 풍경 박제된 듯한 골목
허름해보이는 6층 삼본아파트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하기도
밤새 내린 눈에 눈부신 백사장
푸른 바다 앞 ‘망상캠핑리조트’
동해=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묵호의 지명에 새겨진 뜻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마저 검으니 ‘먹 묵(墨)’ 자를 써서 묵호(墨湖).’ 이렇게 말한 이는 조선 순조 때 강릉 부사를 지낸 이유응이다. 묵호에 해일이 덮쳐 배는 물론이고 집까지 떠내려가 버리자 임금 순조는, 당시 도지사쯤 되는 벼슬인 부사 이유응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 재난의 절반쯤은 ‘나랏님’ 탓이기도 했다. 묵호를 현장 시찰한 이유응 부사는 돌아가면서, 묵호란 땅 이름을 하사했다.
본래 묵호는 해안가 주변의 명승 ‘까막바위’에서 유래한 지명인 ‘오이진(烏耳津)’으로 불렸는데, 이유응은 불길한 느낌의 ‘까마귀 오(烏)’를 빼고 대신 ‘먹 묵(墨)’ 자를 쓴 새 지명을 남겼다. 지역 사람들은 묵호진동의 까막바위에서 유래한 ‘먹 묵’ 자를, 글씨나 문장으로 해독해 지금껏 ‘문향(文香)의 고장’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생각이 좀 다르다. 재난 직후에 묵호를 찾은 이유응은 백성들의 굶주림과 도탄을 생생하게 지켜봤을 터. ‘경관과 문장’을 얘기할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심란한 그에게는 모든 게 다 어둡고 우울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맑은 파랑의 아름다운 묵호 바다도, 그에게는 칙칙한 흑백의 풍경이었겠다. 짐작일 따름이지만, 묵호의 진득한 바다를 보며 ‘물도, 바다도, 물새도 검다’고 했던 이유응의 진술을 절망과 어둠으로 해석해본다. 묵호의 지명에서 백성들이 겪은 환난을 안타깝게 여긴 목민관의 마음을, 땅이름에 새긴 그의 시선을 상상한다. 강릉 부사 이유응이 실제로 묵호란 지명에 어떤 뜻을 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부임 1년 만에 임기를 마친 데다, 돌아가는 길 위에서 세상을 떴으니 뒷얘기도 한 줄 없다.
‘동쪽 바다 중앙시장’으로 이름을 바꾼 묵호 중앙시장에 세워진 개 조형물. 개도 1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을 만큼 돈이 넘쳐나던 시절의 묵호를 상징한다.
# 묵호의 오래된 풍경 이야기
묵호의 지명에서 느껴지는 지금의 이미지는, 뭔가 무겁고 진득하다. 묵호가 지나온 시간에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스며있다. 묵호에는 한때 출항하는 고깃배마다 오징어와 명태를 가득 싣고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열차로 실어온 무연탄을 배로 실어 내가느라 바빴던 시절도 있었다. ‘좋았던 시절’이라지만, 다 좋았던 건 아니다. 흥청거리던 그 시절의 뒤편에는 고된 노동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고단한 인생들이 있었다.
한겨울에 항구의 물양장 마당에서 오징어를 펼쳐놓고 시린 손으로 할복작업을 하거나, 명태를 산더미처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언덕 위 덕장까지 허덕허덕 올라야 했던 이들이다. 그 시절,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였다. 묵호의 뒷골목에는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사내들의 고된 노동의 피로를 씻겨줬던 술이 있었고, 묵호의 산동네에는 아녀자들이 품삯 대신 받아와 빨랫줄에 널어놓은 생선을 말리던 바람이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묵호는, 아니 묵호를 포함한 동해시 전체는 내로라하는 인기 관광지가 됐다. 등대 아래 비탈진 산동네가 ‘논골담길’이란 명소가 돼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고, 해변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감성 가득한 숙소가 속속 문을 열었다.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술과 바람의 도시 시절 묵호의 흔적을 들여다보기로 했던 건, 묵호의 오래된 풍경이 빠르게 밀려나고 있어서다. 이번 주 ‘CULTURE & LIFE’는 그 시절 묵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사문재 긴 고개 너머의 망상까지, 그리고 아직도 오일장이 살아서 펄펄 뛰고 있는 북평까지 동해시를 두루 둘러보는 여정이다.
동해시의 대표명소 추암에 패턴 조명이 켜진 모습. 야간명소로 다듬기 위해 경관조명을 설치했다.
# 묵호의 중심이었던 발한삼거리
묵호항에 가려면 꼭 지나치게 되는 삼거리가 있다. 1930년 이래 오랫동안 묵호의 중심이었던 ‘발한삼거리’다. 삼거리에는 읍사무소를 비롯한 관청과 은행, 시장이 있었다. 한때 묵호에서 가장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로터리다.
지금 삼거리에서 눈에 띄는 건 ‘발리관광룸클럽’이다. 웬만한 극장간판 크기의 상호가 주변을 압도한다. 세계적인 휴양지 ‘발리’의 이름이, 뜬금없이 대한민국 동해안 중소도시의 허름한 유흥주점 상호가 됐다. 퇴락한 건물에다 빛바랜 간판까지…. 클럽은 어쩐지 ‘문 닫은 놀이공원의 폐허’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웃 상인은 뜻밖에 ‘제법 장사가 잘 된다’고 귀띔했다. ‘보이는 것보다’란 단서를 달았으니 호황이란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상권이 붕괴된 중소도시에서 문 닫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가.
전성기 시절, 묵호항은 일자리가 넘쳐났다. 오징어잡이 배에서는 선원을 찾고 하역장에서는 막일꾼을 찾았다. 어선의 선원과 어판장 종사자, 화물선의 하역꾼, 선적 종사자에다 제복 차림의 묵호기지 해군까지 몰려들어 발한삼거리는 늘 인파로 북적거렸다. 대낮부터 젓가락 장단에 노래하며 술 마시던 식당이 있었고, 저녁이면 발한삼거리에서 묵호역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포장마차며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섰다고 했다.
그 시절 얘기를 꺼내자 묵호 사람들은 추억의 공간을 기억해냈다. 삼일당 옆에 있었던 ‘오동나무집’에서 구워대는 노가리 냄새를 얘기한 이도 있었고, 발한천 나무다리에서 리어카를 세워놓고 온갖 ‘미제물건’을 쌓아놓고 팔았다는 ‘깡통 박’을 추억하는 이도 있었다. 이른바 ‘아가씨’를 두고 선주들이나 해산물 매매상인, 무연탄 업자들을 접대했던 고급술집 ‘백화원’ 얘기도 들었다. 전자오르간 노래 반주를 해주던 백화원의 ‘한 상’ 가격이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보다 더 비쌌다고 했다.
# 강원도에서 가장 땅값이 비쌌던 자리
발한삼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자리에 카페가 있다. 처음에는 자리보다 상호에 먼저 눈길이 갔다. ‘김수영을 위하여’. ‘풀은 눕는다’의 시인 김수영이다. 입구 유리문에는 알베르 카뮈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정오가 조금 못되어 우리는 폐허를 지나 바닷가의 작은 카페로 돌아온다.” 입구와 상호는 인상적인데 카뮈의 문장 속 ‘바닷가의 작은 카페’의 느낌은 아니다. 문학 테마의 카페도, 요즘 스타일의 감각적인 카페도 아니다.
카페에서는 타로와 사주를 본다. 동해시에는, 여기 말고도 유독 타로 카페가 많다. 카페는 좀 당혹스럽다. 사무실과 카페의 딱 중간쯤이다. 띄엄띄엄 놓은 테이블과 의자가 헐겁다. 카페 창밖으로 발한삼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타로 점을 보지 않는 손님을 실망스러워하던 카페주인이 책 한 권을 가져왔다. 동해시에서 과거 사진을 모아 2020년 펴낸 책 ‘동해시, 역동의 기억’이다.
주인은 책에 나온 발한삼거리의 옛날 사진을 펴서 보여줬다. 삼거리 중앙에 나무로 뚝딱뚝딱 세운 광고판이 있고, 광고판에 ‘밀수방지’ ‘경월소주’ ‘교통안전’ 따위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가 인파로 붐비던 사진 속의 시간은 1960년대쯤으로 보였다. 삼거리 지형은 지금과 정확하게 겹쳐졌다. 함께 발한삼거리를 내려다보던 카페 주인의 설명. “저기 발리관광룸클럽 1층 빈 점포 자리가 한때 강원도에서 가장 땅값이 비쌌던 곳이에요.” 옛날 사진 속에서 그 자리를 찾으니 양복점 ‘삼공라사’ 자리다. 사진 속 삼공라사 자리가 휴대폰 판매장이 됐다가 비워진 사이에 60여 년이 지났다.
발한삼거리와 묵호역 사이는, 상권이 옮겨가면서 쇠퇴해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반쯤 문 닫은 가게가 여럿이고, 빈 점포도 자주 눈에 띈다. 이 틈새로 여행자 취향의 공간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여행작가가 차린 작은 여행책방 ‘잔잔하게’다. 작가의 눈썰미로 골라낸 여행관련 책의 큐레이션이 인상적이고, 세계 각국의 여행지에서 수집한 소품으로 꾸민 인테리어도 근사하다. 인근에 커피도 파는 독립서점 ‘발란스북스’도 있고, 감각적인 느낌의 고양이 주제 소품숍 ‘묘한’도 있다. 묵호시장 주변에는 소품점 ‘끼룩상점’과 ‘111호 프로젝트’ ‘두두달 업사이클링’ 등이 있다. 이런 젊은 공간들이 낡고 해져서 사라져가는 묵호의 늙은 공간을 대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묵호의 중심이었던 발한삼거리의 모습. 오징어와 명태가 사라진 지금은 상권이 무너져 주변에 빈 점포가 즐비하다.
#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갔다고?
묵호 토박이들로부터 ‘좋았던 시절’ 이야기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1960년대 중반 발한삼거리에서 시계방을 했던 이의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1960년대 중반쯤 묵호의 시계방 경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설명하다가 “시계방 주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송정에 있던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물건을 해 가지고, 밤 기차로 내려왔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잠깐. 그 시절 북평읍 송정에 비행장이 있었다고?
송정에는 명사십리로 불렸던 천혜의 해수욕장이 있었다. 훗날 북평항 공사로 모래톱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지만, 오랫동안 동해안에서 손꼽히던 해수욕장이었다. 1961년 12월. 이 해수욕장을 절반쯤 잘라내 비행장을 만들었다. 지금은 동해시 땅이지만, 그 시절 북평은 삼척이었으니 이름은 ‘삼척비행장’이었다.
삼척비행장에서는 44인승 F27 프로펠러 비행기가 서울을 오갔다. 시계방 주인은 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는 남대문시장에서 손목시계를 떼온 것이었다. 국산 오리엔트며 일제 시티즌 손목시계가 1500원쯤 했던 시절 얘기다. 그 무렵 묵호항에는 오징어 배가 500척이 넘었는데, 선원들이 으쓱거리며 자랑했던 게 ‘방수가 되는 최신식 손목시계’였단다. 그 시절, 시계가 얼마나 불티나게 팔렸으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물건을 떼왔을까.
송정해수욕장은 한동안 해수욕장 백사장과 비행장 활주로로 공간을 나눠 썼다. 해수욕객들은 바다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햇볕으로 따스해진 활주로 아스팔트에 누웠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쯤이면 자전거를 탄 공항 직원이 활주로로 들어오는 해수욕객을 막았단다. 이제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도 몇 남지 않은 오래된 얘기다.
거짓말처럼 텅 비어버린 향로시장 골목에 남아있는 방앗간 간판. 전화번호가 국번 없는 4자리 숫자다.
# 시간의 골목을 걷는다
묵호에는 과거 풍경이 박제된 듯 남아있는 골목이 있다. 1970년대 묵호의 사내들이 가장 자주 드나들던 곳은, 보영백화점과 묵호극장 뒤편에 있었다는 ‘진땡이’ 술집이었다. ‘진땡이’란 독한 막걸리를 부르는 말이었다. 진땡이 술집도, 보영백화점도, 묵호극장도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남아있는 건 화물선박 선원들이 주로 찾았다는 역전 굴다리 입구의 향로동 골목의 자취다. 폐허가 된 채 남아있는 그 시절 골목풍경은 정겨운 옛날 모습이라기보다는 개발 지체의 안쓰러운 풍경이다.
향로동 골목을 당시에는 ‘무교동’이라 불렀다. 유흥가가 밀집한 서울 무교동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묵호역 주변의 굴다리를 지나 오복슈퍼를 끼고 이어지는 골목이 바로 묵호가 번성했을 당시의 ‘묵호의 무교동’이다. 이 골목의 가게는 죄다 문을 닫았다. ‘씽씽자전거대리점’을 지나면 골목 안쪽에 술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술집 ‘춘향이’가 있고, 그 옆에 ‘명월’이 있다. 똑같은 글씨체다. ‘춘향이’야 뭐 그렇다 치고, 명월은 누굴까. 남원 부사로 내려온 변학도 부임 날 기생 점고에 등장하는 이름일까, 아니면 구한말 기생집 ‘명월관’의 간판스타 기생의 이름일까. 술집 상호에 그 무슨 큰 뜻이 있었을까. 아무튼 이 골목에 ‘수궁’도 있고 ‘아방궁’도 있다. 모두 다 문을 닫은 지 십수 년은 돼 보인다.
쇠락한 이 길이 동해안 도보 코스인 ‘해파랑길’ 구간이다. 해파랑길 중에서 묵호항과 하평해변을 잇는 33코스 ‘해물금길’이다. 퇴락한 풍경의 절정은 골목 끝의 ‘향로시장’이다. 골목에 아크릴 지붕을 얹은 아케이드형 시장인데, 말만 시장이지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진공처럼 고요하다. 손님만 없는 게 아니라 가게까지 죄다 사라졌다. 시장의 형태는 뚜렷한데 상점도, 사람도 사라져버려서 마치 ‘멸망한 공간’처럼 보일 정도다.
시장 안쪽 골목에 멸망의 시점을 추론해볼 ‘유물(?)’이 있다. ‘통천떡방앗간’이다. 남아있는 건 간판뿐인데, 간판의 전화번호가 ‘2876’ 네 자리다. 국번도 없이 달랑 네 자리 숫자 전화번호를 쓰던 시절이라니…. 1970년대쯤이었을까. 골목 깊은 곳까지 방앗간이 들어섰던 때의 향로시장은 어땠을까. 시장 주변에는 아슬아슬 비탈을 따라 집이 이어지는 달동네가 있다. 논골담길이 관광지가 되기 전의 모습과 비슷하다. 동네사람들은 이 달동네를 ‘야마깡’이라 불렀다. 비탈에서 수시로 바위가 굴러 집을 덮치는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주민들은 “야마깡에는 ‘담 큰 사람’들이 살았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담이 커서 그랬을까. 한 푼이라도 더 싼 월셋집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으리라.
# 영화 속 사랑의 시작과 끝
유지태와 이영애가 연인으로 등장하는 영화 ‘봄날은 간다’를 아시는지. 영화가 보여주는 건 설레는 봄날 같은 사랑과 그로 인한 상처에 대한 이야기.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의 성장과 깨달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에는 보지 않은 이들도 다 아는, 길이길이 남을 명대사가 있다. 사랑을 막 시작한 이영애(극 중 이름 은수)가 집 앞까지 바래다준 연인 유지태(상우)에게 건네는 말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 그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묵호에 있다. 영화에서 은수의 집으로 등장한 곳이 묵호 등대와 이어진 긴 언덕 위의 ‘삼본아파트’다. 이별하는 장면에서 상우의 명대사도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장면도 삼본아파트 앞길에서 찍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모두 이 아파트에서 찍은 셈이다.
살랑살랑 봄기운 속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두근거림으로 시작한 영화는, 사랑이란 붙잡으려 해도 고운 모래처럼 스르륵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란 얘기를 자연스럽게 전한다. 삼본아파트는 4동짜리. 허름해 보이는 엘리베이터 없는 6층짜리 아파트지만 연인 사이라면, 더구나 막 사랑을 시작한 커플의 여행이라면 여기가 뜻깊은 장소가 될 듯도 싶다.
삼본아파트는 바닷가 언덕 위에 있지만, 동마다 방향이 달라 아무 집에서나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파트는 4개 동인데, 그중 좋아 보인 건 101동의 9호 라인. 5층이나 6층쯤이면 거실로 바다 풍경을 가득 들여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삼본아파트는 거의 대부분 가구가 15평. 매매 실거래가격이 평균 7000만 원 전후고 전세는 5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이것까지 뒤져본 건 혹시나 ‘그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이곳에서 살면 영화 속의 은수처럼 아릿아릿한 연애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망상해변과 이어진 기곡해수욕장의 설경. 망상오토캠핑리조트를 끼고 있는 기곡해수욕장은 눈 내린 뒤의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다. 푸른 바다와 흰 눈 쌓인 해변이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 덕장마을의 바람, 망상해변의 설경
삼본아파트 인근에 묵호 덕장마을이 있다. 묵호항이 명태잡이 배들로 북적이던 1960년대 무렵, 묵호진동 산비탈의 겨울은 온통 명태 천지였다.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산동네 집의 좁은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다 명태를 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묵호의 명태는 ‘바닷바람에 말리는’ 해풍건조 방식이다. 묵호에서 만든 명태를 ‘언 바람 묵호태’라 부르는데, 명태를 만드는 게 ‘바람’이라서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이 명태를 말린다.
묵호의 덕장에서 말리는 명태는 대관령 명태와는 전혀 다르다. 대관령 명태는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하면서 겨우내 말리지만, 묵호태는 눈과 비를 맞히지 않고 해풍만으로 20일 남짓 말려서 출하한다. 지금 묵호 덕장마을의 덕장엔 명태는 없다. 지난 설 연휴 때 말려서 내보낸 게 올해 마지막 명태였단다. 설 무렵의 긴 추위가 닥치면서 건조 명태 물량이 쏟아져 들어와서 온 동네가 다 명태로 그득했단다. 카메라를 든 채 골목을 다니던 관광객을 불러세운 마을 주민들은 설 무렵의 덕장에 내건 명태가 장관을 이루던 얘기를 하며 ‘좀 일찍 오지 그랬냐’며 아쉬워했다. 맑은 날의 겨울 햇볕과 살을 에는 바닷바람이 자산인 덕장 마을 주민들은, 이런 날이 아깝다. 명태를 걸어두면 ‘특급 묵호태’를 만들어 줄 겨울 볕과 겨울바람이, 일없이 무심히 묵호진동의 골목을 지나간다.
묵호등대 아래 덕장마을 옆 논골담길은 따로 말하지 않기로 한다. 이미 이름난 명소가 돼서 일러주지 않아도 찾아갈 것이니. 다만 이것 하나만 얘기하자. 논골담길 주변에 카페들이 많다. 바다 전망이나 감각적 인테리어를 내세운 카페는, 커피 값이 만만찮다. 여기보다 덕장마을의 ‘문화팩토리 덕장마을카페’를 추천한다. 동해시가 직영하는 카페인데 전망도 훌륭하고, 공간도 넓다. 특히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묵호 일대의 풍경이 ‘100만 불짜리’다. 커피 값도 3500원이다.
묵호를 둘러본 이튿날, 동해에 밤새 눈이 내렸다. 이른 아침 찾아간 망상해변의 긴 백사장이 소복하게 눈으로 덮였다. 해수욕장 중에서 설경이 좋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망상해변과 이어진 기곡해수욕장이다. 등 뒤의 망상캠핑리조트 한옥촌과 방갈로, 카라반과 소나무가 눈앞의 푸른 바다, 흰 눈과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겨울의 끄트머리에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린 날, 동해시의 ‘찬물내기 공원’에는 봄을 알리는 노란 복수초가 머리를 내밀었다. 늦은 추위로 꽃잎이 검게 타버리긴 했지만….
■ 묵호항역의 돌하르방
묵호역 남쪽에 ‘묵호항역’이 있다. 묵호역은 KTX 열차가 서는 번듯한 역이지만, 무연탄을 실어나르던 묵호항역은 이제 쓸모를 거의 다 잃었다. 묵호항역 철로 변에는 뜬금없이 돌하르방이 서 있다. 강원 바닷가 역에 난데없는 제주 명물의 등장이다. 수석 수집이 취미이던 역 앞 식당 주인이 제주여행에서 돌하르방을 보고 어찌어찌 사들여 30여 년 동안 애지중지하던 것을, 식당을 그만두면서 역에 기증한 것이란다. 묵호항역 직원들은 역 구내에 기단을 만들고 돌하르방을 세워 열차운행의 안전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