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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똥밭에 충격 먹었다…“똥삽 들라” 산 선생님 외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 24. 15:07

굴업도 똥밭에 충격 먹었다…“똥삽 들라” 산 선생님 외침
카드 발행 일시2024.09.10
에디터
김영주

 “산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가져오기만 하면 LNT(Leave No Trace, 흔적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사람의 90%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요즘 한라산 정상에 올라 컵라면 먹는 게 유행이던데, 라면 먹고 나서 국물 한두 방울 남으면 별생각 없이 버리잖아요. 근데 미량의 나트륨이 식물을 말라 죽게 하고, 동식물에 피해를 줍니다.”  

한국 아웃도어 활동가 중 ‘LNT 1세대’인 김영식(61)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장이 말했다.

김영식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장이 충주호 종댕이길을 걷고 있다. 사진 김영주 기자

“산에서 불시에 대변을 볼 때도 ‘삽으로 15~20㎝ 정도 파고 묻는다’가 교과서처럼 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똥·오줌도 최대한 수거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땅에 묻는다’ 가 원칙입니다. 대변을 땅에 묻는 방식도 ‘어느 정도 파면 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유기물이 많은 부식토에서 대변이 완전히 썩는 데 1년 6개월 걸린다고 해요. 황토나 진흙은 그보다 더 걸리고요. 그래서 주변에 썩은 나뭇잎 같은 부식물을 넣어주면 더 빨리 썩겠죠. 모래가 있는 흙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습니다. 사람의 대변 속엔 수백 가지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비가 오면 계곡으로 흘러내려 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대변을 본 자리도 최대한 원래대로 하고 나와야 합니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있던 자리에 그대로 갖다 둬야 해요.”

김 대장은 10여년 전 미국 워싱턴주에 가 LNT 교육을 받고 왔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아웃도어 활동에서 윤리나 도덕을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백패킹(Backpacking) 등 활동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아웃도어 활동이 어젠다로 떠올랐다. 한때 백패킹 성지로 불렸던 인천 굴업도가 무분별한 캠핑으로 1~2년 새에 ‘똥 밭’이 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는 최근 SNS를 통해 아웃도어 활동을 전파하는 리더들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을 잘 가르치면 수천 명의 팔로워에 전파된다는 믿음에서다. 아웃도어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모아 예술 작품을 만드는 ‘정크 아트’ 활동가 김 강은(33) 씨가 그의 제자다.

LNT 7가지 원칙 “그대로 둘 것”

LNT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세계 2차대전(1939~1945)이 계기라고 한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 전쟁을 수행하면서 텐트와 배낭, 랜턴 등의 장비가 발달했다. 전후 민간이 이를 활용하면서 아웃도어 활동이 폭발하게 된다. 반면 사람이 늘면서 자연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연방산림청은 ‘자연에 최대한 충격을 주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70~80년대엔 국립공원, 연방토지관리국 등도 이에 동참했다. 이후 캠페인으론 한계가 인식에 따라 LNT라는 환경윤리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한다. 공식 단체는 1994년 창립했으며, 지금은 LNT 센터로 불린다. 한국엔 아직 지사가 없다. 히말라야 클린 등반에 앞장서온 한왕용 대장을 중심으로 조만간 LNT 코리아가 론칭할 예정이다. 7가지 윤리를 원칙으로 삼는다.

                김 대장의 배낭 속 '대변용 삽.' 언땅에서도 땅을 팔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김영주 기자

1. 계획하고 준비하기(Plan & Prepare)  
트레킹과 등산할 장소를 사전에 파악한다. 그래야 자연에 충격을 덜 준다.
2. 안전한 장소에서 야영(Travel and Camp on Durable Surface)
새로운 야영지는 자연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야영지를 따르는 게 좋다.
3. 쓰레기를 적게 만들고 잘 처리하기(Dispose of Waste Property)
쓰레기를 적게 만들기 위해선 소분해서 포장하고, 가져간 것은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
4. 그대로 두기(Leave What You Find)
나무, 식물 등 자연의 것은 보기만 한다. 건드린 것은 최대한 원래대로 둔다.
5. 모닥불 사용 최소화하기(Minimize Campfire Impacts)
한국에선 모닥불을 피우지 못해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6. 야생동물 존중(Respect Wildlife)
자연은 자연의 것이다. 또 음식물을 남기는 행위도 동물에게 피해를 준다.
7. 배려(Be Considerate of Other Visitors)
백패커·산행객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후대를 위해 최대한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또 산짐승 등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딜 가든 ‘대변 삽’ 휴대”

                 김영식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장이 충주호 종댕이길을 걷고 있다. 사진 김영주 기자

지난 7일 충북 충주호 서쪽 호수를 따라 조성된 종댕이길을 함께 걸었다. 2시간여의 짧은 산행에도 그는 40L 큰 배낭을 메고 나왔다. 배낭 안을 살펴보니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득했다. “산을 아껴 걷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한다. 먼저 쓰레기 수거를 위한 다양한 사이즈의 비닐 지퍼백이 담겼다. 또 스테인리스 소재 ‘대변용 샵’과 티타늄 소재의 다용도 컵, 스푼·포크·나이프 기능을 모두 갖춘 다용도 식기도 들어 있었다. 티타늄 소재 컵·식기는 직접 주문 제작했다고 한다.

“티타늄은 1000년을 간다고 하잖아요. 내가 죽을 때까지 쓰고, 다음에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식은 또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게 자원도 아끼고 자연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인 거죠. 200개를 만들어서 충북 지역 산악인들에게 저렴하게 보급했어요. 기자님도 실천하시죠.” 그는 배낭에서 티타늄 컵을 한 개 더 꺼내 기자에게 줬다. 다음번 산에 갈 때 아들에게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오브제가 될 것 같다.

김 대장의 배낭 속 티타늄 소재 컵과 식기. '1000년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김영주 기자

충주호를 끼고 도는 종댕이길. 고요한 수면 옆 참나무 오솔길이 펼쳐진다. 길 이름에 대한 유래가 헛갈린다. 일설에 의하면 근방에 정선 전씨 집성촌이 있어 이 마을 사당을 ‘종당’이라 불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근방에 자리한 상종·하종 마을도 거기서 유래한다. 보통 산골 마을 사람들은 ‘야트막한 고개’나 ‘펑퍼짐한 고개’를 댕이라고 부르는데, 추측건대 종댕이는 ‘종당이 있는 펑퍼짐한 고갯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길을 걷다 만난 안내판 설명은 딴판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가 서로 맞닿아 가운데에 동그란 공간이 마치 어머니의 뱃속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모자나무(종댕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종댕이는 연리지(連理枝,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은 것)를 뜻하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으나, 안내판을 보고 호수 주변을 둘러보니 실제로 엉겨 붙은 나뭇가지가 여럿 보였다. 그 중엔 ‘키스나무’라는 이름표를 단 것도 있었다.

묘하게도 키스나무 주변을 걷는 중에 커플 트레커가 자주 눈에 띄었다. 토요일 아침, 호숫가로 산책 나온 금실 좋은 이들이다. 배낭을 멘 이들도 있고, 빈손으로 홀가분하게 걷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나이 지긋한 노부부는 통나무로 만든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양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채 얽히고 얽혀 걷는 양이 연리지나 종댕이 나무와 닮았다. 또 흰색 티셔츠로 커플 룩을 하고 호수를 응시한 채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나란히 앉아 고요한 수면을 함께 바라보는 양이 참 아름다웠다. 휴일에도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충주까지 출장 온 기자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 대장은 올 초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아내와 함께 완주했다. 평생 혼자 산에 다녔지만, 2년 전 교편생활을 마감하면서 아내와 한길을 걷는 경우가 잦아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느 길과 달랐다고 한다.

“20대부터 히말라야 원정을 수없이 다니고 20년째 오지학교 탐사대장도 하고 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 치유의 길이고 명상의 길이더군요. 걷는 길도 좋지만,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남달라요. 길에 있는 모든 알베르게(숙소)는 장애인용 시설을 갖춰야 해요. 그래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걷곤 합니다. 한번은 어느 부부가 숙소로 들어왔는데, 두 다리가 없는 부인이 남편의 도움 없이 잠자리를 정리하고, 스스로 혼자서 샤워를 하고 오더군요. 길을 나설 때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당당히 나서더군요. 물론 길이 험하거나 언덕에선 남편의 도움을 받겠지만 몸이 성치 않은 부부가 800㎞ 길을 걷는다는 것, 또 ‘따로 또 같이’ 한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그는 산에 가기 위해 사범대에 갔다고 했다. 교사로 일하면 방학 때 산에 갈 수 있어서다. 1990년 세계 3위 봉 칸첸중가(8586m) 등반을 시작으로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1998년) 등정, 2000년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장을 맡는 등 산에 청춘을 바쳤다. 그러나 본업이 선생님인지라 아웃도어 활동보다는 교육에 더 마음이 갔다고 한다.

멘토로서 청소년과 동행한 히말라야 원정은 2002년 네팔 피상피크(6091m)로 향한 ‘꿈나무원정대’가 시작이었다. 충주의 작은 분교에 재직할 당시, 부임하자마자 산악부를 꾸렸다. 스스로 위축된 청소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인근 장미산과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조령산 암릉에 훈련을 하고 급기야 네팔 원정대를 꾸렸다. 대원 중엔 시각 장애가 있는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 생활보호 대상일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었어요. 처음엔 부모들도 반대했지만, 학생들에게 큰 세상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네팔 원정대를 꾸리게 됐죠.” 김 대장을 포함해 2명의 학생이 정상을 밟았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어깨를 움츠리고 살아온 아이들이 큰 산에서 ‘호랑이의 모습’을 본 김 대장은 그때부터 청소년 등산 교육에 힘을 쏟기로 했다. 2004년부터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가 그것이다.

오지학교 20년,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      

김영식 대장이 20년째 해오고 있는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가 네팔 히말라야 설산 아래 트레일을 걷고 있다. 사진 김영식

중·고교생 참가자 10~20여명과 스태프 10여명으로 꾸려진 탐사대는 매년 네팔로 떠난다. 네팔의 설산을 트레킹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지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어울리고 봉사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둔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근교 빈민가의 바니 빌라스 세컨더리스쿨(12학년제), 안나푸르나(8091m) 산자락에 있는 오지학교 바라부리 스쿨(초등학교) 등이다. 청소년 참가자 중엔 ‘문제아’들도 한두 명 포함돼 있지만, 이 아이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고 한다.

“아이들 스스로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현지 아이들을 위한 K-팝 공연, 선생님들과 산중 토크 콘서트, 혼자 명상하기, 공정 여행, 히말라야 트레일에서 쓰레기 줍기, 고산 트레킹 등이죠. 한국에선 입시에 올인하지만, 정작 미래에 뭘 할지 진로를 못 찾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탐사대원 중 대학에 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네팔 빈민가에서 자원봉사한 후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서 그해 교대에 합격한 아이가 있었어요. 또 친환경 트레킹을 하며 그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청소년도 있고요.”

클린 하이커스를 창립하는 등 MZ 세대에서 환경운동가를 두각을 보이는 김강은씨가 대표적이다. 김씨 외에도 중·고교, 대학 시절 탐사대원으로 참여한 이들이 성인이 돼 스태프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참가비는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선 자비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스스로 책임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종댕이길은 찻길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약 4㎞다. 줄곧 호수를 따라 걷다, 호수와 면한 지점이 끝나는 데서 산길로 접어든다. 외곽으로 길게 도는 길도 있지만, 그러면 도로를 걸어야 한다. 짧은 코스는 쉬엄쉬엄 걸으면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한바퀴 돌고 나와 모바일에 표시된 종댕이길의 GPS 궤적을 보니,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다. 휴일 이른 아침에 걸을만한 ‘하트 길’로 제격이다.


김주원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6627